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독일 총리 조기선출을 기해
지난 해 여름, 엄청난 무더위가 몰아치던 때였다.
당시 한국을 방문했다. 내가 머무는 곳은 인천공항철도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아침마다 서울 일정이 있어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입구역을, 강남으로 가려면 김포공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날도 오전 9시가 조금 못 되는 시간이었다.
마곡나루역을 막 지났을 때였다.
지하철 방송이 흘러나왔다.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의 젊은 남성이, 자신을 이 철도의 기관사라 밝히며 말을 시작했다. 마치 생방송 라디오를 듣는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 아마도 기관사는 퇴근 후에 책 읽어주는 유투브를 할 것 같았다. 지하철 안의 대중들의 귀가 파동을 따라 한 곳으로 몰리는 느낌이랄까? 아주 호소력있는 목소리였다.
"바오밥 나무가 6천년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광합성을 위해 적당히 에너지를 분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운을 뗐다. 요지는 6천년을 살려면 자신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라며, 오늘 더운 날씨지만 적절히 하루 에너지를 잘 분배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관사의 목소리와 내용이 하루 종일 귓전을 울렸다. 더운 날씨였지만 그의 조언처럼 그날 천천히 에너지 분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얼마나 친절하고 인간성 넘치는 분위기인가? 기관사의 목소리는 더없이 감미롭고 내용 또한 수려했다.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감생심 지하철에서란... 베를린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의식해 성소수자가 다음역이 어디인지 안내방송한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를 미묘한 목소리를 무심코 듣는다. 개인적으론 거북한 목소리다.
독일의 지금 모습은 겉으론 조용한 듯 하지만 마그마가 꿈틀대는 느낌이다.
정치적으로는 어수선하고 경제는 하락이다. 전쟁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루머처럼 퍼진다. 테러에 대한 위협도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며칠 전 딸1호가 독일 정치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한숨을 내쉰다. 가족 카톡방에 정치뉴스를 읽어보라 보내준다. 원래는 딸 2호가 정치광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경찰대학에 입학하면서 정치 뉴스는 귓전으로 흘린다. 대신 지금은 딸 1호가 소식통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12월 한달 동안 고국의 정치상황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반골 성향의 피가 확실히 유전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임금에게 직언을 한 죄로 정승의 자리에서 전라도 섬으로 유배온 조상의 이야기를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대나무처럼 곧고 소나무처럼 푸른 집안의 역사는 아버지의 자존심이었다.
피의 흐름일까?
나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도 사회적 정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고무적인 일이다.
어제도 딸1호!
밥 먹는 식탁에서 밥알을 튕겨가며 정치소식을 전한다.
"워워! 밥이나 먼저 씹고!"
나의 제재에 잠시 주춤한다.
난 여세를 몰아 한 마디 더한다.
"6천년을 사는 바오밥 나무처럼 우리도 에너지 분배하자공!"
현재 독일은 울라프 숄츠 총리가 무능함으로 실각되고 2월 23일에 총리 조기선출을 위한 총선이 진행된다.
이런 와중에 독일의 극우세력의 도발이 심상치 않다. 일명 나치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세력인, Afd(독일대안당)가 파죽지세다. 구 동독지역에서 높은 투표율로 국회에 입성해 목소리를 높인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15.9%를 받으며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SPD)을 제치고 2당으로 올라섰다.
게다가 AfD를 지지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선거 유세에 영상 연설자로 등장해 AfD의 선전을 응원하기도 했다.
독일대안당은 SNS를 활용해 십대 아이들을 현혹한다.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교육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아니, 의식 있는 이들은 독일 공교육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성토한다. 가짜뉴스에 함몰된 우리나라 노년층의 상황과 어쩌면 비슷하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뉴스를 보면 독일도 이제 나락으로 가는 건가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론이 중립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지난 1월 27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이었다.
1945년 1월 27일에 소련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해방한 날이라고 해서 '아우슈비츠 해방의 날'이라고 불린다. 올해는 80주년이라 어느 때보다 더 각인되는 시간이었다. 참고로 독일은 생일 뒤에 숫자 '0'이 붙으면 특별하게 생각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당시 나치로 인해 유대인과 집시, 정치범, 장애인 등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
지금까지 독일의 교육은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강한 비판교육을 해왔다. 역사시간에는 독일의 근현대사를 집중으로 다뤄, 다음 세대들에게 다시는 나치의 영령이 지배하지 않도록 학습했다.
하지만 다시 나치의 그림자가 곳곳에 스멀댄다. 메르겔 총리가 집권 당시 100 만명이 넘은 난민을 대거 수용하면서 그 영향이 지금에서야 나타난다며 외국인에 대한 악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그 상황에 기름을 붓듯 난민들이 행한 테러 등이 잇따른다. 최근에도 난민 허가를 받지 못해 추방위기를 겪은 외국인이 공원에서 난동을 부려 두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그러자 극우파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했다.
어떤 이는 외국인들이 추방되면 독일 건강복지가 나아지고 혜택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독일상황을 몰라서 그렇다. 의료 관련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의 27.3%가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없으면 독일사회는 녹슨 기계처럼 작동되지 않는다.
더이상 독일인들은 힘든 일에 자신을 혹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난민이나 외국인들이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누군가의 댓글이 재미있다.
외국인 추방하라는 의견에 '옆집 케밥은 잘 먹으면서 추방하라고 한다'며
역설적으로 대꾸한다.
극우세력들은 말한다.
"우리가 외국인들의 테러로 몇 명이나
더 죽어야 하는가?"
하지만 난민 관련 문제는 난민추방법이 있기에 그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난동을 부리는 것은 난민 개인의 문제적 시선으로 범죄시해야 할 부분이다. 그게 법의 존재 이유다. 즉, 그것을 난민이나 외국인 모두 악하다는 것으로 확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응도 보인다.
지금까지 독일의 보수 기반이었던 기독민주당(CDU)의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어츠가 최근에 Afd와 손을 맞잡을 것 같은 발언을 통해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것도 아우슈비츠 해방의 날 기념식이 있은 이틀 후였다. Afd의 표를 얻고 싶었던 그는 연대를 의미하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그의 말바꾸식 발언이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더 코미디인 건, Afd에서 총리 후보로 추대된 알리스 바이델 공동대표는 최근 '독일을 유럽연합에서 빼겠다. 독일만의 왕국을 만들겠다'는 말을 했다.
누구의 생각과 비슷하지 않는가? 바로 게르만의 천년왕국을 꿈꿨던 히틀러 말이다. 혹자는 지금의 독일 상황이 1933년 히틀러가 집권을 노리던 그때와 비슷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던 히틀러의 환영이 다시 독일국민들 사이에서 힘을 드러낸다.
딸1호가 수저를 놓으며 볼멘소리를 낸다.
"엄마, 극우세력이 말하는 외국인 추방은 독일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도 해당되고 우리 같은 평범한 외국인도 포함되요.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지금 빨리 보따리를 싸야할지도 모른다. 언제 히틀러의 후예들이 80년 전처럼 칼을 빼어들지 장담하지 못한다.
문득, 공항철도의 바오밥 기관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