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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Aug 20. 2021

독일빵 마이스터의 솜씨는 기억 속에 복원된다

독일 빵 마이스터의 빵굽는 냄새

 양로원 1층에 있는 그의 방문에  빵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은 오랜 세월의 흔적인지 색까지 바랗게 변했다. 방의 주인 하이넨 씨는 자신의 방문을 나설 때마다 그 사진을 힐끗 쳐다보곤 했다. 지나온 시간의 기억을 더듬는지도 몰랐다. 그는 190cm는 족히 넘는 장신에다 비쩍 마른 몸집인 탓에 성격이 까칠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그는 옷을 입는 것이며 음식시간을 지키는 것에도 간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가끔 스스로 입겠다고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나곤 하는데 단추가 제대로 안 잠겨있곤 했다. 이제 더이상 스스로 하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다. 어느 때부터는 아예 옷 입는 것도 직원의 손을 빌린다. 

옷을 입는 것을 도울 때, 그는 내가 편하도록 팔을 들어올린다든가 셔츠가 머리에 잘 들어가도록 고개를 숙여주곤 했다. 특유의 배려심이 행동에 배어나왔다.


 그는 평생을 빵 마이스터로 일했다. 기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제빵 아우스빌둥(직업학교) 3년을 마친 후 마이스터 과정을 위해 2년 더 공부했다. 젊은 시절을 밀가루를 치매며 살았고, 늙으막에는 병을 얻었다. 하지만 평생 그 일을 한 탓에 치매에 걸렸어도 손기술을 변함 없다. 

이곳 양로원에 들어와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독일인들이 즐겨먹는 슈톨렌을 굽곤 했는데 인기가 높았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듯한 모양을 한 이 빵은 독일의 겨울을 연상케 한다. 크리스마스 식탁에 칠면조와 슈톨렌은 단골이다. 슈톨렌은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직접 만들거나 구입해서 하루에 조금씩 잘라먹는 크리스마스 케잌의 일종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빵을 주식으로 한 탓에 마을이나 골목 곳곳에 빵집이 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코 끝을 스치는 고소한 빵 냄새는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한다. 그 맛이란 가히 일품이다.


 보통 양로원은 아침과 저녁은 빵으로, 점심은 요식업체에서 배달되어 온 따스한 음식을 제공한다. 하이넨 씨는 언제나 공장에서 찍어내어 배달받은 양로원 빵에 질렸는지 어느 날인가는 직접 곡물빵을 만들어서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제공하곤 했다. 물론 재료는 양로원 측에서 준비했다. 양로원 이벤트 행사의 일환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이넨처럼 손님들을 위해 빵을 만들 때처럼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불렀다. 하이넨 씨는 비록 치매상태였지만 숙달된 솜씨로 먹음직스런 풍미의 빵을 탄생시켰다.


하이넨 씨는 늘 웃는 인상이다. 키가 워낙 커서 나처럼 작은 동양인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농담삼아 이야기 할 때면 하이넨 씨는 치아를 드러내며 허허 웃는다. 가끔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내가 불러주면 늘 ‘흠흠’ 하면서 따라했다. 언젠가 한국 '아리랑'을 부른 적 있었는데 그 음까지 따라가며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음악은 역시 영혼의 세계를 한 데로 이끌어준다. 음악은 사람들의 심장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느낀다. 비록 독일어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흠흠’ 소리를 내며 비슷한 곡조로 불러내는 것이다.


 하이넨 씨의 하루 일상은 단조로왔다. 아침을 먹고 단체로 모인 장소에 올라가 방문 돌봄사가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가끔씩 내가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느새 일어나서 춤을 추곤 했다. 

일 주일에 한두 번 가까이에 사는 딸이 방문하곤 했는데 딸은 아버지의 옷장을 정리해주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딸도 나이가 지긋해서 활동적인 일을 할 나이는 지난 듯 보였다. 그저 아버지의 여생을 가끔씩 벗이 되어 찾아와주는 것이다.


하이넨 씨는 어느 날부턴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앙상한 다리는 뼈가 보일 정도로 흉했다. 자주 걷는 연습을 하라 했지만 힘이 없으니 걸핏하면 침대에 누워 있기 일쑤였다. 식사는 겨우 빵 한 조각을 먹다가 뱉어내곤 했다. 늘 긍정적인 하이넨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투병 중인 후부터였다. 딸은 찾아오는 횟수도 줄었고, 그에 따라 하이넨 씨의 얼굴도 차츰 어두워갔다. 딸은 암투병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아버지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하이넨 씨는 가끔씩 나에게 묻곤 했다.


 “내 딸은 언제 와? 오늘 오나?”


 “아마 내일은 오겠지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하이넨은 딸을 기다리고 찾다가 어느 날인가 양로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있었다. 방향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아주 멀리 갔던 모양이다. 다행히 하이넨 씨의 목에는 만일의 실종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이름표와 긴급호출 버튼을 달고 있었다. 나중에 길에 서성거리는 것을 경찰이 발견하고 데려오는 일이 있곤 했다.

그는 점점 쇠약해져갔다. 딸의 부재는 아버지의 마음을 병약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일 주일이 지난 어느 날, 하이넨 씨의 방문을 열었다.

하이넨 씨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이넨 씨,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아무런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희미해진 눈빛과 입술이 반쯤 벌린 상태였다.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한 그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려는데 너무 키가 크고 나무토막 같이 딱딱해진 팔다리 때문에  옷을 입히기가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팔을 벌려주곤 했는데 그럴 힘도 없는 것이다. 난 결국 수간호사에게 보고를 했다.


 “어제부터 통 식사를 못하시네. 아마 가실 때가 된 것 같아.”


수간호사는 아주 덤덤하게 대답했다.

난 한 시간 후 다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요거트를 가지고 입에 적셔주었는데 입도 움직이지 않았다.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듯해 보였다. 희미한 눈빛에는 생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암시했다.

난 그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불러주었다. 독일 동요를 불러주었는데도 미동하지 않았다. 잠시 후 수간호사가 하이넨 씨의 방문을 열었다.


 “경란! 기저귀도 새로 갈고 옷도 갈아 입히세요.”

 “하이넨 씨 상태가 안 좋네요. 병원으로 옮겨야 할까요?”

 “그냥 삶의 마지막 단계인 거에요.”


두 시간이 흐른 후 다른 어르신 방에 있다 업무실에 들어왔다. 수간호사가 날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하이넨 씨 돌아가셨어. 기저귀랑 깨끗이 갈았겠지?”

 “네네.”


난 너무 당황해서 쓰러질 뻔 했다. 곧바로 하이넨 씨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의 고단했던 육체는 초라했다.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는 모양새의 그가 정말이지 어색했다. 허망했다.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부질없이 사라진단 말인가.

눈물이 났다. 하이넨 씨가 날 향해 웃었던 일이며, 빵을 만들며 건네주던 손길이며 그의 흔적이 가슴을 후벼팠다. 더 사랑해드릴 걸, 더 따스하게 보듬아드릴 걸.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찼다. 다음날 하이넨 씨의 딸이 방문했다. 암 투병으로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눈물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품들을 챙기며 내가 보이지 않게 등을 돌리며 울고 있었다. 특유의 독일인들이 그렇듯 감정 노출 자제하며.


세상의 혈육 한 사람이 마지막 이별을 고한 것이다.

딸은 돌아서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프라우 박, 감사했어요. 아버지에게 따스하게 대했던 거 알아요. 시간이 다 된 거죠.”


난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 생에 오직 내 편인 가족과의 이별은 가장 큰 상실감을 준다. 하이넨 씨는 평소 자상하고 온유한 아버지라고 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딸 하나를 키우며 열심히 빵 마이스터로 일하며 새벽을 깨우던 건실한 독일인이었다.

 

이제 그의 또다른 시작이 생의 마감과 함께 편안하게 다가오길 바란다. 그토록 그리웠던 아내 곁에서 말이다. 그의 흥얼거림이 귓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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