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라

D+8

by 지안

05시 30분. 여느 때처럼 손목시계 진동 알람으로 기상했다. 침낭을 정리하고 짐과 배낭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몇 명의 순례자가 나와 같이 배낭을 정리하고 있었다. 간단히 짐정리를 하고 세안을 한 후, 공동 주방으로 향했다. 창밖을 보니 따뜻한 주황빛 조명이 우뚝 솟은 성당 성탑을 은은히 감싸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어제 산 빵과 토마토를 꺼내 아침을 해결했다. 테이블을 보니 어제는 못 본 노트와 팬이 놓여있었다. 순례자들의 방명록이었다. 한국어로 남겨진 글이 꽤 많았다. 대부분 ‘생각보다 힘든 길이다.’ ‘힘내자.’ ‘할 수 있다.’ ‘무사히 이 길을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와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부엔 까미노’로 글을 매듭지었다. 식사 마치고 나도 글을 남겼다.

‘추석 하루 전이다. 일상의 지루함,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여기서 더 원초적인,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배낭을 짊어지고, 그 무게를 견디며 길을 걷는 일상으로 들어왔다. 행복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고된 길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 자주 들어 당혹스럽다. 부디 건강히, 무사히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란다.‘


06시 20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밤새 위축된 몸을 풀고, 길을 나섰다.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내 코 끝을 시리게 하고, 폐를 파고들었다. 도심은 아직 새벽녘도 오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이전 마을과 마찬가지로 주황빛 가로등이 어둠에 삼켜지지 않게 마을을 밝히고 있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아주 낮게 깔려있었다. 얼핏 보면 건물 지붕과 나무에 걸쳐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빼곡한 건물들과 차들이 나열되어 있는 도심 중앙을 가로질렀고, 곧 도심 외각에 도달했다. 조금 더 걸으니 널따란 공원과 산책로가 나왔다. 탁 트인 시야에 구름들 사이로 아직 어두스름한 하늘이 보였다. 나의 뒤쪽, 지평선과 가까운 하늘에선 적 붉은 여명이 떠오르고 있었다. 여명이 떠오르는 하늘 곳곳에 떠있는 두꺼운 구름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하늘은 눈에 띄는 속도로 밝아졌다. 1차선 넓이 도보 양 옆에 조경이 잘된 가로수길을 지나니 호수공원이 나왔다. 호수에 여명과 하늘이 선명히 비쳤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켠 상태로 걸으며 걷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계속 담았다.

07시 50분. 공원에 심어진 나무와 나뭇가지, 잎들 사이로 해가 차올랐다. 짙은 태양 빛깔이 땅과 나무, 호수를 비쳤다. 지금껏 바라본 어떤 일출보다 활기가 느껴졌다. 어느덧 태양은 완연히 떠올랐다. 나는 구름에 적당히 가려져 갈라지는 태양빛과 태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최대한으로 쳐다보았다. 시력이 멀 것 같이 눈 부셨지만, 그냥 한번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싶었다. 태양의 잔상으로 나의 시야는 엉망이었지만,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08시 36분. 널따란 호수공원을 벗어나니 2,3km 떨어진 길 아래로 마을이 보였다. 태양이 구름 사이사이로 마을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길은 비에 젖어있었다. 다행히 내가 오기 전에 비를 뿌린 모양이었다. 이제 중간에 지나치는 마을들은 웬만하면 그냥 건조하게 지나쳤다. 휴식을 취할 것도 아니었고, 비슷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끌만한 무엇이 없다면 너무나 일상적이었다. 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낮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눈에 띄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입구로 보이는 철문 앞에 순례자 세 명이 나란히 서서 내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들 근처에 가서 어깨너머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은 꽤 규모가 있는 공동묘지였다. 나는 잠시 묵념을 했고, 다시 발걸음을 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파도치듯 험상궂게 생긴 먹구름이 하늘과 태양을 가렸다. 제발 비만 오지 마라 싶었다. 평탄한 시골길이 이어졌고, 중간중간 포도나무 밭이 보이기도 했다.

09시 30분. 15km 지점을 지났고, 3시간이 흘렀다. 묵묵했던 발의 통증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족 보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ctrl+c, ctrl+v를 한 것처럼 비슷한 풍경이 연이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등산 스틱을 땅에 내다 꽂으며, 호흡과 발걸음 간의 리듬을 맞추며 기계처럼 발걸음을 굴렀다. 발이 아팠음에도 나를 앞서던 순례자를 하나 둘 앞질러 지나쳤고, 10분, 20분. 시간은 내 발걸음에 비례해 흘러갔다.

칠흑 같이 어둡고, 두꺼운 구름이 낮게 깔렸지만, 그 틈을 기어코 비집고 대지를 향해 태양이 내리쬐기도 했다. 젖은 땅과 마른땅이 연이어 반복되었고, 길가 양 옆으로 포도나무 밭이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 없이 계속 걸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보이면 간간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감흥은 번개처럼 짧은 순간에 그쳤다.


12시 04분, 나헤라 마을 도입부에 도착하니 조랑말이 낙타처럼 짐을 짊어지고 혼자서 내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주인도 없이 어딜 향하는 걸까. 곧이어 마을에 들어섰다. 흙길을 벗어나 아스팔트길에 진입하니 흙길이 푹신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스팔트는 차에게 더 좋은 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흙길을 걸은 세월이 훨씬 길었다.

다세대 주택이 즐비한 곳을 지나니 시냇물 위를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나왔다. 물가 양 옆에 무성한 잔디가 심어져 있었고, 잘 조성된 산책로가 보였다. 나는 발 통증이 극심해 자세히 구경할 겨를이 없었고, 사진조차 찍지 않은 채 숙소로 직행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목에 큰 마트가 나왔다. 예정에 없었지만, 아예 장을 보고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어 간단한 장을 보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사립 알베르게에 입성했다. 역시 비싼 만큼 좋은 컨디션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배낭을 풀고, 간단히 짐 정리를 한 후, 샤워와 빨래를 마쳤다. 그리고 마트에서 산 파스타 재료들로 점심을 해 먹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발마사지를 시작했다. 30km를 걸은 것 치고 전체적인 컨디션은 좋았지만, 발의 통증만큼은 날 지옥으로 끌어내리려 작정한 것 같았다. 30분 넘게 발을 주물렀다. 발의 통증이 손에 흡수된 것처럼 손도 아파왔다. 그래도 그만큼 발은 덜 아파졌다. 벌써 8일간 약 200km를 걸었다. 그럼에도 약 600km를 더 걸어야 했다. 헛웃음이 나왔고, 자칫하면 헛구역질도 나올 뻔했다. 지금 상태를 봤을 때,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순례길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들, 잡다한 고민들과 잡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례길은 살면서 겪기 힘든 고통으로 고난을 선사하며 또 다른 문제들을 접하게 만들었고, 나는 또다시 번뇌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순례길을 오겠다고 결심한 것은 나였다. 순례길을 걷고 싶다면 이곳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마땅히 감내해야만 했다. 순례길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있는데, 내 마음만 요동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아마 맞는 것 같다.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내 모습을 자각하는 것은 몹시 쓰라린 일이었다.

움직이기 꺼려질 만큼 견디기 힘든 통증을 겪고 있었지만, 방에서만 머물다 지나치기엔 마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숙소를 나와 아까 무심히 지나쳤던 다리로 향했다. 그곳은 유럽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폭이 15m 정도 되고, 발목이 잠길 만한 시냇물은 50도쯤 기울어진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빛들을 조각내 사방으로 눈부시게 반사했고, 9월임에도 5월처럼 푸릇한 잔디와 가로수들, 이름 모를 식물들이 시냇물 양 옆 길가를 가득 매웠다. 마을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곳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산책로 바로 옆에는 5층쯤 되어 보이는 상가 몇 개가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그중 1층에 야외 테이블과 파라솔이 있는 bar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유 있게 맥주를 마시는 사람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그들과 같이 그곳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욕구를 짓눌렀다. 나는 먼발치에 서서 그들의 여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았다.


하늘에 뜬 뭉게구름은 적당히 멋을 부리고 있었다. 그 아래 선 나는 마을의 풍경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거닐었다. 발의 통증이 나의 여유를 최대한 방해하려고 했지만, 꾹 참고 버텼다. 마을 구석구석을 더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취침을 하기로 했다. 나는 다리를 다시 건너 전날 나헤라를 검색하며 찾은 중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정말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었다. 그곳 역시 메뉴 델디아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7유로짜리 메뉴 델디아를 주문했고, 금방 나왔다. 전분을 적당히 섞은 누룽지탕이 가장 먼저 나왔고, 민둥산처럼 푸짐한 달걀밥과 굴소스로 볶은 중국식 제육볶음이 동시에 나왔다. 평상시라면 다 먹기 힘들었을 양이었는데, 단숨에 먹어 치웠다. 모처럼 쓴 젓가락도 정겹게 느껴졌다. 배를 한 것 채우니 발의 통증도 잊을 만큼 행복감을 느꼈다. 순례길을 걷고 난 후,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것조차 무척 귀찮았는데, 점심을 위해 매번 장을 보고, 조리를 해야 하는 것은 중노동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타인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니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남이 끓여준 라면이 가장 맛있다는 말은 확실했다. 모처럼 편하게 혼자 식사를 하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온이 찾아왔다. 창가에 보이는 단조로운 마을의 모습이 좋게 보였고, 이곳에서 이처럼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동안의 고생이 이토록 사소하고, 어쩌면 당연했을 일에 감사를 느끼게 만들었다.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 또다시 다리 위에 섰다. 태양은 아까보다 더 기울어졌고, 냇물에 부서지는 태양의 조각 개수는 더 늘어났다. 한 젊은 여자가 전자 담배를 내뿜고 내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 길에서 봤던 먹구름이 땅에 내려온 것 같았다. 물가 옆 잔디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리 중앙에 가니 아까 보며 부러움을 느꼈던 bar가 다시 보였다. 아까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와 같이 그들에게서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부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사방을 바라보며 그곳의 모든 것을 내 안에 담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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