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도네이션이었는데 많이는 내지 못했다. 오늘도 21KM 정도만 걸으면 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조금 여유 있게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워낙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금방 시골길에 들어섰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역시 처음 두 시간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먹구름은 뒤로 밀려났고, 몽환적인 푸른빛 하늘이 보였다. 잘 다져진 흙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길 양 옆에 선 갈대도 보기 좋았고, 그 경계 넘어 유연한 굴곡으로 펼쳐진, 아무것도 심기지 않은 밭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전체적인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 발도 거의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도 상쾌했다. 아마 잘 챙겨 먹은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 되니 지평선 끝에서 구름 사이로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얇고 넓게 펼쳐진 구름 탓에 여명의 잔상은 거의 없었지만, 힐끔 모습을 내비치는 태양도 볼 맛이 났다.
한 시간쯤 지나니 길에 높이가 3M는 되어 보이는 돌무덤 몇 개가 있었고, 그중 가장 큰 돌무덤에 기다란 십자가 하나가 정중앙에 꽂혀있었다. 내 앞 뒤로 걸어가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점점 줄었다. 나는 잠깐 그곳에 멈춰 무사를 기원하는 기도를 속으로 하고 다시 걸었다.
오늘 걸으면서 생각 정리를 했다. 내가 지금 이 길을 걸으며 은근한 불행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너무 철저히 계획하려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완성 지어야 하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계획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 따르면 철저히 J인 사람이다. 20살. 나의 첫 여행인 제주 여행 때 교통편을 고려해서 10분 단위로 계획표를 짜서 여행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작은 우발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여행 직전까지 인터넷으로 사전조사를 하며 이전에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흡수했고, 필요한 것들이나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최대한 검토해서 나름의 대비책 역시 세워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주 큰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순례길을 잘 걸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만 봤다. 정해진 일정대로 보통 30일 만에 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길을 걷는 동안 일련의 사건과 불운이 따랐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다 걸어서 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던 것이다. 순례길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만 접하고 그에 따라 핵심들만 추려서 준비도 철저히 했으니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별 큰 일 없이 당연히 완주해 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단단한 착각이라는 사실을 첫날부터 체감했다. 몸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과연 이 길을 다 걸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 불안이 끊임없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지만 애써 외면하고 이미 정한 일정대로 걸었다. 하루에 몇 km를 걷고, 어떤 마을에 도착해서 머무를지 인터넷 카페에서 본 여러 일정표들을 고려하고 적당히 조합해 만들었다. 출발 전에 정해진 이 일정은 하루라도 엇나가면 모든 일정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계획에 나는 없었다. 어쩌면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몇 km를 걸어서 정해진 마을에 머문다는 것은 순례길의 한 과정일 뿐이지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순례길을 걷느냐, 예를 들면 걷느냐, 자전거를 타느냐, 중간중간 버스를 타느냐, 누군가처럼 일정을 나눠서 걷느냐는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순례길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순례길은 누군가에 의해 정의될 수 없는 곳이다. 순례길은 하나의 삶들이 모여서 만든 길이고, 그 말은 결국 인생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각자의 삶마다 의미가 다르고, 그것이 존중받아 마땅한 것처럼 순례길에서 또한 저마다의 여정이 존중되고,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난 다른 사람의 탈을 쓰고 그 사람이 한 대로 안정적이고, 평이하다는 착오를 한 채 순례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걷고 있던 것이다.
이제 난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길을 걸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내 식대로 지내보기로 했다. 물론 전체적인 일정을 완전히 수정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유연하게 순례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나니 몸은 여전히 힘들고 발은 아팠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음이 달라져서인지 오늘은 길이 참 예쁘게 보였다. 길 중간에 강아지 한 마리와 걷고 있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가볍게 목 인사를 건넸다. 목줄이 채워지지 않는 강아지가 꼬리를 세게 흔들며 내 옆에 와서 몇 걸음 같이 걸어줬다. 주인은 그런 강아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주인과 조금 거리가 벌어지니 강아지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다.
세 시간쯤 걸으니 작은 마을 하나가 나왔다. 마을이 가까워지니 신기하게 안 보이던 순례자들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작은 성당이 있어 잠시 들렸다. 길에서 본 성당 중에 규모가 가장 작은 성당이었다. 입구 앞에 작은 도네이션 박스가 있어서 약소하게 동전을 넣었다. 조금 더 걸으니 꽤 넓은 야외 테라스가 있는 bar가 보였다 낮은 담장 너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순례길을 여유롭게 걷겠다고 방금 전에 생각했지만, bar에 가지는 않았다. 아직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을을 벗어날 때 흰 담장에 santiago 457km라고 쓰여있었다. 줄지 않을 것만 같은 숫자가 조금씩 줄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골 밭 길을 걸었는데 말똥인지 소똥인지가 2km 정도 깔린 길이었다. 정말 지독한 길이었다. 냄새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내 몸과 얼굴에 파리가 계속 꼬이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병균이 옮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가끔 길바닥에 개미가 지나가고 혹시 그들을 밟지 않을까 걱정 됐는데 이놈의 파리들은 모조리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벌 같은 길을 지나니 일 차선 도로 양 옆에 큼지막한 은행나무가 길게 심어져 있는 길이 나왔다. 완연한 가을이 기대되는 길이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작은 요새 같이 보이는 건물들이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포탄을 맞은 건지 거의 허물어진 건축물이었다. 나는 좀 더 구경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발이 워낙 아파왔기 때문에 사진 몇 장만 찍고 지나쳤다. 그리고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 도착 전 작은 가게에 들러 간식을 사서 숙소로 걸어갔다. 근데 중간에 갑자기 양손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 바라보니 등산 스틱이 없었다. 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한숨만 크게 쉬고 다시 걸어가 스틱을 챙겨 숙소에 도착했다.
내가 간 숙소는 한국인 직원이 거주하는 알베르게였다. 나는 체크인을 마치고, 개인 정비를 한 다음 한국인 직원에게 순례길 간에 버스 노선을 혹시 아냐고 물어봤다. 그는 이 마을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고, 다음 마을에 가서 다시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마을까지 다시 걸어야만 했다.
저녁은 비빔밥이었다. 내가 이 숙소를 온 이유였다. 한식이 미칠 듯 땡긴 건 아니었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순례길에서 비빔밥을 먹는다는 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맛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한동안 매운걸 안 먹어서 그런지 고주창이 조금 맵게 느껴졌다. 땀도 조금 났다. 외국인들도 매워했는데 그러면서도 맛있게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쉬다가 바로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바로 옆 침대에서 외국인 커플이 거리낌 없이 애정행각을 하고 있었다. 불편함을 느꼈는지 다른 순례자들이 방을 나갔고, 나와 그들만 남았다. 나는 귀찮고 피곤했기 때문에 최대한 신경 끄고 이어폰을 꽂고 그들을 외면했다. 근데 그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이어폰 소리를 끄고 그들이 뭐라 하는지 들었다. 나를 비하하는 말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못 들을 거라 착각하고 별의별 말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애정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쉬러 방으로 들어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한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그들이 신경 쓰여서 두 시간이나 잠에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