가볍게 든 가방

낮 / 4-2

by 지안

집을 나설 때,

오늘은 이상하게도 짐이 가볍게 느껴졌다.

가방에 담긴 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노트북과 물병 하나, 수첩과 팬 하나.


하지만 등에 멘 무게보다

마음에 얹힌 무게가 훨씬 덜한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나는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걸

쥐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 필요하지도 않은 기억,

이미 지나간 말들,

누군가를 향한 섭섭함과 미련 같은 것들.


그건 마치

쓰지 않는 물건을 꾸역꾸역 넣은 가방을 메고

계속해서 걷는 일과 닮아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나중엔 그 무게 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도 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가방을 들기 전,

잠시 마음의 짐을 꺼내 펼쳐 보았다.


혹시 지금 굳이 들고 가지 않아도 되는 마음은 없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없는지.

굳이 나에게 묻지 않아도 되는 후회는 없는지.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기보다

걸음이, 생각이, 표정이 가벼워졌다.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기억도, 감정도, 사람도, 성취도.


하지만 어떤 날엔,

그 모든 걸 잠시 내려두고

그냥 걷기만 해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모든 걸 붙잡지 않아도,

사람은 살아간다.

꼭 쥐고 있지 않아도,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벼워진 마음은

한 걸음 더 멀리,

조금 더 따뜻한 곳까지 데려다준다.



“내가 가볍게 들 수 있는 것만이

진짜 나를 멀리 데려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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