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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Aug 13. 2021

독일 노인들, 책 대신 스마트폰 들다

노년층 디지털계몽 어려울까?

 1440년, 독일 마인츠에 사는 금 세공업자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의 발명으로 지식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이룩한 인쇄술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첫발이었다. 이는 이후 일어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상은 한 번쯤 충격적 사건과 함께 문화 패러다움의 변화를 경험한다.

20세기 이후의 키워드는 단연 멀티미디어다. 종이문화의 근간이 된 아날로그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로의 변신이 바로 그것. 어쩌면 디지털은 거부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공존모드다. 우리 사회에 디지털의 영토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제 편리의 대명사처럼 소통의 안방을 차지한다.


지난해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재택근무는 기본이고, 화상회의로 중요한 사안이 결정되고 있다. 비대면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의뭉스러웠지만 그 것 또한 지나갔다. 이제는 디지털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이 안될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미처 발을 맞추지 못하는 계층도 있다. 바로 노년층이다. 물론 독일사회는 더더욱 느림의 미학이 존재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철학과 견고함이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시대는 이제 변화를 요구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최근 독일남부지역의 집중 폭우는 거주주민들의 오랜 편안함을 단번에 파괴시켰다. 수십년 견고하다 자부했던 전기시설과 건축물들은 낙후된 탓에 천재지변 앞에 무참히 쓰러졌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오랜 역사의 잔존물들은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은 더 빨리 변화를 요구했다. 변화에 발맞추지 않으면 퇴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100년을 잘 지내왔던 시설도 이젠 빠르고 발전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게 맞았다.


 5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란 광경은 다름 아닌 지하철 안의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주시하고 있었다. 함께 동행한 사람과의 대화는 거의 없었고, 기계 안에서 먼 누군가와 나름의 소통을 하고 있는 . 가까운 사람 보다 먼 누군가가 더 친근해진 것이다. 독일에 다시 돌아와 지하철에서 한국과 다른 모습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었다. 당히 대부분 독일인들은 여전히 책과 신문을 읽으며 지하철 이동기간을 즐기고 있었다. 내면에서 ‘아, 역시 독일은 그래도 지고지순함이  있구나’라고 안위했다. 하지만 불과 2-3년이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지금은 독일 대중교통에서 한국과 똑같은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때서야 느꼈다. 독일이 문화선진국이거나 특별해서 책을 본 게 아니고 단지 핸드폰 세상을 모를 뿐이었다. 디지털 문맹국이기에 아날로그에 그대로 젖어있다는 것 뿐. 다시 말해 단지 디지털이 보편화되지 않은 탓에 핸드폰을 보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요즘은 독일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인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일반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강행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교들은 시스템의 마비가 왔다. 독일 정부에서 그제서야 디지털 교육 시스템 구축에 55만 유로의 예산을 투여했다. 

일반 대중들의 디지털화를 유도하기 위해 국가 예산 투자는 더욱 늘어났다. 글로벌한 사회 속에서 배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겨운 노력에도 디지털에 더딘 이들은 역시 노년층이다. 종종 은행의 자동화기기에서 더듬더듬 지로용지를 들고 송금 등 일처리를 하는 이들. 이미 은행계에 온라인 송금과 온라인 쇼핑이 대세지만 그 틈새에서 여전히 부적응자처럼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해온 습관대로 아날로그식을 선호한다.

근래 들어 디지털 소외를 더욱 극대화한 것은 스마트폰의 보급이다. 노년층에게, 스마트폰은 보유 여부를 떠나 활용 능력의 난제로 다가온다. 이제는 디지털 문맹이라는 말까지 통용된다. 가까스로 카톡과 페이스북을 맛본 노년층은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의 도입에 따라 빠르게 진화하는 또 다른 신기술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는 사이 기술은 또 소리 없이 진보한다.


 나의 경우, 10년 전 일곱 살, 열 살 어린 딸들에게 바비영화를 비디오 테입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 곧바로 CD와 DVD의 보급이 이어졌고, 이제는 그것마저 오래된 퇴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USB의 활용을 넘어 홀로그램의 시대까지 열리고 있다. AI가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인간 영혼의 가장 내면적인 지점까지 디지털 영혼이 장악할 그때가 도래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노년층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크다. 코로나로 닫힌 세상이 된 요즘, 상실감까지 가중된다. 대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루 종일 집에 홀로 있는 노년은 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치매나 우울증에 걸린 어르신의 경우 그 증상이 더해질 수 있다. 홀로 계시는 어르신을 자주 방문해야겠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는 오히려 민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독일정부와 사회의  노년층을 위한 디지털 사용 교육 등이 조금은 고맙다.

디지털 소외가 아닌 디지털 공감노력은 앞으로 노령화 사회 진입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세상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우리의 숙제다.


 멈추어 서있으면 도태될 것 같은 위기의 세상이다. 속도가 대세인 디지털 사회에서 잘 적응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달리는 디지털 기차를 따라잡기에는 두 다리의 힘이 역부족이다. 나 또한 자꾸만 세월의 나이테 핑계만 대는 걸 보면  마음의 나이도 늙고 있다는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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