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

D+27

by 지안

어제 자기 전 30분 정도 방 불이 꺼지지 않아서 한동안 당황했다. 그리고 곧 꺼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안대를 썼다. 다행인지 쓰자마자 불이 꺼졌고, 다시 안대를 벗고 곧장 잠에 들었다. 오늘은 걸음의 순례길을 마무리하고, 기차로 최종 목적지까지 100km 떨어진 사리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06시 44분 기차를 타기 위해 모처럼 이른 기상을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발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떠났다.

오늘 아침은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좋았다. 가을이 되고 해 시간이 짧아져서 아직 어두웠다. 꽤 걸어서 시골 간이역 같은 기차역에 도착했고, 곧바로 기차를 탔다. 1인석인 것에 더불어 한동안 나 혼자 한 칸을 사용해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과 간간히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를 보였다.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내가 500km 넘게 걸었다는 것과 이곳에 있다는 것. 곧 끝난다는 사실 전부. 기차를 타고 너무 안락하고 따뜻해서 잠이 몰려왔고, 한 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났다. 그 덕에 아쉽게 일출은 보지 못했다.

사리아에 도착해서 내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고, 숙소로 바로 갔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거실 한편에 가방을 보관하고 가볍게 마을을 산책했다. 순례자들은 이 마을을 가로질러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고, 나는 마을 주민처럼, 여행자처럼 여유 있게 마을을 들아 다녔다. 그리고 장을 보러 여러 군데를 둘러봤다. 슈퍼나 마켓을 갔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장을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직 하지 않은 체크인을 하고 개인 정비를 하고, 점심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2차로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쉬면서 휴대폰을 했다. 조금 추워서 호스트에게 담요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때마침 다른 여자 주인이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았다. 이 여유가 무척 좋았다. 그렇게 계속 쉬다 보니 저녁시간이 금방 왔다. 휴대폰을 충전시키는 동안 멍 때리고, 그동안 받은 순례자 여권 도장도 훑어보았다. 그동안 쓴 일기도 쓱 훑어보는데 뭔지 모를 짠함이 밀려왔다.

저녁으로 점심과 마찬가지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튀기 듯 구워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이렇게 한 달간 계속해 먹으니 요리 실력이 계속 느는 것 같다. 후식으로 복숭아와 요거트를 먹었다. 아까 빨래를 할 때 양말 한 짝을 잃어버려서 애타고 있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주인이 찾아다 주었다. 정말이지 담요부터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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