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이다. 오늘은 약 31km를 걸어야 했다. 덕택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잠에서 깨자마자 발과 다리가 무사히 견디어 줄까 걱정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 평지라는 점이었다. 짐을 챙기고, 세안을 하고 로비로 나와 빵과 달걀로 아침을 해결했다. 학창 시절부터 군대, 직장생활을 하면서 꼭 아침‘밥’을 챙겨 먹던 나여서 걱정을 했는데, 그만큼 잘 챙겨 먹지 못해도 내 몸은 무리 없이 잘 버텨주고 있었다. 어제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부부 순례자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그들에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넸다.
06시 40분 길을 나섰다. 하늘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워진 가로등 덕에 마을은 한없이 환했다. 산책길처럼 잘 조성된 공원을 10분 정도 걸으니 마을 외각에 도달했다. 주위의 건물들이 사라지니 시야가 트였다. 아주 먼 언덕 너머로 아주 얇게 코랄색 여명이 차오르고 있었다. 바로 위 하늘은 아직 검은색이었다.
07시 07분. 이라체 수도원이 보였다. 수도원 벽에는 수도꼭지가 달려있는데, 08시가 되면 그곳에서 와인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어서 순례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탓에 사진 한 번만 찍고 길을 계속 걸었다. 곧이어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들이 모두 사라졌고, 완연한 시골길에 접어들었다. 아주 얇았던 여명 띠는 자신의 존재를 더 확산시키고, 광활한 평야 위 널따란 하늘을 덮었다. 어느새 어둠은 모두 걷혔고, 파스텔 톤 분홍색, 하늘색, 연보라색이 서로 경계 없이 하늘 채웠다. 벌써 여러 번 본 하늘이었지만, 매번 오묘하게 달랐고, 늘 내 온 정신을 사로잡았다.
태양은 나의 뒤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내 정면 멀리 정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산 먼저 태양의 세례를 받았다. 순례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서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점차 지구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내 키 두 배는 훌쩍 넘길 만큼 긴 그림자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나도 곧 태양의 품으로 들어갔다. 주위의 흙밭 역시 태양의 붉은 기운으로 뒤덮어 황금빛으로 빛났다. 발의 고통이, 육체의 고통이 아직 나를 집어삼키지 않았기에 자연의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일출을 보면 왜인지 괜히 더 기운이 생기는 것 같다.
드넓은 평야 중앙을 가로지르는 순례길이 끝없이 뻗어있었다. 오늘은 길에서 마주치는 순례자의 수가 다른 날보다 적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길을 나선 탓인 것 같다. 지평선 끝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멀리 있는 순례자가 종종 보이곤 했는데, 걷다 보면 어느새 그를 추월하기 일쑤였다. 이제 내가 먼저 나서서 그들에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넸다. ‘이 길이 순례길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의미 없는 단순한 시골길이었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감상하며, 고됨을 감수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걸었을까.‘ 절대 그럴 일 없겠지 싶었다. 신념, 믿음, 존경. 종교의 힘이 이토록 강할 수 있구나 싶었다. 완벽하다 싶은 장비들을 갖춘 채 이 길을 걷는 것도 이토록 힘든 일인데, 상대적으로 열약한 환경 속에서 이 길을 걸은 과거의 사람들에게 깊은 경외심을 느꼈다.
09시 19분. 길가 한편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례자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좀 더 다가가니 한국말이 들렸다. 중년의 모습을 한 한국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넬까 말까 망설였다. 외국인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이 안 드는데 이상하게 한국인을 만나면 괜히 망설여지고 머뭇거려진다. 결국 바로 옆에 다다랐을 때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고 하던데, 나는 예외인 것 같다.
10시 34분. 쉼 없이 걸었다. 숙소를 떠난 지 3시간이 됐고, 15km 정도를 걸었다. ‘로스 아르코스’ 마을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작은 울타리 안에 있는 동물들이었다. 닭, 오리, 거위, 염소가 한데 있었다. 짧은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이별을 선언했다.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니 팜플로냐에서 본 주택가 골목이 보였고, 골목길 사이로 태양의 세례를 받아 밝게 빛나는 성당 성탑이 눈에 들어왔다. 팜플로냐에서 보았던 풍경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었다. 골목을 벗어나니 작은 광장이 나왔고, bar 소유의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열댓 명 정도의 순례자가 그곳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 성당 앞에 있는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어제 산 빵과 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짧게 5분 정도 쉰 후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아까 분명히 걸은 것 같은 길이 또다시 나를 맞이했다. 11시가 가까워지니 태양의 열기가 버겁게 느껴졌다. 아까는 일출로 감동을 주더니, 이제는 날 고문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발에서 전해오는 고통이 진해지기 시작했고, 나의 이성을 서서히 잠식해 갔다. 또다시 고통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등산스틱의 힘이 발휘되었다. 이제 등산스틱을 다루는데 완전히 익숙했다. 나의 제3, 4의 다리였다. 온전히 발에 실릴 무게를 등산스틱에 적당히 분배하며 네발로 기다시피 걸어 나갔다.
11시 30분. 도무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던 시간이 흘렀고,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이 느껴지던 거리는 줄었다. 마지막 5km. 지금 것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늪 위를 걷는 듯 한걸음 한걸음이 몹시 무거웠고, 발 통증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그냥 길가에 드러누워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정한 목적지 ‘또레스 델리오’ 도착 15분 전, ‘sansol’이라는 마을과 마주했다. 길가 바로 옆에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숙소 마당에 해변가에서나 볼 수 있는 야외에 베드를 펴고 누워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여기 머물고 가라고 날 유혹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날 놀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12시 26분. 드디어 ‘torres del rio’ 마을 간판이 나를 환영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내가 머물 숙소를 찾느라 조금 헤맸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풀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샤워를 하는 동안 서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빨래는 형벌처럼 느껴졌다. 모든 개인 정비를 마치고, 근처 슈퍼로 향했다. 내가 찾은 곳은 초등학교 때 보았던 동네 슈퍼처럼 작고, 아기자기했다. 나는 빵과 콜라, 과자와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무척 허기가 졌지만, 먹는 것조차 귀찮고, 힘들게 느껴졌다. 나는 오로지 살기 위해 배를 채웠다. 그리고 몹시 귀찮았지만, 살기 위해, 내일을 위해 발 마사지, 다리 스트레칭을 한 시간가량 한 후, 휴식을 취했다.
19시 30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꽤 많은 테이블이 있는 넓은 공간에 사람이 가득했지만, 한국인은 내가 유일했다.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나는 애피타이저로 샐러드를 시켰고, 메인으로 돼지 스테이크를 시켰다. 먼저 샐러드가 나왔는데, 메인이라고 해도 무리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외국 순례자들 틈에 껴서 혼자 식사를 하니 이제야 외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출국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국인들과 마주쳤다. 내가 있던 모든 곳에 한국인이 있었다. 한국인만 마주치면 나의 모든 부분이 신경 쓰였고, 그래서 불편했다. 외국인과 다를 바 없는 ‘남’ 임이 틀림없는데, 한국인만 만나면 왜 이렇게 유독 신경이 쓰이는 걸까.
빈 접시는 메인 요리와 교체되었고, 와인 한잔을 마시며 식사를 마무리 지었다. 어제저녁에 이어 오늘 저녁까지 모처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기뻤고, 감사했다. 보라색 인테리어로 꾸며진 도미토리 방으로 돌아왔다. 양치를 하고, 안티푸라민 연고로 발과 종아리 마사지를 했다. 나에게 마사지는 마치 종교인이 식전 기도하는 것처럼 삶의 양식이 되었다. 자기 전 마사지를 해야 그나마 피로가 가셨고, 다음날 통증이 완화되었다. 이틀간 비가 온다고 한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제발 마주하지 말자 싶었는데, 걱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