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

D+7

by 지안

오늘은 20km만 걸으면 됐다. 형벌과도 같은 30km를 걷고 나니 20km는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다만 비소식이 걱정이었다. 제발 신발과 가방이 젖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허벅지 뒤쪽에 빨갛게 벌래 물린 자국들이 있어서 식겁했다. 베드버그가 아닌지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들여다보고 했다. 다행히도 단순 땀띠였다.

6시 55분.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출발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비 소식 때문인지 쌀쌀했고,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녘이었다. 숙소 앞 636km가 적힌 순례길 비석을 한번 바라보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평야 길로 들어섰다. 1km쯤 떨어진 곳에서 플래시를 켜고 걷고 있는 순례자 한 명이 보였다. 나도 어둠 속에서 걸을 때를 대비해 가져온 플래시가 있었지만, 굳이 꺼내 들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여명이 차올랐다. 듬성듬성 하늘을 가리고 있는 먹구름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길을 나선 지 20분 만에 새벽에만 볼 수 있는 청명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큼지막한 구름들이 곳곳을 가리고 있었다.

08시 15분. 적 붉은빛으로 지구의 곳곳을 감싸는 태양이 언덕 너머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뒤에는 태양이 완연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나의 정면에는 지붕처럼 아주 낮게 깔린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그곳으로 가면 분명히 비를 맞게 될 운명이었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나는 체념하고 먹구름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굵은 빗방울 몇 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비를 뒤집어쓸까 고민했다. 이 정도라면 굳이 우비를 쓸 필요는 없었지만, 내가 가는 방향의 하늘이 심상치 않게 여겨졌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우비를 뒤집어썼다. 나의 뒤편에선 먹구름과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맑은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포도밭, 차도, 시골길을 연이어 걸었다. 비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뜨문뜨문 계속 떨어졌다. 제발 내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정확히 09시를 기점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09시 15분. 비가 잠시 그쳤을 때 어떤 마을을 통과했다. 조금 낮은 언덕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마을의 정점에 섰을 때 마을 아래 편으로 무지개가 보였다. 놀라웠던 점은 무지개의 시작점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지개 끄트머리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고난 속에 찾아온 감동이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다시 비가 내렸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한 시간 동안 무념무상으로 걸었다. 허기가 지고, 목이 말라도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힘든 와중에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추위와 찝찝함이 나를 괴롭혔다. 신발이 겪을 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경 쓰며 걷느라 발의 피로도는 평소보다 빠르게 쌓였다.

10시 30분. 점차 빗줄기가 약해졌고,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먹구름은 바람결 따라 흩어져갔다.

나는 찝찝함을 해결하기 위해 우비를 벗고 싶었지만, 추위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30여분을 더 걸은 끝에 11시 09분. 여덟 번째 도시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였음에도 피로도가 상당했다. 나는 공립 알베르게로 직행했다. 하지만 두 시간 뒤에나 체크인이 가능했다. 몹시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나는 입고 있던 우비를 배낭에 집어넣으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생각했다. 일단 추위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나는 숙소 근처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온기가 날 감싸 안았다. 그토록 포근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성당 제일 뒤쪽 의자 옆에 배낭을 내려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발의 피로를 풀기 위해 신발 끝을 헐겁게 풀었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예의가 아니지 싶었다. 다행히 신발은 젖지 않았다. 고심 끝에 산 보람이 있었다. 고어텍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마동석 배우가 쉴 새 없이 내 발을 때리는 것 같이 발이 아팠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그곳을 비추고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그냥 바라보았다. 순례길이 이토록 힘든 길이었다니. 몸서리 처질만큼 고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직 걷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기초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생존을 위해 오로지 원초적인 것들을 해결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특별한 영감을 받는다거나,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할 만한 틈이 허락되지 않았다. 배를 채우는 일. 고통을 해결하는 일. 궂은 날씨를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 빨래가 잘 마르기 바라는 일. 무사히 숙소를 구하는 일.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기를 바라는 일. 뜻밖의 부상을 얻지 않기를 바라는 일. 돈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일. 소지품을 분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 건강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일. 순례길을 걷는 동안 오직 이런 생각만 가득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발의 통증이 삶을 사는 동안 사라지지 않을 고통으로 남게 될까 걱정됐다. 이토록 강력한 육체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은 군대에서도 없었다. 그동안의 삶 전체를 되짚어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의 삶을 생각했을 때도 다시 순례길을 걷지 않는 이상 있지 않을 일이라 생각됐다. 순례길에 대해 위태로웠던 나의 마음에 균열의 조금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이 길을 왜 걷고 있는 걸까.’


30분 넘게 성당에 머물렀다. 추위와 피로, 고통으로 긴장됐던 온몸이 이완되니 얼빠진 정신이 돌아왔다. 역시 몸을 잘 보살펴야 정신이 온전한가 보다. 로그로뇨는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들도 찾아오는, 마을과 도시 중간 정도쯤 되는 곳이었다. 양송이 파타스가 유명한 곳이니, 꼭 먹어봐야 한다고 수토록 들은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근처 유명한 파타스 집을 검색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몇 군데 둘러봤는데 멀끔한 복장으로 술을 마시며 타파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순례길을 걸어 초췌해진 내 꼴을 자각하니 그곳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나는 사람이 없는 타파스 집에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발걸음을 돌렸다. 몇 걸음 걷다 보니 꽤 말끔해 보이는 타파스 집이 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들어갔다. 온갖 종류의 타파스가 테이블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양송이 타파스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주얼적으로 마음에 드는 타파스 하나와 한입거리 정도 되는 달걀찜 하나를 고르고 계산을 했다. 매장 한쪽에 있는 스탠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달걀찜을 먹었다. 익숙한 맛이었지만, 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이어서 타파스를 먹었다. 얇게 썬 바게트 빵 위에 하몽 한 점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 이름 모를 무엇이 얇게 썰려 놓여있었다. 가장 위에는 견과류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포크로 고정해 놓고, 칼로 한 조각 썰어 먹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비릿한 냄새와 조금 역한 맛이 올라왔다. 하몽과 빵, 견과류 가루들이 그 비릿함을 순화시켜주긴 했지만, 날 선 비릿함은 그것들을 무참히 묵살시켜 버렸다. 이게 도대체 뭔지 주인이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빵과 하몽만 골라 먹고,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시간을 보니 체크인까지 30여분이 남았다. 나는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바깥 마당에 8명 정도가 줄지어 서있었다. 그 끝에 서서 40여분을 기다린 끝에 체크인을 마쳤다.

20여 명은 거뜬히 소화할 2층 침대로 빼곡한 도미토리 방에 자리를 잡고, 침대 곳곳에 벌레 퇴치제를 뿌린 후, 간단한 짐 정리를 하고 샤워, 빨래를 마쳤다. 빨래는 언제나 귀찮고, 힘든 일이었지만, 이날 따라 더욱 버겁게 느껴졌다. 겨우겨우 개인 정비를 마치고, 주방으로 향했다. 알베르게에는 종종 남은 식재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파스타 면과 내가 사 온 파스타 소스와 빵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식사 뒷정리를 마친 후, 야외 마당에 잠시 내려갔다. 아주 조금씩 꾸준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피해 걸어놓은 빨래를 확인했다. 전혀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떡하나 싶은 생각을 하며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빨래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일단 꾸준히 나를 괴롭히는 발의 통증 먼저 달래기로 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30분 넘게 안티푸라민으로 발 아치 부분과 종아리를 주물렀다.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시니 피로가 급격히 찾아왔고, 나는 침낭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했다.


18시가 조금 넘는 시간 휴식을 마무리 짓고, 공동주방으로 갔다. 식사 준비가 한창인 순례자들이 여럿 보였다.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달걀과 베이컨을 넣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사실 양송이 타파스를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만사가 귀찮았다. 그때 복도에서 한국말 데시벨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곧이어 20대로 보이는 한국인 4명이 식자재를 사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정육점에서 다짐육을 사 온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조리를 하고 있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고기를 들고 있는 한 사람이 나에게 짧은 인사를 했고, 나는 딱히 반갑지 않은 티를 최대한 숨기며 인사를 대꾸했다. 무리를 지은 한국인은 특히나 반갑게 여겨지지 못했다. 다른 순례자들이 각자의 저녁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꽤 큰 소리로 수근덕거리며 식사준비를 이어나갔다. 나는 짜증이 치밀었다. 타지에서 마음이 맞는 한국인을 만나고, 일행이 돼서 신이 나는 건 알겠지만, 공용장소에서 저리도 시끄럽게 구는 것이 몹시 거슬렸다. 많은 한국인이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민폐를 끼지는 한국인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한국에서 순례길 카페를 둘러봤을 때 민폐를 끼치는 한국인이 꽤 많다는 사실을 접한 적이 있다. 무리를 지어 주방을 점령해 버리는 한국인들, 자기들이 빌린 것처럼 식사 장소를 사용하는 한국인들, 허구한 날 고기를 구워 냄새를 사방에 퍼트리고, 뒷정리를 말끔히 하지 않는 한국인들. 물론 한국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얼굴을 찡그릴만한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싶었다.

그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함박스테이크를 구웠다. 다행히 고기를 굽는 한 사람 빼고 나머지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동안 나는 내 저녁을 완성했다. 테이블 구석 자리 한편에 앉아 콜라를 마시고, 파스타를 금세 먹어 치웠다. 나는 또다시 시끄러운 무리가 오기 전에 서둘러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마칠 무렵,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식사를 마무리 지은 외국인 순례자 무리 중 한 명이 기타를 꺼내 들고 컨츄리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일행은 그의 노래에 뜨문뜨문 호응했고, 다른 순례자 몇 명도 아주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분위기를 즐겼다. 정겹고 활기찬 분위기에 다운된 기분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기타를 가져온 걸까, 설마 기타를 메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그냥 지금이 재미있고, 좋으면 된 거지.’ 중간에 나를 불편하게 만든 한국인 무리가 복귀해서 잠시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렇게 15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그 분위기에 빠져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얌전한 박수로 호응을 해주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한국인들의 정모가 시작되었다.


나는 숙소 1층 마당으로 나갔다. 어느덧 비는 그쳤고,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들 사이로 선명한 하늘색 하늘이 보였다. 나는 빨래터로 가서 빨래를 확인했다. 스포츠 웨어인 덕에 약간 마르긴 했지만, 양말은 전혀 마르지 않았다. 습한 야외보다 방안이 더 낫겠다 싶어 빨래를 걷어서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모서리마다 빨래를 걸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2층 침대가 만족스러웠다. 나는 세안과 양치를 하고, 복도 계단에 앉아 안티푸라민으로 발마시지를 했다. 발의 통증이 사라지길 바라는 일은 불가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저 더 심각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내일 일정을 확인하고, 날씨를 확인했다. 60~70% 확률로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내일은 또다시 30km를 걸어야 했는데 비까지 내린다면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이틀 연속 내리는 비는 나에게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삼키며 제발 비가 내리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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