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문제로 고생할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았다. 하지만 새벽에 악몽을 꾼 탓에 식은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잠에서 깼다. 깨자마자 꿈 내용은 잊혔다. 시계를 보니 05시. 원래 기상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시간이었다. 나는 침낭에서 잠시 나와 땀을 식히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시계 알람이 울렸다. 나는 어둠 속에서 침낭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간단히 나갈 채비를 하고, 조식을 먹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3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탁 한편에 빵과 시리얼, 요거트와 주스가 놓여있었다. 커피는 호스트가 직접 내려주고 있었다.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 없이 각자의 식사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칠 때쯤 몇 명이 더 합류했고, 조용했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나는 식기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하러 개수대 쪽으로 갔다. 그때 호스트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설거지는 본인에게 맡기라는 말과 함께 순례길의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를 건넸다. 나는 깊은 감사를 느꼈고, 온몸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전날 산 간식과 물, 돈과 여권 등 중요 물품을 작은 크로스백에 챙긴 후, 빠트린 짐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체크를 하고 배낭에 방수 커버를 씌워 1층 동키 구역에 놓았다. 나는 거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발목에 스포츠 테이프를 둘렀고, 무릎 보호대를 찼다. 발목을 움직여보니 약간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때 어제 대화를 나눈 프랑스 순례자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그의 인사에 호응했고, 컨디션이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치고,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 돼서 자연스럽게 프랑스 순례자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공기는 약간 찼지만 상쾌했고, 건물 틈새로 따스한 햇살이 비쳤다. 그의 제안으로 숙소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새소리가 들리는 마을 중심부를 가로질렀다. 길목 곳곳에 다른 순례자들이 보였다. 10여분 정도 걸으니 마을을 벗어났고, 완연한 시골 모습이 나타났다. 익숙한 시골의 짙은 향기가 풍겨왔다. 50m 떨어진 곳에서 낯익은 배낭을 짊어진 순례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방을 썼던 일본인 순례자였다. 우리는 발걸음을 조금 바삐 움직였고, 그에게 다가가 한결 익숙한 친밀감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프랑스 순례자는 함께 걷고 싶었는데 먼저 출발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며 그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는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전보다 한참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다. 15분쯤 흘렀을까,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속도로 걷는다면 론세스바예스에 저녁이 다 돼서 도착할 게 분명했다. 나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먼저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서로의 행운을 빌며 인사를 나누었고, 헤어졌다.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어제 프랑스 순례자가 먼저 대화를 걸어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나도 먼저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외국어 실력이 우려돼 선 듯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프랑스 사람이었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거리낌 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용기와 의지만 있다면 언어권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대화를 할 수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유럽이라는 환경에서 살았기에 품을 수 있는 여유와 유연함일까. 약간의 부러움을 느꼈지만, 하나의 선입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멈췄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통한다면, 뜻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정 언어는 단지 하나의 문화이자 수단일 뿐이었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몰랐지만, 평지와 언덕으로 반복되는 길을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피레네 산맥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은 온통 물결치는 산맥뿐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만 열렬히 타고 있었다. 간혹 독수리로 보이는 커다란 새 한 두 마리가 하늘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길 군데군데 널따란 초원이 있었고, 티 없이 맑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것처럼 양, 말, 소들이 그곳을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곳곳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와 앞선 순례자들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으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 시선 위쪽에 있던 구불거리는 산맥들이 이제 나와 눈높이를 같이 하거나, 시선 아래 놓였다. 눈앞에 펼쳐진 산맥은 정말 파도가 물결치는 행세였다. 내적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 풍경을 틈틈이 핸드폰 카메라에 담으려 했지만 도무지 담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진을 계속 찍으며 걷는 도중 문득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핸드폰을 통해서 그 풍경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컴퓨터로 다른 사람 리뷰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른지 싶었다, 나는 그때부터 되도록 카메라 드는 일을 신중히 여겼다.
숙소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날 무렵인 09시 20분, 오리손에 도착했다. 오리손은 생장에서 약 8km 떨어진 곳으로, 론세스바예스까지 가는 동안 있는 거의 유일한 알베르게이자 휴게소였다. 그곳에는 야외 테라스가 별도로 있었는데, 산 중턱 너머에 있던 터라 광경은 이루 말할 것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그곳은 매장 구역이었기 때문에 갈 계획은 없었다. 나는 그 앞에 있는 식수가 나오는 수돗가에 물통을 채우고 턱에 잠시 앉아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며 재정비를 했다. 그동안 신발 안으로 언제, 어떻게 들어 간지 모를,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 돌 티끌 하나를 빼내고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맸다. 예정보다 지연된 탓에 나는 전보다 바삐 발걸음을 굴렸다.
걸을수록 눈에 보이는 순례자들의 수는 점점 줄었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각자 걷는 순례자를 앞질러 지나칠 때마다 “부엔 까미노!”로 인사를 받았다. 아직 어색한 탓에 먼저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다. 나는 그들 따라 “부엔 까미노”로 회답하며 점차 어색함을 지워갔다. 피레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산길이 아니었다. 산맥을 관통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매끈하게 잘 다져진 아스팔트 길이었다. 적어도 이 길은 그랬다. 차 두 대는 거뜬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지도 않은 길이었다. 주위에는 나무 하나 없었다. 무한한 평야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산이 맞는지 싶었다. 실제로 길 옆에 넓은 들판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 그곳엔 늘 목에 종을 찬 양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11시가 가까워오니 태양은 더욱 뜨거워졌고, 아스팔트의 열이 올라왔다. 신발과의 마찰 때문에 발에서도 열이 올라왔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발목이 아프지 않았다. 대신 발바닥이 아파왔다. 명백히 평발 탓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선은 점점 땅으로 고꾸라졌고, 풍경에 대한 감탄도 점차 줄어들었다. 11시 20분쯤 풍경 좋은 언덕에 서있는 흰 차 한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순례자들에게 간식을 판매하는 차량이었다. 오리손 이후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던 나는 그곳에서 잠시 앉아 미리 산 초코바 하나를 까먹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맞았다. 어서 숙소에 도착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길 위에 다른 순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주위에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얼마 더 가니 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고, 익숙한 숲길에 들어섰다. 나는 다시 속도를 내서 걸었다. 고됨 탓에 풍경이 마음속에 잘 들어오지 못했다. 빠른 차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20분쯤 더 걸으니 내리막이 시작됐다. 발에는 체중이 더 실렸고, 그만큼 통증은 강해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물리학을 체감했다. 계속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잠시 후, 양 때가 길목을 막고 있었다. 나를 들이받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히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양들이 내 눈치를 보면서 길을 터줬다.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힘든 와중에도 틈틈이 사진을 찍었지만, 마지막 한 시간은 기계처럼 걷기만 했다. 13시 30분.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알베르게는 수도원과 함께 있는 3층짜리 공립 알베르게이다. 순례길에 있는 알베르게 중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 숙소이기도 했고,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알베르게이기도 했다. 나는 체크인을 하기 위해 1층 로비로 갔다. 순례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순례자들의 번잡함 속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줄이었다. 나는 그 끄트머리에 섰다. 곳곳에 한국인이 보였다. 내 바로 앞에도 한국인이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네요.”
“네.. 고생 많으셨어요!”
진 빠진 나는 짧은 한숨을 툭 뱉어내며 약간 얼빠진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예약은 하셨죠?” 가 물었다.
이곳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의 첫 목적지였고, 거의 유일하다 싶은 숙소였기에 많은 사람이 찾아서 예약이 필수였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놓았다.
“네, 예약 안 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길래 출국 전에 해 뒀죠. 예약하셨어요?”
“네. 저도 했죠!”
우리는 기가 막히고 진이 빠졌던 첫날의 소감을 서로 나누며 긴 줄을 줄여나갔다. 15분쯤 지나니 차례가 왔다. 그가 인사했다. “기회가 되면 또 봐요!”
알베르게 규모에 맞게 리셉션에는 직원이 꽤 많았다. 담당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준 후 예약을 확인해 주었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무사히 체크인을 마쳤다. 나는 별도로 마련돼 있는 짐 보관소에서 배낭을 무사히 찾은 후 곧바로 발목까지 감싸는 무거운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다시 숙소동으로 돌아와 1층에 별도로 마련된 공용 신발 보관소에 등산화를 넣었다. 나는 배낭을 챙겨 엘리베리터를 타고 해당 층에 올라 배정받은 침대로 향했다. 소문대로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였다. 많은 인원이 숱하게 이용하는 것 치고 관리가 잘 돼서 약간 놀랐다. 튼튼한 2층짜리 침대 두 개가 딱 붙어있는 게 한 칸이었고, 한 층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20여 개는 돼 보일 칸이 모눈종이처럼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남녀는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내가 속한 칸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브라질 사람과 미국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짐 정리를 한 후 곧장 샤워실에 가서 씻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때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웬만한 즉석식품, 음료, 간식들이 가득한 자판기에서 빵과 음료를 뽑았다. 간단히 허기만 달래고 손빨래를 한 후, 볕이 잘 드는 야외 건조대에 널었다. 여러 순례자들이 잔디밭에 누워 각자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텐트를 편 사람들도 보였다. 그곳에서 잘 생각인 것 같았다. 내 눈에 그들인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아 보였다. 부러웠지만 나는 그들처럼 그런 시도를 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벌레나 진드기에 물려 뜻하지 않게 고생을 하고 일정에 차질이 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을 마치고 나서야 여유 있게 숙소를 둘러보았다. 1층 로비에는 역사를 지닌 순례자 물품들이 유리관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굿즈 같은 것들이나 실용적인 물품들도 팔고 있었다. 리셉션에는 이제 막 일정을 마치고 도착한 순례자들과 휴식을 취하기 위한 순례자들이 뒤섞여 여전히 번잡했다. 그때, 투박한 악기와 목소리가 섞인 희미한 음악소리가 그 사이를 비집고 내 귓전을 건드렸다. 나는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미음’ 자로 설계된 수도원 중앙에 꽤 큰 광장이 있었다. 그곳에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있었다. 일부 순례자들이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기타와 이름 모를 타악기를 가지고 신나게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잔디에 누워있는 사람들처럼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어느 누구의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한국사람들만 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지나친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 사람은 공공장소나 불특정 다수가 있는 곳에서 타인의 시선을 외면한 채 침묵을 깨는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대부분 ‘민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사회를 얻은 지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았다. 이게 나름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슨 언어로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의미를 품은 노래인지 몰랐지만, 그들이 내뿜는 목소리와 에너지는 그들의 자유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한동안 멍하니 감상했다. 15분쯤 을렀다. 그들은 노래를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리가 저리고 발이 아팠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1인 소파에 앉았다. 발 아치 부분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있었다. 난 엄지로 그곳을 중점적으로 주물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나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갔다. 일반적인 인사였는지, 내 모습이 조금 짠해 보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인사는 모두 반가웠다.
일기장과 펜을 들고 1층 휴게소로 자리를 옮겼다. 출국부터 지금까지 밀렸던 일기를 썼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고, 시련이 있었음에도 먼 타지에 무사히 도착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비록 첫날이지만, 여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배낭여행을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다. 앞으로의 날들의 기대됐지만 걱정도 됐다. 40여 일 중 하루, 800KM 중 26KM를 걸었을 뿐인데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럽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행복했다. 정말 ‘꿈’ 같던 곳을 내가 걷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시간이 됐다. 나는 체크인할 때 받은 식권을 들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수도원에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약간 이상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알베르게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납득됐다. 직원 한 명이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로 나를 안내했다. 부모님 또래의 한국인 3명, 그들과 비슷한 나이 때로 보이는 외국인 2명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어색하게 다가가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얘기를 들어보니 8명이 모여야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했다. 어색함 속에서 시간이 조금 흘렀고, 8명이 모였다. 그제야 직원이 다가와 티켓을 수거하고 주문을 받았다. 메인으로 닭 스테이크, 돼지 스테이크, 샐러드를 선택할 수 있었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푸딩, 요거트, 케이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골고루 주문이 이루어졌다. 먼저 빵과 수프, 와인이 제공됐다. 물만큼 와인을 제공해 준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이어서 메인 요리가 나왔다. 뷔페 접시 크기에 얇은 돼지고기 3줄, 감자튀김, 감자 샐러드가 놓여있었다.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세팅이 끝나고 외국인 순례자 한 명이 유쾌하게 건배제의를 했다. 8명의 순례자는 각자의 와인잔을 허공에 치켜들며 건배를 했다. 나는 5분 만에 접시를 비웠다. 원래라면 3분 만에도 끝낼 수 있었지만, 다른 순례자들과 속도를 맞추느라 그나마 천천히 먹은 거였다. 음식량에 대해 외국 순례자들은 그리 놀랍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한국 순례자들은 나와 같이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직원은 빈 접시를 가져갔고, 곧바로 디저트를 내주었다. 나는 케이크를 시켰는데 이 또한 금세 사라졌다. 양 옆에 외국 순례자들은 서로 대화를 하며 느긋이 식사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예매하게 낀 탓에 누구와도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식사만 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나는 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예의인 것 같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때 다른 순례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 역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다. 시간은 벌써 밤 8시를 지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불이 다 꺼져있었다. 나는 양치를 하고, 침대로 조용히 올라갔다. 군대에서 활용했던 불빛 들어오는 볼펜을 들고 그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짓는 일기를 쓰고 침낭 속에 몸을 뉘었다. 곳곳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어 플러그를 끼고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도 무사한 것에 감사했다. 부디 내일 하루도 무사히 걸을 수 있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