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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Sep 08. 2021

자살 자기 방조

살아 있는 것의 가벼움

 


맹추위에도 천성적으로 몸에 열이 많은 나는 얇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침대 모서리 옆에는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겉옷과 속옷들이 뒤엉켜 있었다. 천장 모서리에는 오랜 동안 털어내지 못한 거미줄이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참 피곤했다. 며칠 전에 생을 마감한 노인의 얼굴이 오늘 하루 네 번이나 생각이 났다. 나에게 거친 욕을 해댔던, 늙은 카프카 라는 별명을 가진 그리스계 독일인이었다. 그는 그저 삶을 놓고 싶어했다. 누군가 하루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처절하게 부정했다. 늙은 카프카는 그에게 다가올 선물을 역성을 내며 밀어냈다가도 두려움 때문에 몸서리쳤다. 삶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집착일 수 있고 부러움이 질투가 된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는 깊은 피로감에 고통도 하찮은 것이 된다. 하지만 의식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치열한 고통의 현실에 머물게 된다. 살아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에겐 귀찮은 정물에 불과했다. 육체의 질병을 부인하기 위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느껴졌다. 나도 살아야 했으니 굳이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해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다음 날, 그의 병실을 들어섰을 때였다. 가래가 잔뜩 낀 그의 목소리였다.


 - 커튼을 누가 열어놨어? 그러니까 자꾸만 악마가 들어오지!


병실의 커튼은 태양 한 줌도 용납하지 않을 태세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굳게 다문 여자의 입술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창문에서 무언가 본 듯 했다. 그의 눈에는 커튼이 활짝 열려진 상태로 누군가 꾸역꾸역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생의 마지막에 마중 온 누군가처럼.

 어느 날 늙은 카프카는, 다시 오지 못할 먼 세상으로 갔다. 우리 동료들은 더이상 욕을 듣지 않아도 되어서 홀가분해진 것 같다고 뒤에서 소근거렸다. 그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랜 동안 입어온 옷처럼 헐겁고 낯익었다.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죽음과 맞닥뜨리는 게 양로원의 일상이다.


#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제 칠십의 중반을 넘어버린 그녀의 어깨는 세월의 더께로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녀의 어린시절.


그녀의 어머니는 늘 아팠다. 죽기 전까지도 피를 토했다. 전쟁 후 60년대는 폐결핵에 걸리면 죽음을 향한 직행버스였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아픈 어머니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말이다. 긴 병에 효자 없었다.

 그날은 어머니가 물을 찾았다. 방구석에 작은 주전자와 물이 담긴 컵이 있었다. 낮이었는데 밤처럼 어두웠다. 어머니가 손을 뻗어 물 컵을 잡았다.


 - 물 좀! 물!


그녀는 어머니가 잡으려 애쓴 물컵을 집어들었다. 단지 건네주려고 한 것 뿐이었다. 그때였다. 물컵이 그녀의 손을 스르르 빠져나가 어머니의 품 속에 떨어졌다. 컵 속의 물은 어머니 품 속에서 산산히 부서졌다. 잠깐 어머니의 애처로운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날 어머니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눈을 뜬 채 마지막 남은 호흡을 ‘후’ 하고 내쉬었다. 마지막 어머니의 눈은 무서웠다. 그녀는, 자신이 물컵을 떨어뜨려서 어머니가 화가 나 죽은 것 같다고 인생 내내 생각했다. 문득 삶을 치열하게 살다가도 어머니의 매서운 눈빛이 떠올랐다. 가족 중 유일하게 어머니의 마지막을 본 어린 그녀에게, 아버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숨죽이며 어머니의 시신을 치웠고, 일상은 여느 날과 다름 없었다. 그때 그녀는 묘한 안도감에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나마 그녀에게도 죄의식이 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떠난 지 5년 후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농약까지 들이켰다. 그때, 농약이 아버지만의 술 해장방법인 줄 알았다. 자신도 나중에 술을 먹으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까지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일곱이나 줄줄 달린 자식 탓,이라고 혀를 쯧쯧거렸다. 삶은 놓기에 너무 가벼웠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큰 딸이었던 그녀는 부담감과 죄의식을 할당받았다. 누군가는 제물이 되어야 했다. 부모님이 남겨놓은 것은 동생들 여섯이었다. 삶은 가벼웠지만 부담감은 무거웠다.

그즈음 많은 젊은 여자들이 독일에 간호사로 갔다. 가난한 여자들이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돈에 대한 욕구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 두려움 없이 인생이 말 걸어오는 기회들을 잡아야했다. 자신은 비겁하게 그렇게 고국을 떠났다고 회고했다.

독일에서의 삶은 무언가를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여러 개의, 모양이 다른 사랑 같은 형체가 회오리처럼 왔다가 지나갔다. 검은 피부의 사내들도, 지중해에서 온 돈 많은 노인네도, 갓 유학 온 풋내기 학생까지…….

70년대는 독일에서 68혁명이 막 끝난 때였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다’라는 문구가 온 사방에 플래카드처럼 나뒹굴었다. 자유와 해방의 물결이 젊은이들의 심장을 마구 내리쳤다. 그녀도 그들의 물살에 함몰되었다. 사랑했고, 이별했고, 미워했고, 증오했고 급기야 삶을 놓고 싶어했다. 진심을 가장한 가짜 사랑도, 남자생물들의 짐승적인 본능도 그녀에겐 처절한 생존의 일환일 뿐이었다.

 병원 근무 후 집에 들어온 그녀는,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늘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 그냥 그렇게 하라니까. 쳐! 그냥 마구 내리치라구!


누군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커튼 사이로 빛줄기 하나가 새어들었다. 잽싸게 커튼을 치고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분명 몽환의 상태는 아니었다. 며칠 전에 돼지고기를 자르려고 구입한 날카로운 칼을 집어들었다. 그건 그녀를 구원해줄 선물일 것이다.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고 더 세차게 내리쳤다.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다 이루었다. 휴!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이루었다. 무엇을?

창문밖 빛 사이로 희미한 소리가 났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그녀의 잘려진 팔을 잡고 울고 있었다.


 - 딸아!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까지 너는 죽지 않는단다. 죽는 것은 때가 있어.

 - 엄마 미안해요. 그때 내가 물을 엎지르지만 않았으면…….

 - 그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네가 곁에 있어서 엄마는 좋았어.


어머니는 결코 어린 날의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팔을 안고 능숙한 의사처럼 재빨리 끊어진 팔을 잇고 있었다. 비스듬이 보이는 창문 틈으로, 태양 속에서 빛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


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개를 들었을 때 창문 밖의 태양이 커튼을 뚫고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더 굳게굳게 커튼을 닫았다. 그 사이로 조그마한 빛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목격자처럼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오늘은 잠을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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