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
이틀간 과할 정도로 안락하게 쉬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정말 월요일 아침보다 더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다시 길을 걸어내야 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2층 침대에서 내려와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오늘 역시 걷기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도 지난 이틀간 숙소에서만 머물면서 최대한 휴식하고, 마사지도 계속했는데 여전히 발이 이모냥이라 낙심했다. 나갈 채비를 하면서도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꾹 참고 몸을 이끌어 숙소를 나왔다.
이제 거의 한 달이 돼 가다 보니 처음과 다르게 일교차가 컸다. 핸드폰으로 기온을 확인해 보니 아침 온도는 8도였다. 바람막이를 걸쳐 입고 길을 걸었다. 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서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은 26km를 걸어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도저히 그 정도는 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숙소에서 고작 500m쯤 걸었을 뿐이었는데도 하루 일정을 마쳤을 때보다 고통이 심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버스터미널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제 나만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했지만, 의도치 않게 또다시 버스를 타고 점프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낙심했다. 마냥 좋지 않았고, 마음도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 몸을 무시하고 계속 걷기만 한다면 결국 발이 완전히 망가져 버릴게 뻔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목적지인 다음 마을까지 가는 노선이 있는지 확인한 후, 티켓을 구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장 버스를 탔다. 앞으로 궂은 날씨가 자주 있으니 약 100km 정도는 점프를 하겠다고 결심한 지가 고작 어제인데 발 때문에 막상 이런 처지가 되니 속상했다. 버스 창 밖으로 끊임없이 순례자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저 길 위에 서 있을 때에는 지루하고, 힘들고, 지독히 고되다고 자주 생각을 했어도 지나가는 차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순례자를 보며 단 한 번도 부러워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아파서 버스를 타고 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니 그들이 부러웠다. 하루하루 걸을 수 있을 때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씁쓸하면서 묘한 기분이었다. 비록 나만의 방식대로, 나만의 보폭으로 이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했고, 일정을 즉석 해서 조율했지만, 그렇게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족저근막염으로 의심되는 고통 때문이었다. 내 몸에 이러한 문제가 없었다면 아무리 힘들고 지루하다 할지라도 그런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선택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어쩔 수 없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이 길을 걸은 후에도 내 삶을 이어서 살아내야만 했다. 여기서 건강이 더 악화되고, 돌이킬 수 없는 시점까지 간다면, 더 큰일이었다. 나는 이 또한 나의 여정이고, 나만의 순례길을 완성해 나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왠지 씁쓸해진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마을에는 금방 도착했다. 물을 사러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슈퍼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숙소로 곧장 갔다. 혹시나 해서 주인에게 조금 일찍 체크인이 가능하냐고 물어봤지만, 지금 당장은 아직 청소 중이라 어렵고, 대신 야외 마당 테이블에서 기다리면 되는 데로 불러주겠다고 답해주었다. 나는 배낭을 의자에 내려놓고, 신발을 갈아 신고,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무척 추워서 힘겨웠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밖에서 덜덜 떨다가 제시간에 체크인을 했다. 추위를 녹이려 곧장 샤워를 했는데도 너무 추웠다. 앞으로 이런 추위 와도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순간적으로 당장 순례길을 종결짓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 생각이 연이어졌다. 난 그동안 걸으며 충분히 고생했고, 여러 가지 배움이나 깨달음도 얻었으니 여기서 멈춘다고 해도 크게 미련이나 속상함이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해서 고통뿐일 이 길을 걷는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달라질 게 있다면 내 몸이 고장 나는 것뿐일 것 같았다. 이런 길을 계속 이어나가기엔 너무 지친 상태였다. 순간 또다시 다른 생각이 번뜩했다. 이렇게 노력을(내가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하면 포기를 결심해도 마음이 크게 요동치지 않는구나, 후회가 없겠다는 확신이 드는구나. 이 정도의 노력을 해야만 후회가 크게 남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나는 꽤 많은 후회를 남기며 살았었다. 그게 꿈이든,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치열하게 몰입해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어렵게 샤워를 마치고, 또 다른 노동인 손빨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 간단히 산 점심거리를 가지고 거실로 가던 와중 어제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한국인 순례자 두 명이 도착해서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표정도 어두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분이 여권과 중요 물품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만약 나에게 이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는데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아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싶은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난 이분들이 다운되어 있는데 옆에서 혼자 점심을 때우기 그래서 빵을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숙소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예약하고 기다리는 중이라 괜찮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내가 알기로 점심은 스테이크였다. 물론 나도 이 숙소에 머물기 때문에 예약할 수 있었지만, 지출을 생각해서 저녁만 예약한 상태였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분보다 처지(여권을 잃어버린 일)는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순례길에서도 역시 돈으로 순례길의 질이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내가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이 마을은 주변에 가게도 거의 없다. 그래서 물가가 너무 비싸다. 그래서 조금 궁핍하게 점심을 때웠다. 얼마나 처량한가 싶기도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순례길이 끝나면 있을 한 달간의 여행 때 좀 더 여유 있게 생활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지금의 궁핍한 생활에 한탄할 수 없다. 모두 내 선택이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그라나다 숙소와 일정을 정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흘렀고, 낮잠도 자지 않았는데 저녁 시간이 됐다. 점심에 만난 한국 순례자 두 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가방을 잃어버리신 분은 일단 마드리드로 가서 여권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돌아와 순례길을 이어 걷기로 했다. 더불어 동행했던 다른 순례자 한 분이 함께 해주겠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먼 타지에서 그렇게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다.
식사는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지만, 허기가 부족함을 채워 많이 먹다 못해 과식을 했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갔고, 배탈 약을 먹었다. 한번 큰일을 치르고 나니 이번엔 몸살기운이 느껴졌다. 전체적인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정말 가지가지했다. 일반적인 일정에서 벗어나 내가 정한 순례길 여정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시점이었는데 또 다른 고비가 와버렸다. 그리고 끝까지 엉망인 상태가 지속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짜증이 치솟았다. 부디 배드버그 이슈만 없기를 바랐다.
한차례 고비를 넘기고 일몰 때가 돼서 숙소 밖으로 나갔다. 쌀쌀했다. 그래도 노을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금방 추위가 몰려왔고, 몸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은 느낌에 금방 다시 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피로에 쫓기며 일기를 서둘러 쓰고 이른 취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