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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Aug 24. 2021

나도 이런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노인의 성과 사회적 의미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두어 해를 보낸 어머니는 일상을 바쁨으로 채웠나갔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을 일이나 관계의 혹사 속에 내맡긴 듯 했다. 워낙 부지런한 성품 탓이기도 하지만 홀로 남겨진 시간에 대한 두려움 탓도 커보였다. 


가끔 어머니의 안부가 걱정되어 070 국제전화를 걸 때가 있다. 디지털 강세인 우리나라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폴더폰을 쓴다. 카카오톡에서도 안부를 묻고 싶지만 인터넷은 어머니에겐 요원하다. 외국에 살고 있는 터라 시차 때문에 그나마 시간을 맞춘 것인데 기대와는 달리 전화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집 앞에 있는 밭의 잡초를 제거한다거나, 수확물을 거두고 팔아도 손에 몇 푼 남지도 않는 참나물 재배를 한다. 그나마 쉬는 날에는 마을회관에 가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과 소일하는 것도 일이다.


 칠십 남짓에 홀로 된 어머니에게도 혹시나 남자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 언젠가 농담삼아 물어본 적 있다,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벌개지며 ‘무슨 송장 치를 일 있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처녀 적 시절에 자신을 좋아해준 청년의 이야기를 슬며시 꺼낸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한 번도 이야기 한 적 없었던 스토리였다. 이제 배우자의 사별과 함께 도덕적 울타리도 느슨해진 것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다는 그 청년은 동네에서 가장 똑똑했단다. 듣도 보도 못한 외국시인의 멋진 시를 낭송하고 책을 즐겨 읽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그에게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청년에겐 조신하고 콧대 높은 양반집 처녀로 비쳐졌을 터.

언젠가 어머니는 전라도의 어느 섬에서 교회 전도사 생활을 하는 이모집에 가 몇 달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청년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그곳 섬 선착장에 몇 월 몇 시에 있을테니 나와 달라’고 했단다. 그것은 일종의 프로포즈였다. 아마도 마음 속에 품은 결심을 실행하고 싶었던 젊은이의 열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또한 그 청년이 싫지 않았기에 마음은 선착장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처녀가 남자를 만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특히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외할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해서도 안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선착장에 나가지 못했고 언덕 위 먼 발치에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그 길로 상처를 받아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갔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후 언젠가 어머니는 노인이 된 그 청년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젊잖게 늙은 초로의 신사는 나이가 들었어도 지적이고 중후했다. 어느 대학에 교수로 정년퇴직했다고 소문으도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시골에서 초라하게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풋풋하고 어여쁜 과거의 그녀로 남고 싶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 끝에 ‘아마도 그분을 다시는 못 만날 거’라고 말했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사랑에 있어서 감성을 간직한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었다. 어머니는 청춘의 때를 고이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호흡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 가슴 가득 쌓여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도 아름다웠던 청춘이 있었고,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 심장이 있었다.

우리 모두도 그 시절을 지나왔고 지나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노인 인구가 늘어나며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노인의 성문제 만큼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남은 생에 대한 외로움이나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행복 추구권에 대해 자녀들은 관심조차 없다. 노인은 노인이니까 욕망이 없다고 배제해 버린다. 노인은 인생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으니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고 부추긴다. 


 내가 일하는 독일 양로원에 있는 슈미트 여사와 헤어푸르트 씨. 그들은 연인 사이다. 난 처음에 두 분이 부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이 달랐다. 보통 독일에서는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 성을 따라간다. 물론 사실혼 관계일 수도 있다. 슈미트 할머니와 헤어푸르트 할아버지는 누가봐도 양로원의 잉꼬부부 같았다. 슈미트 할머니는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란 모습이 귀여운 고양이상이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고 젊은 시절에 꽤나 인기가 많았을 법하다. 허리가 약간 굽어진 것 외에는 특별히 건강에 문제도 없었다. 늘 곱게 화장을 하고 스커트와 자켓을 걸치고 다녔다. 옷 색깔은 늘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원색을 입고 잘 다려져 있었다.

헤어푸르트 할아버지는 성격이 좋다. K양로원의 신사,라고 별칭까지 붙었다. 슈미트 할머니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허허 웃으며 받아준다.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양로원에서 새로운 청춘과 인연을 만들어가는구나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 이후 오후 3시경이면 커피와 케잌 시간이다.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슈미트 할머니가 헤어푸르트 할아버지 방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소탁자를 사이에 두고 커피와 케잌을 마주한 채 소곤소곤 담소를 나눈다.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 이야기와 서로의 사랑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매일 해도 지루하지 않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슈미트 할머니의 눈에 누가봐도 꿀이 뚝뚝 떨어진다. 할아버지 바지에 먼지라도 끼어 있으면 털어내어주고 와이셔츠 컬러를 펴주며 옷매무새를 다듬어준다. 헤어푸르트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에게 몸을 맡기며 마냥 행복한지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작고 귀여운 슈미트 할머니의 이마에 입술을 갖다댄다.

햇살 따사로운 양로원 옆 공원 산책길을 걸으며 호젓한 모퉁이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모습을 종종 본다. 외로움에 사무쳐 시들어가는 서로의 인생에 활기가 느껴지고 다시 시작되는 인생 같아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어르신들의 의기소침의 근원에는 성적 에너지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마음 속에 이성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근원적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 사람들은 모든 게 퇴색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본능은 젊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인에게도 에로스가 있고, 열정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물론 육신이 쇠약해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에게는 생의 욕구가 꿈틀거린다. 


두 분의 남은 여생은 서로에게 부족한 에너지를 전해주며 나이듦의 향기를 풍긴다. 모든 게 심드렁해져 삶의 마지막만 바라보는 노년보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내일은 헤어푸르트 할아버지의 생일이다. 선물을 준비하며 입술에 ‘쉿’ 비밀이라며 생일선물을 준비하는 슈미트 할머니. 그녀의 얼굴은 은빛의 행복이 가득하다. 저물녘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럼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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