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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Sep 24. 2021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다

또 한 별이 지다


 고향이 자주 그리우면 필시 마음이 고단한 것이라 했는데 요즘 와 자주 옛것을 추억한다.

기억을 거슬러 오랜 유년의 강을 따라가고 시골 마을에 성글게 익었던 꿈들도 더듬는다. 그때는 구멍가게도 여러 개 되고, 정미소도 있던 분주했던 마을은 이제 인적 드문 산골의 모양새다. 일요일 아침이면 반강제적으로 새마을 운동 노래를 벗삼아 빗자루를 들고 동네 어귀를 쓸었던 그 수많은 아이들은 이제 중년의 고개를 넘어섰다.

이제 고향은 누군가 가끔 찾아가 드론으로 상공에서 내려다본 영상 속의 장소로 남아 있다. 머리에 하나둘 흰서리가 내린 중년의 동창들이 벌초를 위해 잠시 들른 의식의 장소다.

멱을 감다 벌러덩 논두렁에 드러눕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랫도리 훌러덩 벗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개울가에 첨벙대던 조무래기들은 어디에 갔을까? 개울가 너머로 흐드러진 늙은 수양버들이 뿌리를 지킨 채 그저 보고싶은 이들을 기다릴 뿐이다. 아이들과 늘상 하던 땅따먹기와 코스모스 길가를 휘몰아치며 달리던 유년의 기억은 지나간 버스처럼 허망하다.      

 어느 날, 내 나이를 한탄하며 이야기하는데 양로원의 팔십의 노인이 한 마디 거든다.


 “아이고 가장 좋은 때야! 나도 당신 같이 젊을 때가 있었지.”


시간은 누구나에게 상대적으로 다가온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자신의 셈의 가치로 세월을 세어나간다. 내 스스로 시간의 유한성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을 반추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나의 시간은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때인 것이다.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가끔 눈먼 자들 속에 나 혼자 눈 떠 있는 듯한 외로움 혹은 눈 뜬 자들 속에 나홀로 눈을 감고 있다는 괴리감이 있다. 갑자기 망망대해에서 방향카를 잃어버린 것처럼 막막했다.      

곧 오십이다. 오십은 꽃잎이 떨어지며 조금씩 열매를 맺어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홀로서기가 가능한 시기여야 한다. 이제 부끄러움 보다는 뻔뻔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은지 목소리만 커지는 나이다. 우아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 그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면서도 몸은 유약하나 성격은 거칠어진다. 인생은 사는 게 아니고 살아지는 것 같다. 나이는 육체로 오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온다. 중년이라는 단어 앞에 달린 수많은 책임과 의무. 해야 할 일들이 명징하게 많아지는 한, 난 더이상 늙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또 비아냥거린다.


삶의 끝에서 어느 누구도 나에게 얼마나 큰 집을 가졌는지, 많은 학위를 가졌는지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몸뚱아리 하나다.

양로원의 슈뢰더 씨는 생의 마지막에 서 있는 환자다. 시한부를 산다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면 며칠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의사의 말에 죽음의 시간을 알 수 있는 것도 복인 것 같았다. 사고로 예기치 않게 마지막을 맞는 사람에 비하면 선택받은 사람이다. 가족친지들과 지인들이 하나둘 다녀갔다. 그는 삶을 놓을 때까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가치고 있고 용서를 건넬 의미가 있는 존재다. 그들은 슈뢰더에게 인사했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언젠가 설 명절을 맞아 대사관에서 식품을 한인 어르신들에게 나눠준 일이 있었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자원해 그 일을 했다.

어느 파독 간호사는 2달 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폐암 말기였지만 특유의 총기와 체력으로 정원까지 날 마중했다. 그런 그였는데 이번에 봉사하면서 보니 마지막이 다가옴을 느꼈다. 힘없이 누워 있는 육신은 이미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단지 희미한 의식만이 자리했다. 이곳에서 낳은 아들들은 그의 어머니의 곁에서 손만 잡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마주잡을 힘도 없고 눈꺼풀을 올릴 기력도 소진했다. 단지 마지막 강을 건널 때 필요한 죽을 힘만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에 느낄 수 있는 죽음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구별의 여행자로 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아들들의 손을 잡으며 젊은 시절 아이들을 상상하고 추억했을까?

이제 점차 사그라드는 불꽃 속에서 단지 남은 삶에 불꽃 하나만 살아남아 사랑하는 아들들을 하루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하고 염원했을까.

며칠 후에 그의 임종소식을 들었다. 또 하나의 별이 진다. 가을밤을 비추던 아주 작은 별이 무저갱의 시간 속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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