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순례자들의 부스럭거림이 들려도 나는 누워있었다. 잠에서 깼지만 그냥 누워있었다. 버스를 타고 떠날 예정이었기에 늦장을 부려도 괜찮았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떠나고, 환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워갈 무렵에야 몸을 일으켰다. 몇몇 순례자도 나와 같이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걸어가는 데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걸까?‘ 속으로 생각했다. 한 순례자가 여유롭고 기분 좋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느긋하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달걀과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버스 시간까지 아직 한참 남았지만, 혹시나 놓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일찍 숙소를 나왔다.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온몸 구석구석에 상쾌함을 불어넣었다. 발은 여전히 아팠고, 그 고통이 나를 괴롭혔지만, 어제 이후로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그래서 이렇게 버스를 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8시 40분. 30분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탔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중간쯤 자리를 잡았다. 무거운 배낭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널따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푸름이 사그라든 9월. 온통 황토색뿐인 광활한 대지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푸름이 가득한 5월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다시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몸은 확실히 편했다. 하지만 막상 버스를 타니 그들과 같이 순례길을 걷기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연이어 버스를 탔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순례길의 보편화된 질서를, 규칙을 어긴 것 같아 불편했고, 뭔가 꺼림칙했다. 여러모로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한 시간쯤 달려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확실히 대도시였다.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팜플로냐보다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가 있는 중심부로 걸어갔다. 높다란 건물들을 지나고, 좁은 강줄기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니 숭례문과 같은 커다란 성문이 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중세시대 성 한 채를 성문으로 고쳐 쓰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거대한 성문이었다. 성문을 지나니 축구경기장만 한 광장이 나왔고, 누군가의 관악기 소리가 새소리와 함께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는 지금껏 본 성당 중 단연코 가장 큰 성당이 광장의 주인공다운 모습으로 아침햇살을 쬐고 있었다. 시간은 09시 51분이었다. 순례자라면 걷고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순례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 살고 있을 법한 사람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비둘기 무리가 광장 곳곳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광장 한편에 있는 벤치가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 배낭을 놓고 앉았다. 숙소에 체크인할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쌀쌀한 기온 탓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다시 배낭을 지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성당 뒤편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역시나 문이 닫혀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 대성당을 관람하고 싶었지만, 짐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후 일정으로 미뤘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대성당 주변은 관광지답게 여러 음식점과 기념품 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오전인지라 열지 않은 매장이 많았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성문 밖으로 나갔다. 성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넓이가 6,7m 정도 되는 물줄기가 세차게 흘렀고, 그 옆으로 산책로가 길게 뻗어있었다. 좁은 길 양 옆으로는 가로수가 촘촘히 심어져 있었고, 가지와 잎들이 서로 촘촘히 얽혀 아치형 지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꽂지 않은 채, 한동안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발이 아팠지만, 이 산책로에서 마치 마을 주민들처럼 천천히 걷는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을 기분 좋게 맞았다. 모든 것이 적당하게 어우러졌다. 여전히 발은 아팠지만, 마음의 평온함은 지킬 수 있었다.
11시 30분쯤 다시 알베르게로 갔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지만, 문 앞에 15m 정도의 길이로 배낭이 줄 서 있었다. 아차 싶은 생각에 서둘러 나도 배낭을 줄 끝에 내려놓았다. 체크인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숙소는 대성당과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나는 성당 뒤편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생각보다 전경이 좋았다. 몇몇 순례자는 가장 좋은 위치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다 찍은 것 같아 보일 때 그들에게 가서 혹시 나도 찍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아주 열정적으로 구도를 바꿔가며 찍어주는 모습에 몹시 고마웠지만, 약간 민망했다. 내가 그들에게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는 제스쳐를 취한 후에야 웃으며 핸드폰을 넘겨줬다. 그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그곳을 떠났고, 나는 전경이 보이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그리고 오늘 뭘 할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선 체크인을 하고, 샤워와 빨래를 마친 후,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이곳은 주방이 없는 숙소여서 밖에서 해결해야 했다. 점심을 먹고, 대성당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딱 되겠지.
체크인 20분 전이 돼서 다시 숙소 앞으로 되돌아갔다. 가방 주인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얼마 지니자 않아 체크인이 시작되었고, 생각보다 빨리 마쳤다. 순례길 두 번째 마을이었던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만큼 큰 규모의 비슷한 구조를 한 알베르게였다. 지정받은 침대로 가서 사물함에 짐을 넣고, 샤워와 고된 빨래를 마쳤다. 나는 곧바로 숙소를 나와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대성당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와는 달리 대부분의 가게가 열려있었다. 하지만 관광지답게 비싼 가격이었다. 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 슈퍼로 가서 바게트 빵과 머핀 몇 개가 담긴 봉지, 음료를 집어 들고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를 했다. 오늘 마을 하나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쉬려고 했지만,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14시 40분부터 16시 10까지 부르고스 대성당을 관람했다.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큰 성당답게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외관은 시대를 초월하는 느낌을 들게 했다. 실내는 각각의 의미가 있는 방들과 공간들이 많았다. 그곳은 금, 철, 보석, 대리석 등 그 당시 아주 고귀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구조물과 구성물들, 고급 원료를 이용해 그려진 유화들이 가득했다. 구체적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움, 진중한 믿음, 신성함이 온전히 느껴졌다. 성당 가장 중심부, 지금은 사람이 거의 없는 미사가 진행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포갰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부터 지금까지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가슴속 깊이 단 하나의 기도를 읊었다. ’부디 건강히, 무사히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대성당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20유로 정도는 소비해야 했다. 그 정도 소비를 한다고 해서 전체적인 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평균 소비를 보면 매우 큰 소비였다. 나는 괜히 망설여지고, 부담스러웠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큰 비용도 아니었고, 전체적인 경비를 고려해도 무리 없는 지출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20유로 소비가 무척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소비가 내 미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았다.) 결국 근처 마트를 가서 바게트와 자두 몇 개를 사서 대성당이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푸석한 빵으로 식사를 때우는 내 모습이 왜 이리 처량하고 궁상맞아 보이던지, 또 왜 이리 파리와 벌레들이 자꾸 꼬이는지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누추하게 보였다. 주방을 없는 숙소를 사용하다 보니 여러모로 리스크가 상당했다.
여태껏 오늘이 가장 궁핍한 하루였다. 식사라고 보기 난감한 식사를 마치고, 숙소 뒤편 언덕에 올라 구름 끼어 흐릿하게 보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부디 앞으로의 날들에서 오늘과 같은 날은 없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