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너 요즘 sns 보면 진짜 행복해 보이더라 주말마다 여행 다니는 것 같던데?"
"야, 그건 sns잖아. 현실은 지옥 같아. 네가 육아를 안 해봐서 그래... 현실은 아예 딴판이야. 애는 계속 놀아달라고 칭얼대고 몇 시간 같이 놀았는데도 쌩쌩하고... 나도 좀 너같이 혼자 쉬고 싶다."
"아 그래...? 근데 사진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이던데? 너 또 엄살 부리는 거지."
"아니, 그럼 남들 다보는 sns에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거리고 우는 사진 올릴까? 어차피 sns는 다 가짜야. 누가 누가 더 행복한가 보여주기 경쟁같댈까? 가끔 아무 생각 없이 SNS로 남들은 어떻게 사나 좀 보고 있으면 나만 이렇게 불행한가 싶어. 나만 살기 힘드냐?"
"......."
언제부턴지 모르게 '행복'은 성공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취해야 할 수많은 목표(goal) 리스트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다. 사람들은 행복하면 인생을 잘 살고 있고, 행복하지 않으면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실제로 행복하지 않아도 sns에서는 서로 행복한 모습만 보여준다. '잘 못 살고 있다'란 평가받고 싶진 않을 거니까.
꽃길만 걸으세요! 행복한 일만 있으세요!
나는 안부 인사 끝에 빈말같이 쓰는 이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인사들은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만든다. 행복은 좋은 거, 불행은 나쁜 거니까 행복만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행복감이 아닌 불행감을 느낄 땐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당신이 신이라고 해도 행복감만 느끼며 살 순 없다.
행복만 경험하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불행이 존재한다. 쓴 맛을 모르는 사람은 단 맛이 달다는 걸 알 수 없다. 사람은 불행한 일을 경험할 때 자기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자아 성찰을 시작한다. 불행은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불행은 우리를 너무도 불편하게 만들어서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고 막힌 것을 풀 수 있게 밀어붙인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인지력(Self-awareness)이 높아진다. 나에 대해 더 잘 알면 알 수록 나답게, 남과 비교하지 않고 평온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데 불행감을 느낄 때 우리는 불행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밀어내고 저항한다. 안타깝게도 무언가가 너무 싫어서 밀어내고 저항하면 그런 일들은 더욱 일어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밀어내고 저항할 땐 무언가를 원할 때 쏟는 에너지와 똑같은 양의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이 모이는 곳으로 에너지도 흐른다. 'Where Attention goes, Energy flows.'
또한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고 믿는 무언가를 너무 간절하게 원할 때도 그것을 갖게 될 확률은 떨어진다. 결핍감은 결핌감을 부르고 풍요는 풍요를 부르기 때문에 이 애타는 간절함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무엇일까?
행복하길 포기해라.
이게 무슨 소리냐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도 있는데!?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꾸준히 행복을 추구해야 결국 행복이 오게 될 거라 믿고 살고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길 바란다.
행복하길 포기하면 행복감을 느끼기 더 수월해진다. 이 말을 행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행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고통과 불행에 대한 저항감도 함께 사라진다. 저항하지 않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훨씬 쉽게 일어난다. '저항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뭔가를 너무 간절히 원할 때는 이루어지지 않다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자마자 바라던 일이 일어난 경험, 해본 적 있는가? 예를 들면 이런 거지.
애타게 붙길 바라며 시험공부할 때는 연속으로 떨어지다가, 다 내려놓고 포기하니까 합격했다던가
애타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할 때는 못 만나다가, 다 내려놓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던가
애타게 승진하고 싶어서 뭐든 다 할 때는 안되다가, 다 내려놓고 포기하니까 승진을 했다던가
애타게 낫고 싶어 몸에 좋다는 건 다해봐도 안 낫다가, 다 내려놓고 받아들이니까 병이 낫는다던가
애타게 아이가 갇고 싶어 온갖 노력을 다해봐도 임신이 안 됐는데 다 내려놓고 포기하니 생긴다던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가지고 '신의 장난'이라 표현하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라 에너지가 흐르는 법칙이다. 원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원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저항감도 함께 사라지는데 이때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게 되는 것뿐이다. '될 일은 된다'라는 말은 여기서 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 겪고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는 생각으로 고통받는다. 이 생각을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면 바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어떤 일도 잘못된 일은 없다. 당신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속담이 잘 설명해주지 않는가? 일어난 일에 대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논쟁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결핍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행복을 느낄 순 없다.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 원하는 일만 겪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개인의 에너지 주파수와 공명하는 일들이다. 주변에 좋은 일들을 더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가? 그 사람들이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들일까? 그들은 높은 에너지 주파수를 내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부정적인 일을 하나도 겪지 않도록 자신의 주파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행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시작하자.
일상에서 마인드풀 하게 지내는 것은 행복감을 자주 느끼게 하는 가장 기초 습관이다.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행위는 우리의 기분을 업시켜주는데, 현존할 때 우리 에너지 주파수도 함께 올라가고 저항감은 완화된다. 저항감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당신이 싫어하는 일들을 덜 경험하게 된다. 와닿지 않는다고?
브루스 립튼 박사의 '허니문 이펙트(honeymoon effect)'는 현존의 힘을 잘 설명한다.
사랑에 푹 빠진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초기 3~6개월 동안 극도의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극도의 행복감은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이 함께할 때 완전히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숨소리, 눈동자 색깔, 목소리 톤, 스치는 향기, 손을 잡았을 때 촉감,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느낌... '좋아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다. 결국 함께함으로써 매 순간 현존하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원리를 적용해서 매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면 우리는 행복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두 번째, 행복이란 거창한 목표보다 이루기 쉬운 목표를 설정하자.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행복에 대한 결핍감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반대로 행복을 목표로 삼지 않았을 때 비로소 행복에 대한 결핍감이 사라진다. 우리 누구나 언제든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더 성취하기 쉽다고 믿을 만한 목표(small wins)를 세우는 것이 좋다. 성취하기 쉽다고 믿을만한 작은 목표들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간다는 목표보다는 시간을 잘게 부수어서 매일 작은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자.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이루기 쉬운 목표를 성취하는 경험들이 쌓이면 지금 바로 행복을 느낄 수 믿다고 믿게 된다.
하루 한 번은 꼭 나를 많이 웃게 만드는 사람과 대화한다.
하루에 세 번은 반려동물과 교감하며 만족스러운 순간을 갖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좋아하는 꽃이나 화분을 사서 예쁘게 테이블에 둔다.
하루 30분씩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어서 얻는 인사이트를 기록한다.
매일 15분씩 좋아하는 곡을 연습해서 전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는 성취감을 느낀다.
세 번째, 행복감보다 안도감을 주는 선택을 하자.
이것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현재 나에게 더 기분 좋은 쪽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며 모든 순간에 더 기분 좋은 것과 기분 나쁜 것 중 한 가지를 택할 수 있다. 선택에 앞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내가 하는 생각은 내 기분을 좋게 하는가, 나쁘게 하는가? 내가 하는 말은 기분을 좋게 하는가 나쁘게 하는가?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내 기분이 좋게 하는가 나쁘게 하는가?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더 좋은 느낌을 들게 하는 쪽으로 선택하기 시작해라.
감정은 나를 나답게 살 수 있게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기분 좋은 선택을 하면 안도감을 느끼지만, 기분 나쁜 선택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분 좋은 선택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를 수 있고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안도감을 반복해서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행복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지만 우리가 그 생각을 믿기 전까지는 고통받을 수 없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을 믿는 행위를 멈출 수 있을 때, 그 생각들이 우리가 느끼는 방식을 통제할 힘도 잃게 된다. 생각에 지배받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자. 행복에 대한 집착과 노력들은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은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해 주면 항상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본질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길 포기했다.
대신에 매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서, 조금 더 기분 좋은 선택을 하는 나를 지켜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