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라도

D+10

by 지안

역시나 기상은 몹시 힘들었다. 10일째가 되니 약간 출근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루를 쉬었으니 그만큼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나마 유지되던 텐션마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07시 04분 숙소를 떠났다. 새벽공기를 한껏 마시며 걸으니 그래도 기분은 상쾌했다. 동이 틀 무렵의 새벽은 언제나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고, 신비롭고, 환상스러운 색감은 언제나 괜히 설레고,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오늘도 특별한 일출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르내리는 길 덕분에 두 번의 일출을 마주했다. 아득히 먼 지평선 끝에서 한번, 내가 지나온 언덕길 너머로 한번. 일출의 순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로뇬에 도착했다.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머물지 않은 마을, 그냥 스쳐 지나온 수많은 마을과 다르지 않았지만, 어제의 일로 잊을 수 없는 마을이 되었다.

작은 언덕에 있는 작은 마을을 벗어나는 길 밑으로 광활한 평야가 나의 시야에 가득 담겼다. 나는 마을과 평야를 잇는, 곡선을 그으며 부드럽게 뻗은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다. 곧 평야 한복판에 위치한 길에 도달했다. 작물들이 모두 베어져 있는 평야는 마치 잔잔한 파도의 물결처럼 지반에 따라 오르내리는 형상이었고, 순례자가 걷는 길은 아스팔트로 곧게, 평평하게 다림질되어있었다. 또 직선으로 길게 뻗은 길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었다. 그 길은 그대로 지구 전체를 둘러쌀 것만 같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순례자를 추월한 덕에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광활한 대지를 오롯이 나 혼자 걷는 일은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괜히 내가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외롭다는 기분보다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기분을 느꼈다. 시들었지만 여전히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를 밭을 지났고, 순례길 인터넷 카페에서 몇 번 봤던 지점을 지났다. 나는 그곳에서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뭔가 순례길 하면 딱 떠오를 것 같은 길에서 독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나를 뒤따라오던 순례자가 나의 옆에 멈춰 섰다. 그도 그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나는 그에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나누었고, 자연스레 헤어졌다.


그 길은 약 30분간 이어졌고, 평야를 지나 작은 마을에 진입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나보다 앞선 곳에서 느린 걸음을 내딛고 있는 낯익은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젊은 한국인 여성 순례자와 족히 60세는 넘어 보이는 남성 순례자였다.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는 순례자들이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들은 순례길에서 처음 만났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시간 동안 친해졌다. 그리고 서로의 동의 하에 순례길을 같이 걷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남성순례자가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한 것이다. 정확히 어떤 부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절뚝거리는 것을 보니 다리 쪽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보였다. 남성 순례자는 본인 몸집에 절반쯤 되는 가방을 메고, 등산 스틱으로 땅을 짚으며 묵묵히 걸었고, 그의 동료인 여성 순례자는 몸집의 1.5배 되는 배낭을 지고, 한 발짝 뒤에서 그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그들의 우정이 아름다웠다. 그들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과연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만약 부상을 입어 절뚝이는 상황에서 혼자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만약 내 동료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만약 그가 만약 혼자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부상을 감내하며 계속해서 나아갔을까. 그 둘이 순례길에서 만난 일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 옆을 지나칠 때 눈을 맞추며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넸고, 그들을 앞질러 나아갔다.

상쾌한 기분으로 걷는 것은 딱 9시까지였다. 그 이후에도 좋은 풍경이 나의 망막과 시신경을 거쳐 뇌 속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짙어지는 피로감과 고통스러움이 감상을 방해했다. 내 얼굴빛 같은 황톳빛 평야가 끊임없이 펼쳐졌고, 시들었지만 꼿꼿이 서있는 해바라기 밭이 중간중간 연이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11시 30분.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멀리서 어머니 나이 때의 순례자 두 명이 길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렴풋하게 보였지만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그들과 가까워졌을 때 그들이 누군지 확신이 섰다. 순례길 두 번째 마을인 론세스바예스 저녁시간 때 처음 만났고, 그 후로도 몇 번 마주쳐 짧은 인사를 나눈 분들이었다. 그들은 내 나이 대 자녀가 있는 자매 순례자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들도 나를 기억하는지 반갑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함께 얼마 남지 않은 마을까지 걸어갔다. 작은 광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교롭게 그들과 나의 숙소는 같았고, 체크인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각자가 챙긴 간식거리를 꺼내 나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순례길을 오르게 됐다고 했다. 예전부터 꿈꾸던 곳이었는데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이런저런 이유가 자꾸 생기면서 미루게 된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고 했다. 더구나 자매끼리 순례길에 올 수 있었기에 뜻깊은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그들은 무척 힘들지만, 그만큼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생각보다 고되고, 버거운 탓에 일정을 소화해내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이는 고통 때문에 도무지 순례길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어 한탄스럽다고 했다. 내가 원해서 왔고, 선택한 일인데 이토록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순례길에서 누군가에게 뭐에 홀린 듯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뽑아냈는데, 그 이후로는 누에고치가 실을 토해내듯 온갖 말들이 나도 모르게 술술 나왔다. 그들은 테이프로 녹음을 하듯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실들을 혹여 꼬이지 않을까 조심하며 감아내 듯 들어주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을 매듭지었다. 내 말이 완전히 끝이 난 건 지 확인하는 듯 짧은 정적이 흘렀고, 한 분이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괜찮다고 앞서 말했지만, 사실은 저도 그래요. 너무 힘드니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종종 들어요. 저도 신자인 저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아, 혹시 이름이?”

“지안이예요.”

“아, 지안 씨. 지안 씨가 그런 마음 드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순례길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이랑 대화해봐도 거의 비슷해요. 알죠?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아요.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음 마을로 점프하거나, 며칠 동안 한 마을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거나 불안한 마음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소중한 시간이잖아요. 생각보다 많은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이곳을 오겠다고 선택을 하는 결심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걸 알잖아요. 종교적인 말을 조금 해보면 이 시기에 지안 씨가 순례길에 오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몰라요.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순례길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길이 아니고, 순례길이 허락해야만, 순례길이 불러야만 올 수 있는 곳이라고요. 그러니 자부심을 갖고, 지안 씨 속도대로 이 길을 걸으면 돼요. 정답이 없는 곳이잖아요. 순교하러 온 것도 아닌데,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 조금 여유 있게 이 길을 즐기면 좋을 것 같아요.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아프면 쉬어도 되고, 힘들면 쉬어도 돼요. 아무도 뭐라 그러는 사람 없어요. 오직 자신만 스스로에게 뭐라고 할 뿐이지. 그냥 자신만의 속도를 찾고 이 길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길 바라요. 우리도, 지안 씨도.”

옆에 있던 분도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순례길을 걷는 사람 모두 힘들 거예요. 여유를 찾길 바라요.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사실해주신 말씀을 그동안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내는 일이고, 그 말처럼 모두 똑같이 힘든 일이기에 나약하게 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써 외면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나의 속마음을 대신 말해주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의심이 조금 걷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 봤는데, 확신이 안 들었어요.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 같아요. 감사해요.. 덕분에 마음이 환기된 것 같아요.”


체크인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고, 우리는 다시 배낭을 챙겨 근처 성당으로 향했다. 이제 성당은 익숙했다. 그들과 함께 조용히 들어섰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성당 내부를 둘러봤고, 각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눈을 감고, 어색하지 않게 두 손을 모으고 나만의 기도를 했다.

‘저분들을 만나 제 마음이 회복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저분들이 건강하게 순례길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또한 건강히, 무사히 순례길을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미묘한 정적 속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알베르게로 향했다.


아직 체크인이 시작되지 않아 몇 명의 순례자가 숙소 앞에 배낭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도 줄 끄트머리에 배낭을 세워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 남성 한국인 순례자 두 명이 우리 뒤에 섰다. 그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연이어 익숙하고 반가운 두 명이 다가왔다. 일본인 커플 순례자였다. 내가 그들을 알아보는 순간 그들도 나를 알아봤고, 동시에 반가움을 표하며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과 나 모두 언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긴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짧은 인사말에 그간의 안부, 오늘 어땠는지,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순서대로 체크인이 이루어졌고, 2층으로 방 배정을 받았다. 혼성 도미토리는 이미 익숙한 지 오래였다. 나는 짐을 풀고,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해치웠다. 내가 이 알베르게에 온 이유는 알베르게 잔디 마당에서 요가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알베르게 스탭에게 요가는 언제쯤 하는지 물었다. 직원은 조금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는 왜 하지 않는지 물었다. 스탭은 내가 알아듣길 바라는 듯이 말을 하며 큰 제스처를 취하고, 종이에 뭔가를 쓰며 설명했다. 대충 알아듣기로 요가를 하는 시즌이 있는데, 지금은 그 시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무척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알아들었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간식거리를 먹은 탓에 그다지 배고프지 않았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마사지를 하며 전체적인 일정을 검토했다. 족히 20일은 더 걸어내야 했다. 막막했다. 하루를 쉬었음에도 발은 여전히 심상치 않게 아파왔다. 아마 20일 동안 계속해서 이렇게 걷는다면 발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내일과 모레 일정을 살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잠시 멍하게 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쉴 것인지, 버스를 타고 한 마을을 건너뛰어 대도시로 가서 쉴 것인지 고민했다. 마음 한편이 조금 불편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800km는 막연했고, 실감이 나지 않는 거리였지만, 남들도 대부분 다 걸으니 나 역시 완벽하게 걸어낼 수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정해놓은 일정대로 당연히 흘러갈 줄만 알았다. 그러기 위해 지금껏 분실물이 생기지 않게 조심했고, 비록 어제 일이 있긴 했지만, 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게 늘 조심했다. 그런데 가장 필수적인 부분인 ‘걷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 이것은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신경 써도 벌어질 일이었다. 순례길을 걷는 이상 나에게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 초자 해본 적 없었다. 완벽하게 걸어낼 줄만 알았던 내게 너무 빠른 시기에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그런데 ‘완벽하게 ‘ 걷는다는 것은 뭘까. 처음부터 끝까지 두 다리로 걸어내는 일? 그 일만 성공한다면 순례길을 완벽하게 걸어낸 것일까? 순례길은 완벽을 요하는 길일까. 아직 순례길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했지만, 그것은 분명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벨로라도 다 다음 목적지이자 두 번째 대도시인 부르고스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를 쉬기로 결심했다.


나는 낮잠으로 씨에스타를 충분히 누리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내 바람대로라면 요가를 했었어야 할 마당으로 갔다. 그곳은 풋살 경기장만 한 크기의 공간이었고, 수분 머금은 푸릇한 잔디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한쪽에는 자그마한 풀장도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는 2m쯤 되는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고, 곳곳에 꽃들도 심어져 있었다. 그곳을 보니 요가를 못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오늘은 숙소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기 때문에 딱히 장을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숙소를 빠져나와 마을을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 덕에 한결 달리 보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여유로움을 느끼며 마을을 거닐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부르고스로 가는 버스 시간표와 방향을 확인했다. 혹시나 또다시 실수하지는 않을까 몇 번을 재차 확인했다.


저녁시간이 되었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여덟 개가 공간에 딱 들어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테이블은 순례자들로 금방 매워졌다. 나 역시 한 테이블에 앉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체크인 때 만난 한국인 순례자들과 합석했다.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왔고, 짧은 상의 끝에 폭립 바베큐 하나, 새우구이 하나, 순례자 메뉴 5개를 시켰다. 와인과 맥주, 샴페인을 마시며 거의 세 시간 가깝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동안 겪었던 순례길의 소회, 순례길을 떠나게 된 이유, 한국에서의 삶 등 다양한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가장 어린 나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었고,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이른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탓인지, 같은 나이 또래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나이차이가 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편했다. 취기가 서서히 올라왔고, 피로감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자리는 자연스럽게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곧장 방으로 올라가 취침을 했다. 오늘은 추석이었는데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또 모처럼 ‘맛’을 느낄 수 있는 식사여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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