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약 25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이른 기상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알림이 울릴 때쯤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래도 피로함이 없지는 않아 잠시 반 수면 상태에 전전하다가, 손목시계의 알람으로 06시에 기상했다. 어둠 속에서 침낭을 말끔히 게는 법도 완전히 터득했다. 세안을 하고, 조식을 먹었다. 발의 통증은 어제보다 아주 약간 좋아진 상태였다. 물집이 그리 크지 않고, 통증도 거의 없었다. 걸을 때 약간 거슬릴 정도였다. 발과 종아리에 테이핑을 하고, 물집 부위에 반창고를 붙였다. 살살 걸어보니 견딜 만했다. 마지막으로 배낭 점검을 하고,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배낭을 지고, 등산 스틱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07:25. 어둠은 모두 가셨고, 건물들 사이로 황금빛 여명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늘은 소라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적막한 도심을 은은히 감쌌다. 로터리 중앙에서 쉼 없이 치솟던 분수대는 잠잠했고, 공허한 어둠을 채우던 주황빛 가로수는 아직 도심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우선 지도를 따라 목적지 방향으로 걸어가며 노란 화살표를 찾았다. 도심인지라 화살표가 뜨문뜨문 있었다. 다른 순례자 몇 명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방황하지 않고 금방 바른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스틱을 처음 사용하는지라 연습을 하며 걷고 싶었지만, 땅을 찌르는 스틱 소리는 마치 성당에서 공명하는 소음처럼 적막함으로 가득한 도시를 뒤흔들 만큼 크게 울렸다. 도시를 벗어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허공을 휘저으며 걸어야 했다.
40여분을 걸은 끝에 도심 외각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꽤 크게 잘 조성된 공원이었다. 공원길을 따라 길게 심어져 있는 나무들 사이로 완전한 태양의 모습이 보였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엔 날씨만 좋다면 매일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공원을 벗어나니 곧바로 시골길이 나왔다. 주위는 온통 흙밭이었고, 걸을 수 있는 비포장도로 양 옆으로 갈대가 경계를 긋고 서있었다. 주위는 온통 흙으로 가득한 밭, 평야, 대지뿐이었다. 호밀 밭 파수꾼에 나올법한 비슷한 풍경 길이 계속됐다.
조금씩 걷다 보니 낮은 언덕에 가려져 있어서 안 보이던 푸른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용서의 언덕인 것 같았다. 약 800m라고 하던데, 두려움이 밀려왔다. 도심에서 벗어났을 때부터 스틱을 사용해서 걷고 있는데 미숙해서 그런지, 평지라서 그런지, 어색하기만 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골길에 도입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날 무렵부터 완만한 언덕길이 시작되었다. 푸릇함으로 뒤덮인 용서의 언덕이 코앞까지 왔고, 능선 따라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선명히 보였다. 언덕길은 점점 더 가팔라졌다.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거칠어지는 호흡을 달래기 위해 두 걸음에 한숨 들이쉬고, 세 걸음에 한숨 내쉬기를 반복했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스틱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가 걷는 것처럼, 왼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오른쪽 스틱으로 땅을 짚었고, 오른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왼쪽 스틱으로 땅을 짚었다. 템포를 잃고, 처지지 않기 위해 정형화된 기계처럼 온몸을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나는 오직 걷기에만 열중했고, 30분의 산행 끝에 최고점에 도달했다.
가장 먼저 언덕 끄트머리에 있는 철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보였다. 철판을 잘라 얇게 만든 조형물은 말을 탄 순례자와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모습 구현하고 있었다. 순례자 몇 명이 돌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몇 명은 조형물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사진을 찍던 한 순례자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내 핸드폰을 신속하게 건네받고, 나를 조형물에 세워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그에게 핸드폰을 다시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네고는 쿨하게 갈 길을 갔다. 나는 언덕 끄트머리에 서서 돌아온 길을 내려다봤다. 그간 났던 땀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나를 휘감았다. 왼쪽으로 용서의 언덕 능선이 풍력발전소와 함께 길게 뻗어 있었고, 정면에는 광활하고 공허한 흙밭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마음이 뻥 뚫리며 해방감을 느꼈지만, 발의 통증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덕에서 조금 벗어나니 곧바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지난날 겪었던 내리막의 끔찍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에겐 등산 스틱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내리막은 다행히 전처럼 험한 길은 아니었다. 나는 평지 때보다 등산 스틱 길이를 늘여 잡았다. 발 앞꿈치에 체중이 실리기 전에 발 반대편 등산 스틱을 먼저 땅에다 꽃은 후, 네 발로 기어가듯 체중을 실으며 걸었다. 처음엔 몹시 어색했지만, 한 걸음마다 실력이 향상되었고, 스틱의 역할과 중요성이 실시간으로 증명됐다. 첫날부터 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내리막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발의 피로도는 평소의 제곱으로 쌓였다. 신발과 발의 마찰로 인해 열감이 상당했고, 그 덕택에 짜증이 치솟는 통증도 상당했다. 용서의 언덕에서 느꼈던 감동과 감상은 모두 사라졌다.
작은 마을 몇 개를 거쳐 목적지인 뿌엔떼 라 레이나에 도착할 때까지 서부영화에서 나올법한 흙밭 풍경이 계속되었다. 용서의 언덕에서 내려온 직후부터 핸드폰 카메라에 풍경을 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비슷한 풍경을 굳이 담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고, 발이 아프고 힘들어서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아주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었다. 고됨 끝에 뿌엔떼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사실, 이날의 기억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마을에 도착해서 어떤 숙소에 머물렀는지, 점심과 저녁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일기에도 쓰여있지 않다. 그곳에서의 유일한 기억은 해가 저물어갈 무렵, 숙소 근처에 있는 성당에 들려 멍 때리고 있었던 기억뿐이다. 이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날의 일기를 그대로 옮겨본다.
‘이날은 용서의 언덕을 넘었다. 정말 힘들었다. 피로가 발에 너무 쌓여 죽을 것 같이 아팠다. 도착하고 쉬고 있는데도 너무 아프다. 아프니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다. 빨리 끝내고 관광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사서 고생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역시 사람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발에 물집도 잡히고, 건조함에 손, 발톱이 다 갈라지고, 곳곳이 너무 아프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골병만 얻는 건 아닌지 겁이 난다. 방금 바로 옆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왔다. 부디 이런 마음 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이 길을 걷게 해달라고. 너무나 아프다. 편한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든다. 사실 몸이 고되니까 오는 길 사진 찍는 횟수도 줄었다. 일기 쓰는 것도 귀찮기만 하다. 뭘 쓰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일기를 쓰고 있는 건지, 보고서를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무엇도 아닌, 그냥 허튼짓인가 싶기도 하다.‘
그간 무슨 정신으로 걸은 건지 싶었다. 몸이 힘들어지니 마음이 각박해졌다. 평소라면 아름답게 바라봤을 풍경들에 무감각해졌고, 그냥 걷기 바빴다. 배드버그 걱정, 분실 걱정, 숙소 걱정, 예산 걱정, 날씨 걱정에 스트레스받기 시작했다. 힘들게 걸어왔는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손빨래를 해야 하는 것도 성가셨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났고, 사소한 일에도 민감해졌다. 한국에서 짊어진 잡념의 무게는 거의 떨궈냈지만, 순례길에서 감당해야 하는 배낭의 무게와 고됨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추상적인 고민들로 가득했던 빈자리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고통들로 매워졌다. 단 4일 만에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지독한 일상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순례길에 대한 회의감은 4일 차인 이날부터 조금씩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