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D+9

by 지안

무척이나 일어나기 힘들었고, 길을 나서기 싫었다. 좋은 숙소에서 머문 까닭인지, 반복되는 순례길의 고된 일상에서 지독한 힘듦에 완전히 지쳐버린 탓인지 모든 게 귀찮았다. 발의 고통이 덜했더라면 괜찮았을까 싶었다. 모든 신경과 온 마음이 나가기를 거부했지만, 나는 꾸역꾸역 느릿한 행동을 이어가며 출발 준비를 마친 후, 반쯤 처진 상태로 길을 나섰다.

산토 도밍고까지는 약 21km, 4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늦장을 부린 탓에 예정보다 늦은 07시 20분이 돼서야 숙소에서 나오긴 했지만, 늦어도 12시 안에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둠은 모두 가셨고, 은은한 분홍빛과 청명한 청색이 하늘 가득 매웠다. 마을을 밝히는 전구들은 아직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10분쯤 걸으니 마을을 벗어났고, 20도쯤 기울어진 완만한 산길, 산책로가 나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아니었지만, 잘 다져진 길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순례자가 나와 길을 걷고 있었다. 평생 절대 스치지도 않았을 사람들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묘하게 좋았다. 하지만 나와 근접한 곳에서 누군가가 걷고 있는 것은 늘 불편했다. 애매하게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사람을 만나면 더욱 불편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다. 내 발걸음이 빠른 편이긴 했지만,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래 걷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핑크빛이었고, 곡예비행사가 남긴 것 같은 흰 줄 몇 개가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머지않아 언덕길 끝에 도달했고, 구불하고 길게 뻗은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길 위에는 2,30m 간격을 두고 걷는 순례자들이 여럿 있었다. 내리막은 점점 평지로 바뀌었고, 넓은 평야를 따라 시야가 트였다. 몇 걸음 더 내디뎠을 뿐인데 태양이 곧 떠오를 듯이 황금빛으로 하늘을 밝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번갈아 가며 연신 촬영을 하며 길을 걸었다. 등 뒤에서 곧 태양이 선명하게 떠오를 터였다. 나를 앞서 걷는 사람들 또한 길을 걸으면서 힐끔힐끔 등 뒤를 돌아보며 일출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얀 머리의 여성 동양인 순례자였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자들과 달리, 길 한복판에 멈춰 서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내 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나에게는 없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몹시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분명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고, 그러므로 더 고된 여정이었을 텐데, 힘든 와중에도 저런 여유를 마음껏 부릴 수 있다는 사실에 부러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길을 걷는 와중에 멈춰 서서 태양을 본다는 일은 무척 사소한 일 같지만, 나에게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인생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와 가까워졌을 때 나는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그조차 그의 감상을 깰 것만 같아 그냥 지나쳤다.

나와 아주 먼 곳, 지평선 끝자락에 여러 개의 낮은 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보였다. 그중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산 꼭짓점에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모습이었다. 태양의 선명한 빛이 순례길의 모든 것을 덮쳤다. 낮게 깔린 태양 덕에 내 뒤로 걸어오는 순례자의 그림자가 나의 발끝에 닿았다. 나의 그림자 또한 나보다 앞선 순례자 뒤꿈치를 건드렸다. 출발 때 느꼈던 귀찮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했을 뿐인데, 온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고,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 에너지가 활성되었다. 일출과 일몰은 정말이지 마법 같은 힘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일출은 일상에 활기를, 일몰은 일생에 희망을 준다.

순례길 4일 차 때 한국인 순례자에게 받은 작은 태극기를 이날 처음으로 배낭 좌측 주머니에 꽂았다. 태극기는 나의 걸음 속도만큼의 공기 저항을 받으며 적당히 펄럭거렸고, 태양의 세례를 한껏 받았다. 살다 보면 그저 ‘나’라는 사람에도 뿌듯함을 느끼지만, 한 국가의,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라는 점도 괜히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8시 22분. 출발하고 한 시간쯤 걸었을 때 마을 도입부에 있는 오래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그곳에 다다르니 익숙한 얼굴의 순례자가 다른 외국 순례자와 함께 앉아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싶은 마음이 들 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 전 만난 중년 남성 한국인 순례자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를 냈고, 그도 반가운 티를 내며 인사를 했다. 옆에 있는 외국인 순례자와도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무슨 문제라도..?”

“아, 옆에 있는 이 친구는 나헤라에서 만난 외국인 순례자인데, 그가 순례길에서 만난 여러 다른 순례자들과 같이 그로뇽 마을에 있는 성당 알베르게에 가기로 해서! “

그로뇽? 어디서 몇 번 들어본 왠지 익숙한 이름인 게 분명한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버스 타고 가시려고요?”

“어! 옆 친구가 자기가 가는 법을 아니 자기만 믿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그는 선착순으로 한정된 사람들만 받아준다. 성당에서 하는 특별한 예배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서로 음식을 만들고 소개하는 파티의 시간도 있다. 오늘만 특별히 열리는 파티라고 한다. 등등 그로뇽 알베르게가 마치 게임 속 히든 맵이라도 되는냥 흥분된 어조로 소개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스쳐 지나가는 순례자가 계속 내 시야에 아른거렸다. 시간을 보니 정류장에 머무른 지 5분 정도가 지났다. 이상하게도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홈쇼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주문 전화를 넣듯, 그에게 함께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외국인 순례자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좋다는 답을 내놓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순간적으로 나를 현혹해서 나를 홀린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는 약간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걱정이 더 컸다. 계획적인 성향의 내가 선택에 확신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나를 전혀 고려하지 않듯, 곧 정류장 앞에 버스가 섰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불만 보고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또는 ‘엉겁결에’라는 말이 어울리게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정확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나는 그에게 명확히 설명을 부탁했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혼란 속에 빠지게 했다. 나는 이 버스를 타기만 하면 그로뇽으로 가는 것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로뇽에 가기 위해서는 내가 오늘 출발했던 나헤라로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내가 탄 버스는 나헤라로 가기 위한 버스였다. ‘그로뇽’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 출발한 마을인 나헤라에 다시 되돌아간 후,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해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하고, 다시 몇 km를 더 가야 도착하는 문제의 마을이었다. 더구나 잊고 있던 그로뇽이란 마을도 생각났다. 마을 규모가 무척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로 한 마을이었다.


나는 버스 방향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버스를 탄 꼴이었다.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나는 정신을 되찾으려 애썼다. 창 밖을 보니 내가 걸어왔던 길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도 보였다. 정신이 다시 아득히 멀어지는 것 같았다. 순간, 내가 쥐고 있어야 할 바람막이 점퍼가 내 손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버스를 타기 위해 가방에서 잔돈을 꺼내며 정류장 의자에 잠시 내려놓고는 다시 줍지 않은 것이었다. 아찔했다. ‘도대체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게 된 것일까.’ 나는 순식간에 자기혐오에 빠졌다. 정말이지 소름 돋을 정도로 멍청한 일을 두 번이나 연이어 한 샘이었다. 그동안의 힘듦으로 뇌세포가 모두 괴멸당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나의 정신은 나를 완전히 이탈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내린 결정은 좋지 못했다. 번갯불에 구운 콩은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버스를 탄 곳에서 나헤라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했다. 나는 완전히 멍청해진 상태로 다시 나헤라에 다시 발도장을 찍었다. 그로뇽에 가고 싶은 생각은 싹 사라졌다. 일단 잊어버린 점퍼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처한 사정을 역류하는 물줄기처럼 토해내며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외국인 순례자는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버스 노선도를 보더니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영어 실력 상 평범한 감사의 말밖에 전할 수 없었다. 대신 표정과 몸짓으로 언어를 대신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들과 이별을 한 후, 정류장에 나 혼자 남았다. 날치기하듯 내린 결정 덕에 오늘 하루가 완전히 꼬였다. 혼돈과 분노 자체인 나는 일단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나는 깊은 심호흡을 몇 차례 반복한 후, 버스정류장에 있는 노선표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외국인 순례자가 알려준 버스가 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10분, 20분이 흐르는 사이 몇 대의 버스가 왔고, 기사분들에게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가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매번 고개를 저으며 다른 버스 번호를 알려줄 뿐이었다. 답답함과 절망감이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아무래도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피 같은 돈을 투자해야만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 바로 뒤편에 있는, 애써 외면한 택시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구글 번역기로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번역해서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지, 안 된다는 건가, 싫다는 건가, 뭔 말인지 몰겠다는 건가.’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른 택시기사를 불러 번역기로 해석된 글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기사는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이해했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나에게 했다.

첫 번째 사람은 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까 의아했지만, 다행이었다. 나는 택시기사를 따라갔다. 그는 자신의 택시를 소개하고는 평온한 표정으로 15유로라고 말했다. 점퍼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에는 납득할 만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화가 나는 지출이었다. ‘15유로면 하루 생활비를 충족하고도 남는데..’ 나는 택시기사에게 o.k. 신호를 보냈다.


기사는 친절히 내 배낭을 받아 트렁크에 실어주고, 조수석 차문을 열어 나를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기사는 라디오를 작게 틀고, 운전을 하며 차 밖 풍경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내가 알아듣기 힘든 에스파냐 말을 쏟아냈다. 짐작컨대 외지인에게 자기 마을을 소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말의 어미가 끊길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음’, ‘아’, 와 같은 음성을 흘려냈다. 택시를 타니 버스를 탔을 때보다 더 빨리 그곳에 도착했다. 혹여 없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점퍼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정류장 벤치에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이미 떠나보낸 옛 연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 같기도 했다. 점퍼는 그늘진 곳에 있었던 탓에 몹시 차가웠다. 무사히 있어줘서 고마웠고, 누구도 가져가지 않아 감사했다.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택시 기사는 점퍼를 찾은 내 모습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내가 다시 택시로 다가가자 어깨를 토닥였다. 구글 번역기로만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내 마음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점퍼를 움켜쥐고 바라보았다. 짠한 감정이 올라왔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창 밖에서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나는 지금 차 안에서 뭘 하는 건지 싶었다.


다시 나헤라에 돌아온 나는 다음 목적지인 산토 도밍고에 가야 했다. 아직 10시 10분이긴 했지만, 걸어서 가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산토 도밍고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물었고, 직행 버스를 안내해 줬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감사했다고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내가 무사히 순례길을 걷기를 기원해 줬다.

버스는 곧 도착했다. 나 말고 다른 순례자 몇 명도 그 버스에 올랐고, 버스 안에는 또 다른 순례자 몇 명이 타고 있었다. 한국 버스와는 다른 큼지막한 창문 밖으로 순례길의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하마터면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평생을 걷기만 하던 원시인이 차를 탄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바로 직전에 택시를 탔지만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오직 점퍼가 무사히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순례길에서는 차를 절대 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늘만 벌써 세 번이나 탔다. 묘하고 이상한 기분,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몇 개의 소마을을 지나 30여분 만에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했다. 시간은 11시 10분이었다. 정신적 고통은 있었지만, 몸의 고통 없이 마을에 발을 디디니 그곳에 존재하는 평온함이 온전히 느껴졌다. 그동안 누적된 발의 통증은 여전히 나를 자극했지만, 그래도 한결 가볍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마을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오늘 가기로 한 알베르게를 향해 걸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마을은 이제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았다.

알베르게를 도착한 후 언제나와 같이 개인 정비를 했다. 씻고, 빨래를 하러 숙소 뒷마당으로 나갔다. 몇 명의 순례자가 이미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 옆에서 열심히 빨래를 해냈다. 손가락 마디와 손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걷기로 인해 발에 피로가 쌓인 듯, 빨래로 인해 손에도 피로가 쌓인 모양이었다. 과거에는 이게 지극히 평범한 삶이었을 텐데. 걷기와 빨래를 며칠이나 했다고 이토록 몸이 쑤셔 온다니. 나약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싶기도 했다.

빨래를 마치고 볕이 잘 드는 뒷마당을 구경했다. 한쪽 구석에 닭장이 있었고, 그 안에는 닭 몇 마리가 태양을 피해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흔하디 흔한 닭은 이 마을에서 유독 특별했다. 이 마을엔 닭에 관한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여인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여인은 남성에게 도둑질 누명을 씌웠다. 남성은 재판을 받았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했고, 돌아오는 길에 산티아고의 자비로 아들은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기쁨에 찬 부모는 이 사실을 재판관에게 알리려 달려간다. 재판관들은 때마침 닭고기 요리로 식사 중이었는데, 부모의 말을 들은 재판관들은 부모를 비웃으며 ‘당신 아들이 살아있다면 내가 먹는 이 닭도 살아있겠구나.’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릇에 누워있던 닭이 살아나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 덕에 순례 도중 닭소리를 듣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한다. 나는 닭에게 다가갔다. 시골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들에게 혹시 울어줄 수는 없니?’하고 속으로 물었다. 닭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다음에 다시 왔을 때는 좀 울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자리를 떴다.

한시가 되어갈 무렵 공용주방으로 향했다. 7km 정도밖에 걷지 않았지만 발은 여전히 아팠고, 점심 장을 보러 나가는 게 귀찮았던 나는 주방을 둘러봤다. 혹시 다른 순례자들이 두고 간 식재료가 있으면 그걸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운 좋게 파스타 면과 소스가 있었다. 나는 막힘없이 조리를 마치고, 파스타로 끼니를 때웠다.


15시 50분. 점심을 해결하고 마사지를 한 후, 낮잠을 푹 잤다. 밖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크로스백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충분히 쉬었음에도 발은 여전히 아팠다. 나는 숙소 뒷마당에 가서 닭들을 한번 보고(이번에도 울지 않았다,) 마을 중심부로 향했다. 숙소에서 마을 중심부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몇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순례길에는 조금 어색한 단정한 복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골목길을 벗어나 광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접어드니 20여 명 정도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을 하며 광장에 도달했다. 그곳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성당 앞에 모여 있었다. 현장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몰랐다. 광장을 사방으로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 차 여러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내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차들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7대의 차가 전시처럼 대각선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대부분 클래식 차였다. 그중 가장 돋보였던 차는 가장 앞에 있는 차였다. 2인승이지만 전장은 꽤 길었고, 차체는 스포츠카처럼 무척 낮았다. 외관은 검은색으로 도장되어 있지만 내부는 자주색 가죽으로 엣지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마차의 형상을 본뜬 듯했다. 특히 부드러운 곡선을 띈 차 옆 라인은 마치 마차의 고삐 줄을 연상케 했다. 또 스포티한 기운을 풍기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차처럼 특별해 보였다. 다른 차들도 마치 커스텀 차량처럼 개성 있고, 특별했다. 차량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던 차에, 광장에 모여 있던 족히 100여 명은 되어 보이던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차 구경을 멈추고 성당 쪽으로 갔다. 아까는 보지 못했는데 몇 명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다수의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모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5분쯤 지나니 성당 문이 다시 열렸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성당 오르골 연주 소리가 함께 새어 나왔다. 절반쯤 되는 사람이 나올 무렵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섰고, 가운데로 난 길에 관을 짊어진 몇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성당에서 진행하는 어떠한 행사나 결혼식이겠거니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호기심은 끝이 났고,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관은 천천히 차에 실렸다. 그리고 사람들 곁을 서서히 떠나갔다. 몇몇 사람들은 각자의 차를 타고 뒤를 따라갔다. 성당 앞에 남은 사람들은 낮은 어조로 누군가를 위로하기도 했고, 의외로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순례길에서 장례식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특별한 경험이었다.


익숙한 듯 특별한 마을을 쓱 둘러보고, 마트에 들러 2유로짜리 닭다리 두 개와 물, 음료수, 그리고 내일 먹을 식량을 샀다. 닭이 특별한 마을이어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바로 주방으로 갔다. 나는 닭에 몇 가지 향신료와 소금을 뿌려 짧게 재워둔 후,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둘렀다. 그리고 열심히 닭을 구웠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이전에 몇 번 마주친 일본인 순례자 커플이었다. 일정이 연이어 겹치면서 또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앞선 만남 때는 가벼운 목례 정도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일정이 같다고 해서 무조건 만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세 번째 만남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기억하는지 물었고, 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억한다고 답했다. 그들은 3번이나 같은 마을에서, 그것도 같은 숙소에서 만난 것이 몹시 신기하고 반갑다고 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또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들에게 닭고기를 조금 나눠줄까 물었지만, 그들은 가벼운 식단을 하고 있어서 괜찮다고 답했다. 우리는 좋은 저녁시간 되라는 인사와 또 만나면 좋겠다는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다.

나는 조리를 이어갔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프라이팬인지라 많은 기름에도 계속 눌어붙었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인덕션 덕에 온도 조절이 쉽지 않았다. 힘겨운 사투 끝에 30분 만에 의도치 않은 치킨이 완성되었다. 살점이 갈기갈기 찢기긴 했지만, 옛날통닭과 흡사한 비주얼과 냄새를 풍겼다. 나는 닭을 흰 접시에 옮겨 담고, 뒷정리를 마친 후,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맛은 눈치 없게 충격적일 만큼 맛있었다. 그냥 올리브오일에 소금과 향신료 2,3개만 뿌려서 튀겼을 뿐이었는데, 내가 먹은 닭 요리 중 손에 꼽을 만큼 완벽한 치킨 맛이었다. 자화자찬이 부끄럽지 않은 그런 맛이었다. 일본인 순례자에게 주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고, 이 맛을 나만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탄식했다. 또 사진으로 밖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나는 맛을 충분히 음미하며 적당한 속도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영양을 보충하고, 여유를 되찾으니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런 여유가 있어야 순례길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지 않고 매일을 사는 것, 그러한 삶은 나와는 맞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런 삶이 맞는 사람도 있는지 의문이었다. 모두들 힘들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니 묵묵히 견디고 해내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남들도 묵묵히 걷고, 해내는 일이니 나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나도 그들과 같이 해내야만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순례길만이 아닌 모든 일에 대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에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내 생각이 정말 맞을 거라 판단 들지 않았다. 일상에 찌든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이곳에서 조차 일상의 반복이라니. 예상보다 강력한 고됨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 1차원적인 문제들에 시달리며 순례길의 특별한 하루들은 속수무책 희생되어 갔다. 순례길을 떠난 이유가 무색해졌다는 생각에 약간 침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만약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조금은 여유롭게 이 길을 즐길 수 있었을까. 앞으로 계속될 순례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특별하고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가장 평범한 하루 인지도 몰라. 식사를 마치고 발 마사지를 하며 휴식을 취한 후,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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