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요 며칠 동안 순례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서 난 나만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오늘은 다음 마을까지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일요일처럼 늦장을 부리며 늦게 일어났다. 달걀과 사과로 아침을 때우고, 11시가 돼서 숙소를 나섰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마치고 마을에 도착하는 순례자들이 여럿 보였다. 나는 11시 51분 버스를 타면 됐고, 약간의 여유가 있어서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bar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잔을 시켰다. 주인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핸드폰을 했는데 정말 신세계였다. 한국처럼 빨랐다. 나는 그동안 가족에게 보내지 못한 사진들을 보냈다.
여유 있게 마치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처럼 여유를 즐기던 와중, 여정 초반에 만났던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아는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사실 우리는 단 한번 만났었고, 긴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는데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그들은 전 마을에서 도착지인 이 마을로 걸어서 왔고 이제 체크인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 나는 부득이하게 다음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좋은 선택이라고 나를 응원해 줬다. 그렇게 우리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만나면 좋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부엔 까미노로 헤어졌다.
버스는 30분 넘게 지연됐다. 종종 버스를 탄 다른 한국인 말들을 들어보면 약간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자마자 마치 밤을 샌 사람처럼 기절하듯 잠에 빠졌고, 오후 2시가 돼서야 목적지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곧바로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마치고 손에 들고 있는 등산 스틱을 보관통에 꽂으려고 했는데 손이 허전했다.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전에 바람막이를 두고 온 기억이 떠오르며 온몸에 열이 확 올랐고, 당혹스러웠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번에는 찾기 불가능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나에게 등산 스틱은 실제로 다리와 같았다. 등산 스틱을 잃어버린 일은 다리 한쪽을 잃은 상실감과 같았다. 나는 일단 짐을 방에 두고 숙소 주인에게 힘겹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주인이 잠시만 방에서 쉬고 있으면 알아봐 주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얼마 후 주인이 나를 불러서 말했다. 버스 회사에 전화해 보니 자주색 등산 스틱이 하나 있어서 레온 버스터미널 분실물 보관소에 보관 중이니 찾으러 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주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아연실색할 정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무척 다행이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마트에 들러 고기와 내일 아침 먹을 빵과 물을 사서 숙소에 두고 숙소 근처 성당에 들렸다. 어제도 그랬는데 이곳도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성당이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마음속으로 오늘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에게도 꼭 좋은 일이 있기를 기도했다. 더불어 지금 내가 순레길을 잘 걷고 있는 것이길 바랐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에 사는 외국인 한 명이 다가와 같이 저녁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봐서 그러기로 했다. 나는 고기를 구웠고, 그는 바게트, 올리브, 아보카도를 준비했다. 나는 고기를 600g밖에 사지 않아서 양이 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부족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실 내가 외국어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아서 깊은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대화를 잘 이어가서 스스로에게 놀랐다. 아까 스틱 사태 때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스페인어만 하는 사람과 그런 대화를 하고, 해결을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처럼 걷지 않는 날, 마을을 산책하는 시간이 참 좋다. 피로함과 고통에 찌들지 않은 채 이런 시간을 갖는 게 내가 바라던 여행인데 이렇게 고생하고, 힘들고, 발 아프고, 돈 걱정을 하고, 벌레 걱정, 날씨 걱정, 분실 걱정, 숙소 걱정 등등, 잡다한 걱정거리를 스스로 짊어지고, 마치 정말 수행만을 하러 온 고행자처럼 나날을 보내서 무척 당혹스럽고 힘들다. 그래도 이 시간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부디 잘 지내고, 걸었으면 좋겠다. 여기서도 이런 고생과 걱정들로 지샐 줄 꿈에도 몰랐다. 뭔가 찌든 느낌이 든다, 혼자서만 이 길을 걸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길이 싫지는 않다. 또 이 길에 대한 나만의 답이 아직 선명하고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려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느낀다.‘
잠에 들기 전, 잠시 숙소 밖을 나가 밤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질 듯 별들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별 몇 개가 잔잔히 떠있었다. 특별히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냥 그동안 순레길을 걷는 동안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순례길 첫날, 생장에서 말고는 없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