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결심, 떠날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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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글쓸 결심


순례길을 다녀온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도 4년이 흘렀다. 그동안 크게 세 번의 시도가 있었다.


2020년 4월. 생기 넘치는 봄의 향기와 새들의 또랑또랑한 지저귐이 들릴 무렵.

2020년 6월. 제주살이를 꿈꾸며 푸르름 가득한 제주에서.

2020년 11월. 순례길을 다녀온 지 딱 1년이 되던 가을. 낙엽이 속절없이 흩날리던 때.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짧은 글귀를 메모하는 수준에 그쳤다. 글쓰기를 멈춘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책을 내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는데, 도저히 책을 낼 만한 글쓰기 실력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례길에 대한 글을 완전히 내려놓고, 몇 년간 서툰 나를 다듬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 과정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구나 싶다. 나는 원래 사람을 사귀는 일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는 일도, 적응하는 일도 늘 조심스럽고 느렸다. 가마솥의 물이 천천히 끓어오르듯, 글쓰기 역시 나에겐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에 살며, 때때로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순례길을 걸을 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만의 속도로 가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힘을 빼고, 단순히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순례길을 걷고, 그 기록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했을 당시, 나는 순례길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처럼 의욕과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글을 쓰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희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때 보았던 것, 느꼈던 것들을 텅 빈 백지 위에 ‘글’로 옮기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작업이었다. 더구나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일기 쓰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때로는 오히려 그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창작의 고통이 무엇인지 음악을 하며 이미 충분히 겪었지만, 글쓰기는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이었다. 글을 쓴다는 일이 단순히 멋지고 행복한 줄만 알았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급함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점이다.

“나답게 살면 되지.”

이 생각이 나를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아주 가끔, 허망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꿈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

사회가 요구하는, 남들이 인정할 만한 성취를 단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

그 시선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이 조급함을 대신해 나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생각들과 감정들이 결국 나를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다시, 요가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다시 편안함을 찾았다.




떠날 준비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6~7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라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삶을 알게 해준 한 사람을 어느 토크 콘서트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들려주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현실감 없는 막연한 도피처 정도로 여겼다.


그 후 1~2년 사이, 순례길을 다룬 예능 두 편이 방영됐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 작은 불씨가 피어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그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순례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던 그때, 거의 잊고 있었던 순례길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단단히 이끌린 사람처럼, 순례길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달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길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가장 먼저 여권을 급히 만들었다. 그리고 예능에서 본 것 외에는 순례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 웹 카페에 가입했다. 2019년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는 나라였고, 덕분에 정보는 넘쳐났다.


우선 전체적인 일정을 짰다. 순례길에는 여러 루트가 있었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카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 일명 ‘프랑스 길’을 걷기로 했다. 프랑스 생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해 약 800km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에 도착하는 코스로, 대략 30~40일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큰마음을 먹고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순례길만 걷고 돌아오기에는 아쉬웠다. 카페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마친 후 유럽 여행을 이어갔다. 나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추가해 한 달간 여행하기로 계획했다. 그렇게 두 달간의 해외여행을 단 하루 만에 결정했다.


그 후, 카페에서 경험자들의 조언을 참고하며 구체적인 여정을 계획하는 동시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하나 준비했다. 처음엔 막연하기만 했던 순례길과 여행의 모습이 마치 퍼즐처럼 맞춰져 갔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설레고 짜릿했다. 이런 기분 좋은 긴장과 기대를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였던가. 역시 여행은 준비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이 있었다. 나 혼자 좋은 경험을 한다는 미안함.


필요한 준비를 마치니 2주는 금방 지나갔다. 순례길에서는 평균 10kg의 배낭을 메고, 하루 25km씩 30여 일간 걸어야 했다. 평발인 나는 체력 점검을 위해 출발 2주 전부터 맨몸으로 15km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새로 산 등산화 때문인지, 아니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10km 지점에서 갑자기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통증에 곧장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날까지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나는 의사에게 2주 뒤 떠날 일정에 대해 말했다. 의사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 긴 여정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망연자실했다. 패닉에 빠졌다.


그렇게 2주 동안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며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떠나기도 전에, 실패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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