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D+28

by 지안

9월을 마무리하고 10월의 첫날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숙소 한편에 있는 의자에 배낭과 등산 스틱, 등산화를 가지런히 놓고,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 조금씩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정류장에 도착해 티켓을 사고, 버스를 탔다. 자리를 찾아 앉는데 의자 등받이 조절하는 게 이상해서 고생을 했다.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겨우 정상적으로 고정을 시켰다. 조금만 더 말썽을 부렸다면 멀미가 나서 완전히 맛이 갈 뻔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곤 피곤했는지 곧바로 잠에 들었다가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깊게 잠든 덕에 정신이 개운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렸다. 길을 걸으며 종종 듣던 god의 ‘길’이 눈에 들어와서 바로 재생했다. 한 10초쯤 들었는데 정말 반사적으로 굵은 눈물이 맺혔다. 그동안의 모든 날들이 떠올랐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고생한 순간들 끝에 다다르고 있는 스스로에 뭉클했다. 잘 살아보고자 떠난 이 길.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의문 끝에 오른 순례길. 모든 가사,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을 다독였다. 이 길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전혀 모른 채, 멋모를 희망만 품고 떠난 이 길이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굵은 눈물이 한동안 하염없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와중에 친구와 지인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성당을 마주했다. 버스에서 너무 울어서 그런지 감정이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약간 짐작을 하긴 했다.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배낭에 기대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잠깐 멈춰 서서 그 풍경을,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가족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전했다. 뭔가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약간 멍청해진 상태로 예약해 둔 숙소에 가서 짐을 놓고, 다시 대성당으로 향해서 내부로 들어갔다. 미사를 하는 메인 공간은 보수 공사 중이어서 소음이 심했고, 어수선했다. 그래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 야보고의 무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인사를 드린 후, 기도를 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고, 부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큰 탈 없이 무사히 이 길을 걷고, 이곳에 도달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또 혼자서 이 길을 걸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고, 그동안 마주한 모든 인연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나는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숱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덕에 정신이 사나워져서 자리를 떴다.

원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진행되는데 공사 중이어서 다른 성당에서 진행한다는 안내를 받고, 그 성당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겨우 내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내 옆자리로 오더니 팔을 툭툭 치면서 더 옆으로 가라고 기분 나쁜 투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신경을 건들었다. 나는 이미 좁아서 더 이상 옆으로 갈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사람은 계속 인상을 쓰며 나를 압박했다. 그렇게 비집고 들어와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미사 직전에 기분이 무척 언짢았다. 그래도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미사를 했다. 미사가 시작되자마자 왜인지 피로가 극심하게 몰려와 잘 집중할 수 없었다. 초반엔 힘겨웠지만 끝자락에 빵 조각을 먹고 자리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다시 정신이 멀쩡해졌다. 이어서 순례자를 위한 기도와 말씀이 있었다. 잘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거의 느껴져서 또다시 울컥했다. 그렇게 미사가 끝이 났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도 전에 버스에서 너무 많이 울면서 감정을 소모해 버리는 바람에 막상 메인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때에 큰 감정적 요동이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순례길 처음에 접했던 순례자 사무소가 있었다. 순례자들이 순례자여권을 들고 그곳에 가면 무사히 순례길을 완주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종이 한 장 받는다고 뭔가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에 굳이 찾아가지 않고 지나쳤다.

숙소에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짐을 챙겨 개인 정비를 했다. 정말이지 순례길이 끝이 났어도 손빨래는 했어야 했기 때문에 몹시 귀찮고 싫었다. 증오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손빨래는 정말 싫다. 그 시대를 살지 않는 것에 무척 감사했다. 일상 자체가 노동이 된다는 사실은 정말 생각보다 지독할 것 같다. 힘든 빨래를 마치고, 간단하게 빵과 과일, 땅콩으로 점심을 때우고, 잠시 로비에서 쉬다가 외출을 했다. 생각보다 둘러볼 때가 적은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인 도로는 몹시 어지러웠다. 메인 상권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는 명동이랑 똑같았다. 비싸고, 사람 많은 것도 그렇고 분위기나 풍경도 같았다. 어지러운 곳을 벗어나니 곳곳에 브랜드 옷 가게가 있었다. 이제 순례길이 끝났으니 조금 멀쩡한, 걸인이 아니라 여행객 같은 옷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 쓱 훑어보았다. 당장에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순례길에서 상징적인 두 곳을 더 가야 해서 사지는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큰 마트에 들러 먹거리를 샀다. 발은 여전히 아팠다.

잠깐 쉬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외출을 했다. 사실 스페인 요리 같은 걸 먹고 싶었는데 관광지다 보니 가격대가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버거킹에 갔다. 역시 맛은 있었다. 가성비는 정말 최고이다. 막상 먹으니 만족스러워서 굳이 비싼 돈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성당 광장에 갔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광장 한편에 있는 작은 턱에 걸터앉아 잠시 머물렀다. 이 여유가 좋긴 했지만, 발은 여전히 아팠기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다.

숙소 마당에서도 노을이 보여 한가롭게 일몰을 보았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잘 준비를 마친 후,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공식적인 순례길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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