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링씨티 Jun 30. 2023

매번 비슷한 사람만 만나고 헤어질 때

끌린다고 다 사랑은 아니야

"하... 나는 우유부단한 남자들 정말 질렸거든?

이번에는 아닐 거 같아서 좀 만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또 우유부단하게 구는 거 있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간 있었던 연애사를 풀면서 하소연을 했다.


"아이고... 속상하겠네. 근데 너는 우유부단한 남자가 왜 싫어?"

"음...? 아니 우유부단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흠... 우유부단한 게 매력적일 순 없겠지만, 나한테 그게 결격사유는 아닐 것 같아."

"그래? 그럼 너한테 결격사유는 뭔데?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회피형 남자 마그네틱이었거든?

아니 신기한 게 끌려서 만나보면 어떤 식이든 회피형인거야 우쒸ㅋㅋㅋ 진짜 짜증 났어.

회피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더라고... 근데 피가 바짝바짝 마르게 힘들어보니까 이제 좀 알겠어."

"뭐를 알게 됐는데?"


우리는 왜 계속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림을 느낄까?


 

나는 여성스러운 사람이/남자다운 사람이 좋아.
나는 섬세한 사람/터프한 사람이 좋아.
나는 진중한 사람/유머러스한 사람이 좋아.
나는 활동적인 사람/정적인 사람이 좋아.
나는 자유로운 사람/안정적인 사람이 좋아.


원하는 이성을 만나는 데는 각자 원하는 취향이 있다. 이 취향이라는 거,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을 자기가 믿는 '취향'에 부합하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무언가가 좋아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무언가가 싫어지는 데도 이유가 있다.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반복되어 쌓이면 우리의 취향이 된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최악의 이성상'만 계속 끌여당기고 만나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면?

그 피폐함의 늪에 빠져봤던 한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절대 아니다.


엄청난 끌림 뒤에는 엄청난 행복과 동시에 엄청난 고통까지 세트로 가져다줄 수 있는 위력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이성을 끌어당기는 원리를 이해하고 지옥 같은 패턴을 깨고 싶다면 먼저 '끌림과 사랑'을 확실히 구분해서 알아야 한다.


당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대부분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은 끌림과 사랑을 같은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끌림은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한 걸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진다.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걸 가진 상대방과 함께함으로써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미친 듯이 끌리는 것이다. 그게 재력이든, 인기든, 명성이든, 안정감이든, 유머감각이든 뭐든 간에.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끌림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행위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원하고 필요한 걸 채우는 행위일 뿐이다. 끌림은 누군가를 만나는 시작점에서 결정을 더 쉽게 해주곤 한다.


끌림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예시는 이렇다.


한 여자가 부유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만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곁에 있을 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으며 자존감과 신분까지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재정적 안전,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였다. 하지만 부유했던 그가 무일푼이 됐을 때를 상상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그와 함께하고 싶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와 헤어졌다.


이 외에도 상대방의 외모에 끌려서 만났다가 외모가 변하면 마음이 시들해지고 다른 사람이 바로 눈이 돌아가는 것도 오직 끌림에 의한 만남이다. 이런 만남에 사랑 같은 건 없다. 오직 욕망에 의한 끌림뿐이다. 가지지 못한 것들을 욕망하는 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원하는 것만 생각해서 섣불리 깊은 관계를 맺었다가는 다른 중요한 걸 잃을 수도 있다.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원샷하면 더욱더 목이 마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내 일부로 받아들이는 의식적인 선택이다.


내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파하면 나도 아프고 슬퍼하면 나도 슬프다.

내 일부로 여기지만 상대방에게 집착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소유하려 들지 않고 자유를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의 예시는 이렇다.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연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는 연인.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었지만 서로의 곁을 지키고 응원해 주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연인.


상대방을 내 일부로 여길 만큼 사랑한다면 힘든 상황에서 상대방을 떠날 생각 같은 건 애초에 옵션에 없다. 정말 사랑한다면 오히려 힘든 상황에서 사랑의 힘이 더 발휘된다.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역경을 같이 이겨낸 커플만이 진정한 사랑이란 말은 아니다. 드라마틱한 상황은 알아차리기 쉬운 테스트가 될 뿐이다. 묵묵하게 서로의 곁에 지키면서 서로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사랑도 마찬가지로 숭고하고 아름답다.


본인만큼 또는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할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많은 사람들이 끌림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때,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다 느끼는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역으로 사람들은 끌림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환상을 투영시켜 버리는 걸 좋아한다. 할리우드 영화와 동화 같은 드라마는 현대 사회의 데이트 시장(?)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스스로의 환상에 상대방을 끼워 맞춰 상상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진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한다. 애초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좋아한 자신을 망각한 체.


만약 계속해서 비슷한 연인을 만나서 힘든 관계를 반복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이런 사람들에게 끌릴까? 내게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끌림은 사람들의 삶의 일부이다. 끌림을 막을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끌림에서 시작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끌림에서 시작했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끌림이 어디에서 오고 왜 그렇게 끌리는 지를 아는 것이다. 채워지지 못한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들여다보면 끌림을 이해하게 된다.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본인을 위해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알게 된다. 어떤 이유든 스스로를 우선순위에 두는 선택을 하길 빈다. Choose yourself!




이전 09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상처 받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