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생장

D-DAY

by 지안

떠남, 설렘과 두려움 사이


출발 당일, 발목 부상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다. 9월 초의 더운 날씨 속에서, 첫 해외여행이라는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싶어 비행기 출발 5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예상과 달리 모든 절차는 순조로웠다. 30분 만에 출국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서 마지막 식사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이후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출발을 기다렸는데, 기대와는 달리 무척 지루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속 감정이 복잡해졌다.


나보다 먼저 순례길을 걸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곳에서 어떤 깨달음이나 뜻밖의 선물을 얻을 수 있을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될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새벽 한 시, 나는 마침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순례길의 시작, 첫 만남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프랑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비아리츠와 바욘을 거쳐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 피에 드 포르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데만 거의 하루가 걸렸다. 그동안 입국 심사, 짐 검사, 티켓 구매 등을 하며 미비한 외국어 실력으로 소통해야 했고, 긴장감과 피로가 쌓였다. 하지만 생장 역에서 아픈 발을 내딛는 순간, 은은한 전율이 온몸을 감싸며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바욘에서 생장까지 함께 기차를 타고 온 각국의 순례자들과 마을 중심가로 걸어갔다. 잔잔하지만 웅장한 배경음이 내 안에서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가 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류장에서 사무실까지 꽤 거리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승객이 순례자였고 안내판과 화살표가 길을 잘 안내해 주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오래된 집들, 아치형 다리, 종탑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건축물들 사이를 지나 마을 중심부에 도착했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상상 속 유럽 소도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양옆으로는 순례자들을 위한 기념품점과 물품 가게, 식료품점, 음식점이 줄지어 있었고, 마을 사람들과 순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정겨운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느낌을 마지막으로 경험한 게 언제였을까. 아마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을 중심부를 지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자, 사무소 앞에는 순례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꿈만 같았던 순례길을 이제 곧 걷게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생각보다 한국인이 많았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왜인지 약간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조용히 줄 끝자락에 섰다.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들려왔고, 그 사이에서 한국어도 또렷이 들렸다. 얼핏 들으니 그들은 바욘에서 생장으로 오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친해진 듯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그들에게 향했는데, 마침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순례길을 걷기 전, 한 가지 다짐을 했었다. 최대한 이 길을 혼자 걸을 것. 세상과 타인에게 휘둘려 나를 잃는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길을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다음 날 일정을 확인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중년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나는 순간 당황하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네? 아, 네.”

“여기 줄이 순례자 사무소 줄인가요?”

그의 어투는 마치 웃어른을 대하듯 공손했다. 나도 같은 공손함으로 답했다.

“네! 제 뒤로 이어진 줄에 서시면 돼요.”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Buen Camino!”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라는 뜻의 이 인사는 순례길에서만 통하는 만국 공통의 인사말이다. 나는 순간 당황해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직 내게는 어색한 말이었다. 대신 어정쩡하지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미적지근한 대답이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답이었다. 순례길에서 공식적인 첫인사를 받고 나니 기분이 묘하게 들뜨면서도 멍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 스스로 쌓아 두었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가오는 이를 애써 막지 말고, 떠나는 이를 억지로 붙잡지 말라.’ 문득 떠오른 이 격언이 순례길에서의 첫 깨달음이 되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순례자 사무소는 컨테이너 두세 개를 붙여 놓은 듯한 작은 공간이었다. 안에는 네 명의 직원, 아니 자원봉사자들이 앉아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중 나이 지긋한 한 분이 내게 자리를 안내했다. 여권을 보여주자, 그는 종이로 된 순례자 여권을 건네며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순례자 여권에 첫 도장을 찍어 주고 날짜를 적어 주었다.

그는 공식 일정표를 주며 코스를 간략히 설명해 주었고, 특히 조심해야 할 구간들을 짚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내게 행운을 빈다며 다시 한번 말했다.

“Buen Camino!”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소를 둘러보았다. 한쪽 모퉁이에 가리비 조개껍데기가 쌓여 있는 바구니와 ‘donation’이라고 적힌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리비 조개껍데기는 순례길을 상징하는 표식이다. 이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자 첫 번째 순교자인 성 야고보의 시신이 배에 실려 바다로 떠내려갔고, 결국 스페인의 이베리아 해안에 도착했다. 그때 조개껍데기가 그의 시신을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유해가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있는 위치에서 발견되었고, 그를 기리기 위해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순례자들은 자신의 지팡이나 가방, 옷가지에 조개껍데기를 달고 길을 걸었고, 이는 곧 순례길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도네이션 상자에 2유로를 넣고, 가리비 조개껍데기 하나를 챙겨 가방에 달았다.


순례길 첫 일정은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 26km를 걸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국경을 넘는 동시에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했고, 전체 일정 중 가장 힘든 코스 중 하나였다. 도중에 산장 같은 숙소가 있었지만 머물 계획은 없었다. 사전 조사 결과, 첫날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컨디션 체크도 필요했고, 특히 나는 발목 부상 경과를 살펴야 했기 때문에 동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방문했다.

동키 서비스는 숙소에서 숙소로 배낭을 옮겨주는 서비스다. 나는 개인 정보와 예약한 숙소 정보를 알려주고 신청을 마쳤다. 이후 미리 예약한 알베르게로 향해 체크인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은 대부분 알베르게에서 머무르게 된다. 알베르게는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과 비슷한 숙소로, 공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공립은 성당이나 정부에서 운영하며 평균 5유로 내외로 저렴하지만 시설이 열악할 수 있다. 사립은 개인이 운영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시설이 더 좋고 선택지도 다양하다.

내가 도착한 알베르게는 사립이었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숙소로, 나무와 자주색 벽돌이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를 자아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었고, 2층에는 침실이 있었다. 주방은 최신 기구들로 리모델링되어 있었지만, 곳곳의 나무 가구 덕분에 전체적으로 오래된 가정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침실로 올라가 보니 2층 침대가 놓여 있었고, 내 자리는 창가 쪽이었다. 짐을 풀고 테라스로 나가니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숙소 입구에서는 평범한 언덕길 골목만 보였는데, 뒤편 테라스에서는 생장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나무들과 하얀 벽, 자주색 지붕의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정겨웠다. 늦은 오후, 은은한 황금빛 햇살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청명한 하늘과 그 사이를 유영하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 한동안 멍하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길에서 나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그리고 무엇을 얻게 될까.’


사람 하나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구조물 샤워부스에서 씻고, 손빨래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씻지 못해 은근히 찝찝해서 상당히 불쾌했던 기분이 상쾌해졌다. 긴장도 약간 풀렸는지 졸음과 허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숙소를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순례자들은 ‘순례자 메뉴’라는 저렴하고 알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일종의 배려이자 특권이었다. 첫 끼니이니만큼 기분 내고 싶어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직원이 야외 테라스로 안내해 주었고, 나는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닭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식당은 만석이었지만 한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후, 마켓에서 간식과 물을 사고 거리를 구경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이 되자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의 일상이 보였다. 작은 광장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가게 앞에서 쉬고 있는 모습들이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한국에서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왠지 모를 아련함과 가벼운 슬픔이 스쳤다.

숙소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자 성곽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나타났다.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저녁노을이 저물고 있었다. 탁 트인 풍경과 살랑이는 바람이 기분 좋았다. 한동안 멍하니 서서 바람과 햇살을 맞았다.




첫날의 끝, 별빛 아래에서


숙소로 돌아오니 일본에서 온 중년 남성과 프랑스에서 온 청년이 있었다. 일본인 순례자가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나도 조용히 인사했다. 프랑스 순례자는 쾌활하게 인사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잠시 후 일본인 순례자가 자리를 떴고, 프랑스 순례자가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과 도시를 구글맵을 보여주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 대해 물었다. 나는 한국, 경기도에 산다고 했고, 그는 서울을 안다고 했다. 그는 지도를 가리키며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고, 결국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설명하게 되었다.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며 웃었다. 나 역시 즐거웠다고 답했다.

프랑스 순례자는 일본인 순례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우린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한 걸까?’라고 생각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빨래를 가지러 테라스로 나갔다. 선선한 공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기지개를 켜며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

절로 감탄이 나왔다. 머리 위로 온 우주의 별들이 쏟아질 듯 떠 있었다. 압도적이고도 황홀한 광경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찍어 보려 했지만, 그 거대한 밤하늘은 담을 수 없었다. 결국 체념하고, 가능한 한 눈으로 더 담아두기로 했다.

첫날부터 이런 경험을 하다니. 벅찬 감정과 함께 깊은 감사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나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별보다 내 목이 먼저 떨어질 것 같았다. 몸이 점점 차가워질 무렵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와 개인 침낭 곳곳에 벌레 퇴치제를 뿌리고, 몸을 최대한 침낭 속에 욱여넣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베드버그였기 때문이다.

집을 떠난 지 31시간 만에 침대에 누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무사히 도착해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런 평범한 하루에 감사했던 것이 언제였을까.


‘내일도 무사히 걸을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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