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굉장히 여유로웠다. 다음 마을까지 16KM만 걸으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에 이어 플러그가 없어져서 당황했고, 너무 편한 침대여서 그런지 잠을 좀 설쳤다. 6시 정도가 되니 다른 사람들이 길을 나설 준비를 하는 바람에 조금 부산스러웠다. 난 잠시 일어나 화장실을 한번 다녀온 다음, 이어 플러그를 꽂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미 이른 기상이 익숙해진 탓에 깊은 잠에 들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완전히 기상을 했다. 그리고 아주 여유롭게 나갈 준비를 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미 길을 떠난 후였고, 숙소에는 나 혼자 남았다. 나는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음악을 조금 크게 틀고 숙소 마당으로 나가 일출 전 새벽 풍경을 즐겼다. 그리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었다. 이런 여유는 순례길에서 처음이었고, 행복했다. 이토록 여유롭게 순례길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어제 미리 준비해 둔 간단한 아침을 먹고 8시 정도가 돼서 숙소를 나섰다. 해는 거의 뜨기 직전이었다. 숙소를 벗어나 얼마 지나자 않아 일출을 마주했다. 난 해에 인사를 건네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이 많았다. 그동안 길에서 사람을 자주 만나지 못한 게 내가 너무 일찍부터 걷기 시작해서였던 것 같았다. 전에 한 외국인 순례자와 대화를 한 게 생각났다. 한국인들은 정말 부지런한 것 같다고. 대부분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숙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 뭔가에 좇기는 게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그 말을 이제야 실감했다.
오늘은 16KM 정도만 걸으면 됐는데 그럼에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심지어 발이 아픈 시점이 빨리 와서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꾸역꾸역 걸어서 예정 시간인 11시 정도에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마트에 먼저 들러 간단한 점심거리를 사고 체크인을 했다. 이곳은 성당에서 운영하고, 수녀님들이 관리하는 숙소였다. 후기를 찾아보니 그 성당에서 하는 미사와 숙소에서 진행하는 어떤 이벤트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는 곧바로 개인 정비를 마친 후, 점심을 부랴부랴 해 먹었다. 그런데 내가 씻는 사이 냉장고에 넣어둔 콜라를 누군가 먹어 치워 버렸다. 정말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침대로 돌아와 일기를 쓰며 생각했다. 이 길을 꼭 걸어내야만, 걸어서 완주해야만 완전일까? 성공일까? 모르겠다. 아직 100%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지금 난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례길에 정답이 없다는 내 판단에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그럼 난 나만의 여정을 할 것인가? ‘그렇다.’였다. 중간에 마을을 점프하고, 고난의 과정을 점프하고, 편한 생활만 추구하는 편법적인 사람이라며 누군가 비난하고, 무시할지 몰라도 난 이곳에 최소한 골병 나려고 오지 않았다. 인생을 생각했을 때 순례길에서처럼 고난을 점프해 버릴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에 순례길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전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 나는 순례길 자체를 잘 걸어내려고, 남들과 똑같이 그것을 성취해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순례길을 통해 그다음에 있을 인생을 더 잘 살아내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맞다. 내가 순례길에 온 이유는 그것이었다. 순례길에서 뭔가 큰 깨달음이나 다른 무엇, 누군가 얻었을 무엇을 그대로 얻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순례길을 통해 그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순례길은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고,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저녁 식사 전, 숙소 거실에 순례자들과 수녀님들이 모였다. 대략 20명쯤 되어 보였다. 나는 그 주변을 힐끔거리며 껴볼까 계속 망설였는데, 어느 한 수녀님이 웃으며 나의 팔을 이끌어 빈자리에 앉혔다. 먼저 수녀님들이 노래를 했다. 아는 노래도 있었고, 모르는 노래도 있었다. 그리고 수녀님 중 가장 연세가 있으신 분이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난 뜨문뜨문 알아듣는 정도여서 전체적인 뉘앙스만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수녀님의 말의 의미를 더 느낄 수 있도록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 건지 순간 울컥했다. 왠지 그간의 날들을 위로해 주고, 앞으로 있을 날들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주는 느낌이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수녀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순례자 한 명 한 명 자기소개를 한 후, 각자 자기 나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순례자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부디 나의 순서는 오지 않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곧 내 순서가 됐다. 그때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나는 짧게 내 이름과 나라를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동안 어떤 노래를 부를지 고민한 후, 당연히 애국가를 불러야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애국가를 부르려 입을 때는 아주 짧은 순간 아리랑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냅다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기교를 없애고 순수하게 마치 시를 읽듯이 나긋하고, 단순하게 진심으로 불렀다. 기타를 치시는 수녀님이 중간중간 화음을 넣어주기도 했다. 처음엔 몹시 떨렸지만, 나의 노래에 몰입해 주는 다른 순례자들의 표정을 보니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로 노래를 끝마치자 수녀님을 비롯해 다른 순례자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주었고, 누구는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나는 머쓱 거리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감사 인사를 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 특히나 모르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 먼 외국에서, 한국인 하나 없는 순례길에서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정말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미사 시간 전, 저녁을 후딱 해 먹고 성당에 갔다. 이것 역시 색다른 경험이었다. 온전히 스페인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 나름대로 그 순간에 진심을 녹여 참여했다. 미사가 끝날 때 별 모양의 무지갯빛 종이를 나눠줬고, 핸드폰 케이스 뒤편에 넣었다.
숙소로 돌아와 뒷마당에서 단체로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지만, 나는 피로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요 며칠 잠에 쉽게 들지 못해 상당히 곤혹이었는데 이날 역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