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묵시아와 피스테라에 들렀다. 묵시아는 스페인 서북부에 있는 해안마을이다.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야보고가 선교활동을 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또 2002년 유조선이 좌초되어 6만 톤이 넘는 기름이 유출돼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후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해안 끝 자락에 벼락 모양으로 두 동강 난 기념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바로 그 옆에 순례길 0KM 비석이 세워져 있다. 묵시아는 뭐랄까. 목포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같은 정겨운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오밀조밀 몰려있는 마을이 정감 있고, 밤이 되면 골목 사이사이 세워진 주황 전구가 감성을 덧칠했다. 숙소는 5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는데 옥상에 올라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쏟아져 내렸고, 아침이면 휘황 한 일출이 멋들어지게 보이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곧바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아담한 해안가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발장구를 치는 때가 아직도 선하고 나의 기분을 산뜻하게 해 준다. 하지만 발걸음을 약간 틀어 항구 쪽으로 가보면 겁이 날 정도로 파도가 억세게 치기도 한다.
이렇듯 소박하다 느껴지는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면 세상의 끝이라고 착각할 만한 해안 절벽이 있다. 바로 그곳에 0km 비석이 있고, 그 뒤편 언덕에 일몰이 환히 보이는 성당 하나가 있다. 나는 마침 미사가 진행되는 때에 그곳에 들렸기 때문에 미사를 참여했고, 성당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일몰 시간이 돼서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일몰을 감상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일몰을 바라봤다. 정말 하염없이 지긋이 바라봤다. 순례길을 걸으며, 어쩌면 살면서 그토록 정적으로 얌전히 노을을 바라본 때가 없었던 것 같다. 한동안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지만, 핸드폰을 금세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파도가 치는 해안가에서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작게 파도 소리가 들렸고, 간간히 우는 갈매기 소리가 이 넓은 공간에서 나는 소리의 전부였다. 어쩐지 그곳에 있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작은 말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워낙 생각이 많은 성향이라 그 조용함 속에서도 나의 뇌는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상황을 못 견뎌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렸는데, 어느 순간 모든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도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벅찬 감정이 차 올랐다. 눈물이 자연스레 흘렀다. 그 순간에 대해서 한동안 설명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때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순례길을 걸으면서, 살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과 생각, 깨달음, 경험을 비롯한 내 모든 것들이 한 데로 뭉쳐져서 ‘온전한 나’가 된 순간인 것 같다. 내가 순례길을 걸은 후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순례길을 걷기 전의 나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때 이후 나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져서 전에는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과 결정들을 자주 한다. 순례길을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여유 있어졌고, 순리라고 불리는 것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억지로 거스르려 하지 않으면서 나답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따라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순례길을 걸음으로써 얻은 배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100% 완벽하게 매 순간을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다만 삶이 그런 방향으로 완전히 틀어졌다는 의미다. 그것을 반증하는 것 중 하나가 주변에서 꽤나 자주 듣는 말인데 나에게서 뭔가 득도한 사람 같은 느낌이 풍긴다는 말이다. 순례길을 마치고 지금까지 꾸준히 그 말을 듣고 있다면 나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그 마음을 나름 잘 지키며 살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으로 피스테라에 갔다. 피스테라는 라틴어의 Finis(끝)과 Terrae(땅)이 합쳐진 말로 중세 시대부터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곳이다. 또 순교한 야보고의 유해를 나룻배에 실어 보내자 그 시신이 가 닿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약 3km 떨어진 곳이 바로 그 세상의 끝이다. 그곳에 작은 등대가 있고, 철탑 같은 게 있는데 예전에는 그곳에서 순례자들이 자신의 물품을 태워 기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전상의 의미로 태우는 건 금지가 되었고, 그 철탑 옆에 자신의 물품을 남겨두고 떠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동안 내 몸과 같았던 등산 스틱을 남겨두고 작별을 했다. 정말이지 마음이 짠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그곳을 찾아 만나자는 약속은 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허락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모든 시작은 끝과 이어져있다. 시작이 있으면 그 순간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그 순간 또 다른 시작이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에 서서 새로운 나를 기약하며 마음을 다잡고 피스테라와 순례길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시 말하지만 순례길을 걸음으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여유로워졌고, 인생을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겐 무척 큰 의미가 담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이 글을 최대한 잘 써보기 위해 몇 년간 고민했다. 한편으로는 순례길을 걸은 후부터 글을 힘겹게 마무리 짓는 기간 동안 그럼에도 일상이 버겁다 여겨질 때면 그순간마다 순례길을 붙들고 살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럼으로써 그 추억에 메이는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찬란하고 행복했던 경험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만큼의 기쁨은 없을 거라는 슬픔 속에 산 때도 종종 있었다. 이제 그 사실조차 깨달아 버렸으니 장장 4년 넘게 붙들고 고민한 이 글을 끝마치며 이제 순례길을 놓아주려 한다.
아마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지루함 만큼이나 이 글을 읽는 이 역시 똑같은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심심하게 전해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지는 이게 내 최선이니 말이다. 아주 운이 좋게 좋은 출판사나 편집자를 만나 이 글이 더욱 선명하고, 완전하게 다듬어지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용기를 얻었고, 이후에도 글을 쓸 동기를 얻었다. 초반에 한 말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나답게 살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굳이 순례길이 아니어도 나와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삶에서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