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야에서 무척 친절하신 좋은 주인을 만나 감사했다. 풍족한 아침도 도네이션이 아닌 무료로 제공해 주어서 감사했다. 심지어 설거지나 뒷정리도 기꺼이 본인들이 해주었다. 몸 둘 바 모를 친절함에 좋은 마음이 무척 포근해졌다. 아주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레온으로 가는 길에서 역시 일출을 마주했는데 평온하고 좋았다. 한동안은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서 좋았는데, 대도시를 들어가는 길은 차도도 많아서 위험했고, 무척 지루했다.
레온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걸어야만 중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골길, 하염없이 긴 평원을 걸으면서 지루하다고 했는데 시멘트길이야말로 지루한 길이었다.
먼저 대성당을 마주했고, 가우디의 저택으로 불리는 건물도 보았다. 중심 상권도 걸으면서 구경했는데 대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팜플로냐 때 느꼈던 감동보다 훨씬 덜했다. 뭔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팜플로냐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이다. 어쨌든 나는 체크인을 하기 전 주변을 가볍게 둘러본 후, 잃어버린 스틱을 찾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분실물 보관소가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 겨우 찾았다. 건물 뒤편 작은 사무실에 위치해 있었고, 어제 통화를 했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나에게 스틱 두 개를 쥐어줬다. 정말 기적 같은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주 소중하게 받아 들고 반갑게, 또 미안한 마음으로 스틱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은 한인민박에서 묵기로 했다. 1km를 조금 넘게 걸어서 도착했는데 큰 빌딩 건물이었다. 해당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워낙 오랜만에 타보는 거라 조금 과장해서 멀미가 날 뻔했다. 주인은 중년의 여성이었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1인 배드가 있는 2인실이었고, 꽤나 넓고 가정집처럼 포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숙소의 유일한 단점이 있었는데 빨래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잠깐 쉬다가 저녁 전까지 관광을 하러 나갔다.
먼저 인출을 하고, 유명 브랜드 옷 가게에 들러 구경을 하고 후에 바르셀로나 가서 살만한 옷들을 골라 입어봤다. 모처럼 꾸며 입으니 기분이 좋았다. 얼른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트에 들러 빵과 맥주를 사서 대성당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지난날 팜플로냐에서의 여유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딱히 감흥이 없었다. 꽤나 오랜 시간을 앉아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도 별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마셔버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로 옆 광장으로 조금 걸어가 보니 무척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기도 했고, 모여 있었다. 뭐지 싶어서 더 가까이 가보니 축구선수 카를로스가 와있었다. 온라인 축구 게임에서만 봤고, 내가 만든 팀에 속하는 게임 속 인물이 내 눈앞에 뜬금없이 나타나 있었다. 행사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끝날 무렵 온 탓에 사인회는 금방 끝이 났고, 다음 행사가 진행됐다.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숙소에 저녁을 예약해 둬서 되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산책로가 있었는데 그 길을 걸으며 이어폰을 꽂고,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시간이 참 좋았다. 역시 난 장엄하고 큰 목표만을 위해 살아가는 빠듯한 삶보다 이렇게 작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을 느끼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삶이 좋았고, 필요했다.
숙소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조금 늦게 식사를 시작했다. 전에 길에서 만난 적이 있던 한국인 순례자 두 명과 함께였다. 식사 메뉴는 된장국, 김치, 김, 콩자반, 멸치볶음, 제육볶음이었다. 그중 김치와 김이 제일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순례자 두 분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분들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 문과향이 물씬 풍긴다며 나중에 글을 써 봐도 괜찮겠다는 말도 흘리 듯했다. 꽤 긴 시간 대화를 하며 순례길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했다. 전에 생각했던 결론과 같았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으면 되는 거였다. 그것이 순례길이든 인생이든 같았다.
식사를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나 혼자였다. 독방은 처음이었는데 무척 행복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침대에 앉아 발과 종아리를 주무르며 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자기 전 아이유의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창으로 된 천장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끝마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