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믿는다는 건
"나 지금은 최대한 경험 많이 쌓고 책도 많이 읽고 하면서 공부하고 있어. 서울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엔 다른 나라로 출장도 가고 또 쌓고 나누고 하다 보면 뭘 더 공부해야 할지 확실해질 거 같아. 그게 뭐든, 배우게 될 곳이 베를린이든 하와이든 어디든 나가서 힐링 공부할 거야. 나이가 50이든 60이든 상관없을 거 같아. 이쪽 일은 뭘 해도 재밌네."
"응, 넌 정말 그렇게 될 거 같아 하나야. 내가 네 걱정은 안 해."
"네, 선생님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으실 거 같은데요, 너무 잘 어울려요."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구체적으로 잘 말하고 다니는 편이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러다 가끔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들이 내 꿈에 대해 나보다 더 확신에 차서 동의해주면 불끈 힘이 남과 동시에 집에 와서 내 속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했다. 왜냐면 사실
나는 상대방이 나를 믿는 것보다 내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코칭해 주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지금의 일을 막 시작했을 때, 가끔씩 이 일을 포기해야 하나 할 정도로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치유자로서 내 자질에 의문을 품는 어두운 내면의 소리가 나를 채찍질했다. '나는 누군가를 치유해 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마음속 저 깊숙이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온갖 의심들이 나를 괴롭혔다.
'네가 뭐라고 남을 도와줄 수 있다 생각해?'
'한 두 케이스 좋아졌다고 모든 케이스들도 다 잘할 것 같아? 나대지 말고 조용히 지내!'
'가뜩이나 힘들어서 찾아온 사람들인데 위로한답시고 상처 주면 안 돼.'
어느 날엔 한 회원이 던진 뽀죡한 말에 멘탈이 한순간에 무너져서 폰 부스에 숨어 눈물샘을 터트린 적도 있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힘들어져 외부의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예민해질 수 있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이 부분은 감당해 내는 건 내 역량이다. 가끔 상담을 하다가 내담자의 '감정적 전이'를 겪어내는 경우가 있다. 감정적 전이란 내담자가 과거 상황에 느꼈던 감정이나 무의식에 묻힌 감정들을 현재 다른 사람에게 다시 체험하는 것인데 흔한 예로 부모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상담자에게 투사해서 재체험한다.
처음 겪어내는 상황들이 익숙하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자책했다.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이 습관 때문에 힘들었다. 나는 평소 하나의 바위 같다고 느꼈던 내 뭉툭한 성향이 사람들의 예민함을 모두 감싸 안을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됐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나도 사람이니 실수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가 나를 믿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나는 나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나에 대해 온전히 알고 내 재능을 발휘하는 짧은 여정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난 몇 년간 나를 찾고, 닦고, 돌보고 키우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세상 유일하고 아름다운 나라는 꽃을 피워보겠다고 내 화분에 공들여 사랑을 주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그런데 나 온전히 알아가는 내면 작업(shadow work)은 쉽지가 않다. 솔직히 하나도 재미없다. 가끔 힘들어서 나자빠지고 꼬꾸라지지만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나를 마주한다.
가끔 '뭐, 이런 모습이 나라고?' 인정하기 싫어서 밀쳐내고 도망갔다가도... 결국엔 다시 돌아와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이 짓거리를 수십 차례 반복하고 있다. 산산조각이 났던 나를 재통합시키는 내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다행히도 요즘의 나는 휘청거리던 몇 년 전의 나보다는 단단해졌다. 이 내면의 작업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능력 재능을 발견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나만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내가 나를 조금씩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내면 치유 작업(shadow work)에 진심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성숙한 만큼, 내가 통합된 만큼 딱 그만큼의 에너지 레벨에 맞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선 어둠 속으로 성큼 손을 뻗을 수 있어야 한다.
빛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먼저 나를 치유하는 중이다.
평생에 걸쳐 끝나지 않을지라도 계속해보려 한다. 참 재밌는 건 나는 딱 내 에너지 수준에서 도울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오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주가 어떻게 알고는 기가 막히게 딱 내 도움이 필요한 회원들을 내 앞에 데려다준다. 그 어떤 강력한 알고리즘도 이렇게까지 딱 맞는 매치는 못해줄 것 같다. 내가 내면 작업을 통해 성숙해지는 만큼 딱 그만큼의 깊이에 맞춘 케이스들을 내게 오고 있는 느낌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나를 찾아온 우리 회원들은 어떡해서든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치유 작업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을 믿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 하지만 앞으로 스스로를 더 믿고 의지하고 싶다면 시간을 내서 '나에 대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 리스트부터 적어 내려가보자. 쉬운 예를 들면 이러하다.
'나는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야. 나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해'
'나는 시간 약속만큼은 철저하게 지켜.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현의 일부야.'
'나는 다른 걸 몰라도 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나라는 사람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게 하고, 인정받게 하고, 성공시키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면 세상도 당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었던 시절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면당했다.
내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믿기 시작하자 내게 사랑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시절에 나는 바라는 것들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실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원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내가 나를 믿는 만큼의 경험을 하고 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어떠한 경험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자.
인정받고 싶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자.
함께하고 싶다면 함께할 수 있다고 믿자.
부유해지고 싶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자.
원하는 게 무엇이든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고, 무언가 되고 싶다면 될 수 있다고 믿자.
참 간단하게 보이지만 말이 쉽지. 일 평생 스스로를 의심해 온 사람들에게 정반대의 믿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작업인지 잘 안다. 지금도 여전히 아주 가끔씩 휘청일 것 같은 나에게 말해준다.
넌 네가 꿈꾸는 사람이라고.
그럴 수 있고, 그러고 있고, 그렇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