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수차례 깼다. 아주 고통스럽고, 불쾌하게. 방에는 꽤 큰 창문이 있다. 창문 기준으로 양 옆에 2층 침대가 각각 놓여있었다. 창문을 닫아도 야밤의 찬 기운이 솔솔 스며들었다. 1층을 차지했던 나는 그것만으로도 추위를 느꼈다. 그런데, 다른 순례자가 계속해서 창문을 열어젖혔다. 추위에 깬 나는 그들 몰래 창문을 닫았다. 몇 차례 눈치 싸움이 계속되었고, 창문을 연 순례자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좁은 공간에서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산소가 부족해 질식할 수도 있다며 창문을 열어놓고 자야 한다고 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액션을 선보이며.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영어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아주 조금만 열어두는 것에는 설득에 성공했다. 나는 체념한 채, 경량패딩을 꺼내 입고, 얼굴을 창문 반대방향으로 두고, 겨우 다시 잠에 들었다.
3일 차가 되니 기상 시간 무렵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침낭을 정리하고 나와 세안을 했다. 배낭을 챙겨 1층 로비로 내려오니 조식을 먹는 순례자들이 몇 있었다. 배낭을 한쪽 벽에 세워두고 자리를 잡았다. 빵과 시리얼, 주스로 배를 가득 채웠다. 맛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발에 테이핑을 하고, 파스를 붙이고, 무릎보호대를 찼다. 빠진 것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밝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웬만한 건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어둠이 가셨다. 생각보다 찬 공기가 어중간했던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전체적인 컨디션은 괜찮았지만, 복숭아뼈 쪽과 발 중앙 아치 부분에 여전히 통증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한 시간가량은 꼭 마사지를 해줘야 그나마 걸을 수 있었다. 걱정했던 발목은 왜인지 멀쩡해졌다. 초반 2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는 통증이었지만, 그 후부터는 고통과의 지독한 싸움이었다. 시야는 절반으로 좁아지고, 길을 감상할 여유도 사라졌다. 발에서 전달되는 통증이 나의 모든 감각을 지배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목적지에 도달한다.’라는 목표만 가진 채, 기계처럼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고된 순례길에 당혹감은 점점 커졌고, 앞으로의 날들이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발의 통증은 적어도 순례길을 계속 걷는 동안은 사라지지 않을 고통이었다. 이 정도의 통증이기만 해도 버거울 정도인데, 걷는 날이 늘어날수록 고통의 강도는 강해질 것이 뻔했다. 제발 무사히 걸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벽에 기대 쉬고 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등산화 끈을 질끈 묶고, 순례길을 이어 걸었다. 숙소 밖을 나와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니, 어제 건넜던 다리에 다시 도착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짙은 검은색으로 자신과 하늘의 경계를 명확히 그었고, 그 위로 흰색에서 점점 붉은색으로, 또다시 분홍에서 하늘, 보라, 짙은 남색으로 이어진 하늘이 보였다. 티끌 하나 없는 하늘에 에어쇼 비행기가 남긴 것 같은 띠 여러 개가 태양빛 덕에 분홍색으로 그어져 있었다. 내가 본 하늘 중, 손에 꼽을 몽환적인 하늘이었다.
다리를 건너 노란 화살표를 따라 숲길로 들어갔다. 말 몇 마리가 길 바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순례길 곳곳에서 이런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관리할까 궁금했다. 또, 그들은 자유롭고, 행복할까 궁금했다. 나는 말들에게 ‘잘 있어라.’ 속으로 인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코발트블루색이던 하늘은 점점 연한 하늘색으로 바뀌었고, 낮게 뜬 태양 덕에 분홍빛이던 구름은 제 색을 찾았다. 30분 정도 걸으니 이번에는 오리, 거위, 닭, 꿩 등 여러 조류들이 철장 안에서 유유자적 걷고 있었다. 철창 앞으로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거위 몇 마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사진 찍는 걸 알아서인지, 먹이를 요구하는 행동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사진만 찍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발을 굴렸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구불구불한 숲길, 잘 다져진 아스팔트길, 또다시 촘촘한 나무로 이루어진 터널 길을 따라 두 시간을 걸으니 bar가 보였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순례자들을 그대로 지나치고, 계속 걸어 나갔다. 이제 약 10km, 두 시간만 더 걸으면 팜플로냐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시가 넘으니 태양이 뜨겁게 느껴졌고, 지열이 약간 올라왔다. 점점 배낭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다. 발의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목적지를 정복하기 위해 행군하는, 상명하복 하는 군인처럼 고통을 애써 외면하며 페이스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뜨문뜨문 스쳐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인사 ‘부엔 까미노’는 더 이상 어색한 인사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순례자들을 추월할 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서서히 깨달았고, 그 말에 힘을 얻었고, 그 말로 힘을 주었다. 나는 혼자 걸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 길을 걷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이 이 길을 잘 걷기를 바랐다. ‘부엔 까미노’는 이런 마음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말이었다.
10시 40분. 팜플로냐 외각에 도달했다. 작물 하나 없는 밭, 수풀과 갈대의 연속이던 시골길이 끝났고, 유럽에 왔구나를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주택가에 들어섰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 양 옆에 딱 봐도 유럽식 건물이구나 싶은 것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주택가를 지나니 공원 딸린 성당이 나왔고, 산책로 같은 길이 쭉 이어졌다. 반복되는 도심가를 30분 정도 걸으니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칠해진 학교가 나왔다. 꽤 높은 담벼락에 철장으로 된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 있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은 제각각 무리를 지어 놀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외국 학교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흥미로웠다. 도심에 들어오고, 화살표를 따라 30분을 넘게 걸었는데도 팜플로냐 중심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길에서 스치는 마을 주민들은 순례자들을 무덤덤하게 흘려보내기도 했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기도 했다. 지루해지고, 지쳐가는 순간마다 그들의 사소한 관심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도심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멀리서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화살표는 그곳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성벽 바로 옆까지 가니 아파트 6, 7층은 될 정도로 거대한 성벽이었다. 성벽을 따라 내부로 향하는 길목에 접어드니 흉악한 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성문이 나왔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다. 나는 성벽 위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곧 전망대가 나왔다. 나는 노란 화살표를 살짝 이탈해 그곳으로 갔다. 관광객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 옆에 서서 풍경을 내려다보았지만 밋밋했다.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 단지와 그를 둘러싼 나무들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외각에서 나를 반겼던 풍경이 나를 반겼다. 그곳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매끄럽게 뻗어있는 곡선 길 양 옆에 들어선 상가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과 다른 점이라면, 화려한 색과 고풍스러움이 곳곳에 묻어 있었고, 1층은 대부분 상가였다. 다만, 관광지 치고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다. 길가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5층 높이의 유럽식 다세대 주택 사이로 하얀 탑이 눈이 들어왔다. 곧이어 팜플로냐 성당과 마주했다. 입장 시간이 따로 정해졌는지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사람 하나 없었다. 가볍게 둘러보고, 발걸음을 이었다. 도시 중심부로 더 걸어 들어가니 광장이 나왔다. 그곳엔 관공서로 보이는 화려한 건물이 서있었고, 그 앞에 시위인지, 캠페인인지 모를 일을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질서 있게 모여 사람 키만 한 깃발들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짧게 짧게 주위를 둘러보며 멈추지 않고 걸었다. 광장을 빠져나와 골목길을 벗어나니, 각양각색으로 디자인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어우러진 높은 건물들이 길게 들어서 있는 로데오거리가 나왔다. 곳곳에서 익숙한 브랜드 매장이 보였다. 당장에 관광을 하고 싶었지만, 무거운 배낭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슬리퍼로 갈아 신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마저 걸었다. 로데오 거리를 벗어나니 분수대가 있는 로터리가 나왔고, 길을 두 번 건너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큰 건물 외벽에 있는 벨을 눌렀다. 곧 문이 열렸고, 계단을 올라 숙소 앞에 다다랐다. 닫혀있는 문을 다시 두드리니 직원이 나왔다. 나는 체크인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청소가 지연됐으니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오라고 지시했다. 짜증이 났다.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온 것도 아닌데, 힘들게 걸어온 순례자를 이렇게 되돌린다니. 얼른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말끔한 상태로 도시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한 시간 붕 뜨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다시 지고,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 지도를 켜고 근처 마켓으로 향했다. 간단한 요깃거리(빵과 콜라)를 사서 숙소 근처 로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풀고 앉았다. 무료로 마땅히 앉을 만한 곳은 거기뿐이었다. 사 온 빵과 콜라를 우걱우걱 금세 먹어 치웠다. 하늘로 치솟는 분수와 로터리를 빙빙 도는 자동차들을 보며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오늘 뭘 할지 검색을 하며 계획을 짰다.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렀다. 나는 다시 숙소로 갔다. 순례자 몇 명이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그들 뒤에 섰다. 금방 내 차례가 왔고, 여권과 순례자 여권을 확인하고, 도장을 받은 후, 직원의 안내를 따라 방과 침대를 배정받았다. 2층 침대는 대부분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혹시라도 2층을 오르내리기 힘든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순례길에서 암묵적인 룰이었다. 나는 서둘러 짐을 풀고, 샤워실로 향했다. 공용 화장실에는 샤워 부스가 4개 있었는데, 15초마다 불이 꺼지는 움직임 감지센서 덕에 몹시 스트레스받았다. 샤워를 마치고, 손빨래를 했다. 정말이지 고됨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역시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개인 정비를 마치고 곧장 숙소 밖으로 나왔다.
팜플로냐의 로데오 거리는 명동이나 홍대, 신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이 새삼스레 나를 감동시켰다. 건축 양식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그동안은 순례길만 걸은 탓에 내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이 확 와닿지는 않았는데, 이곳 한가운데에 서니 ‘내가 두 발로 유럽 땅을 디디고 서 있구나’가 실감 났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두 눈으로 곳곳을 세심하게 훑었다. 그리고 그곳의 전체적인 모습을 한눈에 담아보려 애썼다. 핸드폰 카메라로 담아보려 했지만, 역시나 불가능이었다. 거리를 한껏 눈에 담은 후 천천히 걸었다.
어디에선가 목관악기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니 문 닫힌 가게 앞에서 한 남자가 악보 거치대를 보며 플롯을 불고 있었다. 나는 그와 약 20m가량 떨어진 곳에 섰다. 여러 사람이 그의 앞을 무심히 지나쳤고, 그중 몇 사람만 나와 같이 걸음을 멈추고 조금 멀리서 그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중 한 사람만 그에게 다가가 공연료를 지불했다. 나도 조금이나마 공연료를 지불하고 싶었지만, 연주자 앞에 서있는 몇 명의 관중의 시선을 받으며 나아가기 쑥스러워 그러지 못했다. 이토록 남의 시선을 신경 쓴다니, 나에게 불만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속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거리를 조금 더 둘러보고, 등산 스틱을 사러 데카트론(스포츠용품 대형 매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3일 동안 약 70km를 걷기만 하다가 버스를 탄다고 하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나 버스를 탔다. 두 개의 버스가 기차처럼 이어진 저층 버스였다. 도심을 지나 철도를 가로질렀고, 버스는 서서히 도심 외각으로 벗어났다. 15분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 건너 커다란 건물에 박혀있는 파란색 ‘데카트론’ 간판이 보였다. 2층짜리 매장으로 상당히 큰 규모였다. 캠핑, 등산에 관한 모든 물품을 소유하고 있었고, 다양한 종목의 운동 용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등산 스틱을 찾아 비교해 보고, 두 번째로 저렴한 등산 스틱을 챙겼다. 1층부터 2층까지 구경을 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셀프 계산대에서 결제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17시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시청이 있던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와는 달리 수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광장 중심에서 노점상들이 개성 있는 물건과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조그마한 마을을 보다가 관광지를 오니 확실히 활기가 돌았다. 우선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나는 가장 가성비 있는 한 끼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한국에서라면 국밥이겠지만, 여기에서는 프랜차이즈 매장이었다. 나는 근처 버거킹으로 갔다. 무인결제기로 주문을 하고 메뉴를 받았다. 한국보다 비싼 만큼 사이즈도 컸다. 나는 구석 한편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했다. 언제 또 맛볼지 모를 속세의 맛을 전투적으로 즐겼다. 절반쯤 먹었을 때 청소년 무리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내 쪽을 쓱 훑고, 주문을 하러 갔다. 그는 내 쪽을 한 번 더 힐끔 쳐다보고, 내 뒤쪽에 자리 잡았다. 나는 그들을 곁눈질로 힐끔 쳐다봤다. 이상하고 꺼림칙 한 기운이 나의 직감을 건드렸다. 그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음흉하게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어떤 주제로 대화가 오가는지는 몰랐지만, 분명 그들과 다르게 생긴 동양인을 보고 수근덕거리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나의 피해망상적 사고일 수도 있지만, 그런 류의 수치스러움에 대해선 잘 알고 있기에,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하며,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몹시 불쾌한 감정을 느꼈지만, 청소년에 대한 핸디캡이라 생각하고 털어버렸다. 식사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거리의 사람은 더 늘어났다. 나는 먹다 남은 콜라와 감자튀김을 손에 쥐고 아까 지나쳤던 성당으로 향했다. 18:07. 여전히 문이 닫혀있었다. 철문 쪽으로 다가가 안내문을 살펴보니 19시에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관광객들로 가득한 거리로 가서 그들과 뒤섞여 거리를 구경했다. 좁은 길 양 옆에 상가 주택이 빼곡히 있었다. k-간판이 없으니 눈이 편했다. 한국에서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매장들에 눈길이 갔다. 유난히 눈을 자극하는 간판이 없으니 자연스레 가게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림 가게, 소품 가게, 옷 가게, 로드 푸드 가게 등. 모든 것이 감성적으로 다가왔다. 지도를 보지 않고 발걸음에 이끌리는 대로 걷다 보니 널따란 광장이 나왔다. 6,7 층 정도 돼 보이는 중층짜리 건물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직사각형 광장이었다. 나무들도 질서 정연하게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중앙에는 8개의 기둥이 돔 형식 지붕을 받치고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자 같은 건축물이 있었다.
나는 광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벤치를 찾아 앉았다. 감자튀김 용기를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집어먹었고, 오른손으로는 콜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얼마 남지 않은 터라 금세 먹어 치웠다.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벤치에 앉았다. 이토록 한적할 수 없었다. 광장 중앙에서 전투놀이라도 하듯, 무리 지어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내는 유쾌한 목소리.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 보드를 타는 사람,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는 노인, 등 뒤에 가방을 메고, 헤드셋을 낀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청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정하게 산책하는 가족, 교복을 입고 알 수 없는 말들을 큰소리로 내뱉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곳곳에 순례자의 행색을 한 사람들도 보였다. 왜인지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 틈에 껴 있어도, 그들은 눈에 잘 띄었다. 그 말도고 여러 가지 이유로 광장에 나와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간혹 가다 사람들의 소음을 뚫고 새들의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는 모든 소리와 모든 장면들을 그냥 바라보았다. 그 장면들은 일생에 몇 번 보기 힘든 오로라도 아니었고, 압도적인 자연 풍경처럼 거창하지도 않았고, 명성 있는 미술가의 작품처럼, 압도적인 건축물처럼 유달리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나는 그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온을 느꼈고, 유달리 행복했다. 이 순간은 두 달간의 여행 중 가장 특별했고, 기억에 남는 손에 꼽히는 순간이었다. 시간만 허락했다면, 며칠을 머무르고 싶은 곳이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광장을 걸었다. 몇 걸음 이어 걸으니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cafe iruna’ 헤밍웨이가 즐겨 찾으며 집필을 했다고 알려진 카페였다. 규모가 상당히 컸다. 나는 머뭇거리며 내부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손님은 없었는데, 직원들은 모두 바빠서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구경만 하러 들어간 나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30년 정도 된 카페라고 하던데, 그때의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했다. 카페 구석구석 정성을 쏟지 않은 곳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헤밍웨이는 어디쯤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집필을 했을지 상상했다. 나는 그곳에 남아있을지 모를 헤밍웨이의 기운을 담아보려 애썼다.
카페를 나와 광장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마음속에 담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순례길의 여파 덕에 발은 계속 아팠지만, 그 고통을 감수하고도 남을만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19시가 다가왔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하는 때가 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곳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뒷걸음질로 걸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길을 지나, 성당에 도착했다. 3명 정도가 주위를 서성이며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게 닫혀 있었던 철문이 드디어 열렸다. 순례길을 걸으며 성당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성당 중앙 문은 닫혀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다른 문이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 갔다. 그곳에 작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위에 성당 스탬프가 놓여있었다. 나는 순례자 여권을 꺼내고,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무거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공간 속 누적된 세월의 냄새, 오래된 나무 가구 냄새가 은은히 풍겨왔다. 몇 걸음을 더 걸으니 중앙 문이 있는 지점에 설 수 있었다. 성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면에는 의자와 좁은 테이블이 연결된 10명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세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성당 양 옆은 아치형으로 높게 뚫린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위 스테인글라스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성당 내부의 높이는 아파트 5층쯤 돼 보였다. 성당은 아주 작은 소리도 공명 시켰다. 중앙 뒤쪽 끝에 선 나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쪽으로 향했다. 몇 명의 사람이 의자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당 양쪽에 아치형으로 뚫려있는 벽 안쪽에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림과 동상들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성당 제일 앞쪽에 도착했다.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철문 뒤쪽에는 작은 제단이 있었고, 그 바로 뒤 십자가상이 있었다. 그 공간은 성당 내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성당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멍하니 성당 내부를 둘러보며 내적 감탄을 이어갔다. 나는 다시 정면에 있는 십자가상을 봤다. 눈을 살며시 감고, 두 손을 살포시 포갰다.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기도를 했다.
‘이곳을, 순례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무사히 걷고, 오늘을 맞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순례길도 부디 건강히, 무탈하게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설픈 기도를 마친 후, ‘아멘’으로 끝맺음을 지었다.
성당에서 나와 광장과 로데오거리를 관통하고,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할 때 잠깐 대화를 나눴던 한국인 순례자와 마주쳤고,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지난 3일간의 소회를 나누었다. 그가 물었다. “순례길 걸어보니까 어떠세요? 저는 죽겠던데..” “하하..”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평발이라 그런지.. 첫날부터 발이 아파서 당혹스러웠어요..” “아, 그러시구나, 평발 아닌 저도 아파 죽겠는데, 고생하셨네요.” “근데 뭐, 저는 평발이 아닌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평발이라는 생각은 굳이 안 하려고는 하는데, 하.. 그냥 발이 너무 아파서 앞으로 어떡하나 싶네요..” “제가 듣기로는 그래서 팜플로냐에서 하차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하더라구요. 아시는 것처럼 피레네 넘고,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례길 전체 중에 가장 힘든 코스라고 하잖아요. 더구나 팜플로냐는 관광지이기 하고, 그래서 그냥 순례길 왔다가 관광객으로 전환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도 광장에 앉아서 그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었다. “그 마음 충분히 알 것 같네요.. 그럼 내일부터가 어떤 의미로는 본격적인 시작이겠네요.”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1시를 넘겼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사담을 마무리하고 취침 준비를 하러 갔다. 원래라면 순례길을 다 걷고 휴식을 취하며 발마사지로 피로를 풀어야 했지만, 관광을 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나는 뒤늦게나마 발 마사지를 하기 위해 발을 살폈다. 아까는 없었던 물집이 생겨 있었다.
우려했던 일 중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한국에서 챙겨 온 바늘과 알코올스왑으로 물집을 처리했다. 내일은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난코스를 넘어야 했는데, 걱정이었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으로 이어졌다. 그동안은 예약한 숙소에 가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별 걱정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 전 숙소를 알아보고, 당일 방문해서 직접 구해야 했다. 그나마 좋은 숙소를 알아보아도 늦게 도착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또, 그동안은 덜 신경 쓰였던 배드버그도 걱정되었다. 걱정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정신을 부여잡고, 침대에 해충 스프레이를 뿌리고, 침낭을 펼치고, 몸을 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