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떼야

D+5

by 지안

5일 차에 접어들었다. 출발 준비에 익숙해진 덕에 시간 단축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기상했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2층 침대에서 삐걱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어제보다 나았지만, 여전히 발에 통증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순례자는 이미 출발한 듯했다. 나도 얼른 세안을 하고, 짐을 챙기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 산 바나나와 달걀로 아침을 때우고, 숙소를 나섰다.


07시. 짙은 청색 하늘에 거뭇한 구름이 듬성듬성 떠있었고, 태양을 한 조각 때어 놓은 것 같은 밝은 주황색 조명들이 마을 곳곳을 밝히고 있었다. 하늘과 마을의 색은 완벽한 조합을 이루었다. 적막한 마을을 10여분 동안 가로질러 어제와 비슷한 풍경의 시골길에 들어섰다. 짙었던 하늘색은 금세 연한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변했고, 얇은 구름과 두꺼운 구름이 어울려 하늘 곳곳을 매웠다. 잠시 후 하늘을 다시 보니 분홍빛은 사라졌고, 마을에 조각나 있던 주황빛 조명이 다시 모여 황금빛 태양으로 여명을 만들어냈다. 잠시 뒤, 먼 언덕 뒤로 태양이 떠올랐다. 그간 순례길에서 보았던 일출 중 가장 선명한 일출이었다. 태양의 온기가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다. 새벽과 오전 사이에는 선선한 날씨였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었다. 몇 걸음을 더 걸으니 태양은 다시 언덕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짙은 먹구름에 가려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작은 마을을 지나 쭉, 계속해서 이어진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니, 노란 화살표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santiago 676km’ 프랑스길 공식 거리는 776km. 어느새 100km나 걸었다. 이런 훌륭한 경험이 아직도 그렇게나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몹시 흥분됐다.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100km나 걸었는데 600km가 넘게 남았다. 실성한 것처럼 쉴 새 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뇌가 오작동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계속된 웃음이 일순간 사라졌다. 깊은 한숨이 순간의 정적을 채웠다. 나는 계속 걸어가며 생각했다. ‘맙소사. 앞으로 어떡하지.’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앞서가는 순례자가 보였다. 저 사람도 나처럼 힘들까. 저 사람은 어떤 이유로 왔을까. 종교의 목적으로 왔다면 이런 고통쯤은 기꺼이 이겨낼 수 있을까. 나는 종교의 목적으로 오지 않았는데 어떡하지. 나는 현실도피처럼, 도망자처럼 이곳에 온 건데.

09시 14분. 좀 전의 생각은 다행히 금방 멈췄다. 그나마 온전한 정신으로 순례길을 걸으며 풍경을 즐기고, 사진을 찍고, 감상을 하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딱 두 시간, 10km 정도였다. 그 이후부터는 한걸음 한걸음이 고문이었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 같았다. 전두엽은 작동하지 않았다. 파충류의 뇌가 나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말로만 들었던 광활한 포도밭을 지났지만 사진 한번 찍은 것이 전부였다. 아름다운 풍경들이 내 눈앞에 실시간으로 파라노마로 펼쳐졌지만, 의무적으로 카메라에 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10시 34분. 하늘에 가득했던 먹구름은 거의 사라졌고, 맑고 청명한 하늘색 하늘이 흰 구름 사이로 보였다. 침묵의 순례길은 계속되었고, 11시 45분 에스떼야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성당이 나를 반겼다. 일반적인 성당의 모습과는 달랐다. 보통은 세로로 높이 지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내가 본 성당은 높이 3,4 층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도원처럼 가로로 꽤 길었다. 어쩌면 정말 성당이 아니라 수도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마을 내부로 더 들어가니 시냇물처럼 흐르는 강줄기가 보였다. 나는 감상할 마음이 없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오직 숙소로 향할 생각뿐이었다. 나는 곧장 알아본 숙소로 향했고, 무사히 체크인을 마쳤다. (무사히라는 말은 만실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원래 내 성격이라면 하루를 마무리 지를 때 샤워를 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순례길에서는 빨래를 한 후, 당일에 무조건 말려야 했기 때문에, 평소 내 루틴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빨래를 마치고, 돈과 귀중품을 작은 백팩에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우선 점심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일요일인 탓에 열린 식당은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슈퍼나 마켓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열린 곳이 거의 없었다. 나는 구멍가게처럼 작은 슈퍼에 들러 라면과 과자를 샀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처량한 모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발과 다리를 마사지하며 휴식을 취했다. 배가 부르고, 몸이 편해지니 멈춰있던 생각 공장이 다시 돌아갔다.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생각보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 매 순간 끔찍한 발의 고통을 참으며 재갈을 물고 유배지를 향하는 사람처럼 걷기만 하는 이 짓을 왜 하고 있을까. 내가 그토록 바라고 희망했던 일이 날 이토록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왜 이 고행길을 걷는다고 한 것일까. 이토록 힘든 길에서 뭘 얻겠다고 택한 것일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고됐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것마저 해내지 못한다면, 정말 우주의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것이라 확신했다. 이때는 잘 알지 못했다. 긍정성이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느새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다. 나는 숙소를 나와 조금 홀가분해진 발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가게는 여전히 문이 닫혀있었다. 마을 중심부를 향해 걷다 보니 아까 무심히 지나쳤던 냇가 같은 강가가 나왔다.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한 탓에 거의 흐르지 않는 듯 보이는 물결의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물줄기 위로 나있는 다리를 건너니 중세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성이 우뚝 서있었다. 마을을 들어와 숙소로 향할 때 분명 이 길을 지난 것 같았는데,

그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싶었다. 관광객인지, 순례자인지 모를 몇 명의 사람들이 성 주위를 서성였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일요일이라 관람이 불가했다.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을을 좀 더 둘러봤지만, 문을 연 가게는 없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market’을 검색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마켓 몇 개가 있었다. 나는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곳을 도착지로 설정하고,

이어폰을 꽂고, 지도를 따라 걸었다. 조금 걸으니 내가 머문 마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마을이 이어졌다. 작은 마을인 줄 알았는데 마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꽤 큰 마을이었다. 곳곳에 알만한 브랜드 매장이 있었고, 상가들과 도로는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시내를 구경하며 20분쯤 걸으니 규모가 있는 마트가 나왔다. 정육과 수산을 비롯해 웬만한 건 다 있는 마트였다. 나는 저녁을 어떻게 때울지 둘러봤다. 마음 같아서는 고기를 사서 구워 먹고 싶었지만, 살 용기도 없었고, 숙소에서 구워 먹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나는 계란 6개와 베이컨, 바게트, 물, 내일 먹을 간식 챙겼다. 계산을 마치고 걸었던 길을 되돌아 숙소에 도착했다.

주방에는 외국인 순례자 두 명과 한국인으로 보이는 순례자 두 명이 각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인덕션 하나를 차지하고 베이컨과 계란을 구웠다. 바로 옆 인덕션에서는 냄비에 쌀밥이 지어지고 있었다. ‘와, 여기서 밥을 지어먹다니..’ 나는 주방에 구비되어 있는 토마토 파스타 소스를 뿌리고, 소금과 파슬리를 내 프라이팬에 툭툭 뿌렸다. 그때 밥 상태를 확인하러 온 여자 순례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 역시 한국인이었다.

“아 네, 한국인이에요. 저도 밥을 보고 한국분이겠지 싶었는데, 맞았네요.”

그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혹시 혼자이시면 저희랑 같이 식사하지 않을래요?”

내적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감정을 자제하며 답했다.

“아, 괜찮으시다면 저야 좋죠!”

앉아있던 남자 한국인 순례자가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신라면 괜찮죠?”

안 괜찮을 수 없었다. “와, 라면이라니.. 무조건 좋아요.”

나는 거의 다 완성된 토마토 달걀 베이컨 볶음을 큰 접시에 옮겨 담아 상으로 내왔다. 잠시 뒤 라면과 흰쌀밥이 대령되었다. 우리는 서로 맛있게 먹으라며 인사를 나눴고, 앞 접시에 양 것 덜어 먹기 시작했다. 나는 무척 허기가 진 상태였지만, 아주 천천히 예의를 차리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들은 여행을 좋아하는 30대 부부였다. 그들은 해외 이곳, 저곳 많은 곳을 다녔지만, 사정상 긴 시간 동안 시간을 낼 수 없었는데, 어렵사리 기회가 되어 꿈처럼 간직하던 순례길을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

“저는...”

짧은 순간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는 길을 잃은 것 같아서 순례길에 오게 됐어요. 이곳에 오면 뭔가 갈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근데 생각보다 너무.. 너무 고돼서 당혹스러운 상황이네요.. “

나는 탄식하듯 그동안 묵혀왔던 마음을 나도 모르게 털어놓았다.

그들은 십분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정적 후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바라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삶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잖아요. 어쩌면 그래서 이 길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

“아, 맞네요. 진짜 그러네요.” 나는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멍했다. ‘정말이지 내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의지라고는 하지만, 현실엔 온통 제약과 벽으로 막혀있는 것 같았다. 성인이 되면 자유롭기만 할 줄 알았는데, 자유를 능가하는 책임과 현실이 족쇄를 채우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나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만의 보폭으로 걷는다는 것은 나와 같은 보폭을 가진 이가 나타나지 않는 한, 혼자 걸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실에서도, 순례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그들이 가져온 와인을 마시며 평소라면 잠들어야 했을 시간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숭늉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살면서 먹은 숭늉 중에 단연코 으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나누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덧 시간은 22시를 가리켰다. 우리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정리를 한 후, 취침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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