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긴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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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이런 눈을 본 적 있다. 비린내 가득한 제주 중문 시장 수산물 구역 한편에 있는 갈치의 눈이다. 기민한 몸짓으로 바다를 가르며, 인간 못지않게 치열한 생을 살아냈을. 어림잡아 1m는 될 듯한 몸집, 매끈하고 영롱한 은빛 비늘, 빛의 각도에 따라 사방으로 오팔 빛깔을 튕겨내는 몸통. 이제는 죽어 의식이 소멸했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여전히 피식자를 집어삼킬 듯한 섬뜩함을 품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스박스 속, 동족의 사체 더미에 파묻힌 채 인간의 식량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갈치. 그리고 그 눈동자. 거울을 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시장에 널브러져 있는 갈치의 눈처럼 되어가고 있음을. 죽어서야 가질 수 있는 눈빛을, 사람은 살아있어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은 무엇이든 마음속에서 의미를 떠올릴 수 있어야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피곤함과 권태 속에서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어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우리만의 의미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검푸른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순한 원자들의 집합체, 돌이나 흙과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러니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상상해야 하고, 가치를 느껴야 하고, 스스로 의미를 알아채야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마음이 모든 것을 튕겨내는 느낌. 하지만 그전에 먼저 찾아오는 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혐오하고, 증오하고, 원망하는 시기다. 이 시간을 잘 견뎌내지 못하면, 마음은 굳어버리고 눈은 죽은 갈치처럼 변해버린다.


죽은 갈치는, 지금 흐리멍덩한 눈을 부릅뜨고 인간이 감히 닿을 수 없는 넓은 바다를 보았겠지. 우리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할 고래들과 물고기들을, 날치가 물 밖으로 튀어 올라 바람을 가르며 찰나의 비행을 하는 모습도, 바다거북이 누구보다 빠르게 헤엄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았겠지. 하지만 그토록 찬란했던 갈치도 결국 죽는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뜬 눈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시체가 된다. 그나마 멀쩡했던 오팔빛을 띠던 몸뚱이는 가차 없이 토막 나 검은 봉투 속으로 사라진다.


2019년 늦봄, 나의 눈과 마음, 처지가 딱 그랬다.




2019년 초부터 나는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고 있었다. 마치 테이프를 되감아 놓은 듯한 삶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아침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 첫 번째 신호등을 기다림 없이 건넜다. 9시간 동안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해내고, 출근길과 똑같은 길로 퇴근했다.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고, 짧은 개인 시간을 가지면 하루가 끝났다. 모든 것이 지루하고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꿈과 소소한 취미 덕분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꾸준히 노력하면서도 직장인의 무게를 견뎠고, 한정적인 시간과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지평을 넓혔다. 행복했지만, 가끔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된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럴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하거나, 재즈와 클래식을 들으며 스스로를 회복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기만 했다. 좋아하는 음악조차 기계적으로 소비하는 내 모습이 힘들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한 양식뿐만 아니라, 정신을 지탱하기 위한 양식도 꾸준히 채워야 한다는 말을 믿고 노력했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점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 괴로움 속에서 계절의 아름다움조차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꽃잎이 피어나는 작은 기적을 느끼지 못했고, 붉게 저무는 석양을 바라봐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영혼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믿었던 음악조차 점점 공허하게 들렸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졌고, 정신적으로 깊은 코마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가끔 깨어나는 듯했지만, 그것도 발작처럼 순간적인 몸부림일 뿐이었다. 점점 스스로에게 연민과 불쌍함을 느꼈고, 때로는 한스러움이 몰려왔다. 언제나 나에게 가장 큰 힘과 위로가 되어준 자연과 음악마저도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느껴지자, 공허는 곧 죽음과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수천 년 전부터 현자와 철학자, 예술가, 학자, 종교인뿐만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까지 저마다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왔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정의를 내렸다. 나는 그들이 남긴 지식과 지혜의 조각들을 알뜰히 주워 담으며 삶에 적용하려 애썼다. 분명 도움이 됐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고, 꽤 괜찮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늘 유효기간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갈증을 느꼈고, 끊임없이 새로운 책과 말을 찾아 헤맸다.


그들의 조언대로 살면 바람직한 사람이 될 수는 있었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들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들이 남긴 지혜의 조각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겪고 깨달은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남이 남긴 ‘일용할 양식’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의 정신에 필요한 채움이었지만, 어느 순간 공허함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남이 던져 준 지혜의 찌꺼기를 주워 먹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나도 그들처럼 직접 경험하고, 운명에 맞서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고 싶었다. 그저, 좀 제대로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순례길로 떠났다.




출가. 집을 나온다는 뜻이다. 법정 스님은 출가를 ‘삶이 이런 게 아닐 텐데’라는 회의 끝에, 마침내 떨치고 나오는 것이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어디서 부른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이도 없다. 하지만 일상이 따분하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문득 ‘삶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삶을 훌훌 털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국 더 자기다운, 더 온전한 인간다운 삶을 찾아 나서는 것이 출가인 것이다.


이런 마음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는 본인만이 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익은 열매가 떨어지듯, 어느 날 문득 떠오른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순간 불현듯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진정한 봄은 어디서 올까. 묵은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때 새로운 움이 틀 수 있습니다.’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막연한 내가 아닌 온전한 내가 되길 바라며 길을 나섰다.


글을 쓰기 위해 떠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정이 끝날 무렵, 반드시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끌렸다. 마치 순례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순간처럼. 처음엔 누군가를 위해 쓰고 싶었다. 길 위에서 마주한 평범하지만, 적어도 내겐 경이로운 순간들을 혼자만 간직하는 게 아쉬웠다. 내 경험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하고 싶었다.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됐다. 나는 아직 그런 글을 쓸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설령 능력이 있다 해도, 나와 동일한 경험을 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백문이 불여일견. 아무리 좋은 글도 직접 가보는 것만 못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순간을 온전히 글로 옮기는 것뿐이었다. 글을 쓰며 어떤 목적을 부여하는 순간, 그 글은 본래의 생기를 잃고 만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글은 그저 나의 소중한 여정을 세월에 풍화되지 않도록 기록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글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길고, 약간 진지한 일기 같은 글이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작은 욕심을 부려 두 가지 바람을 적어본다.


하나는,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만의 길을 떠나게 되길. 순례길이 아니더라도, 각자만의 의미 있는 곳으로 향해 자기만의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하나는, 여행의 의미가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나답게 나름의 여유를 부리며 살아가 보자는 것.


누군가 그랬다. 낭만을 위해서는 약간의 사치가 필수라고.


나는 이제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순례길의 기록이자 여행에 대한 찬가를 남기려 한다. 그리고 끝이 있을 퇴고를 향해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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