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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독립영화 배우 데뷔하다

중년의 여배우 단역 출연

by 연강작가 Mar 19. 2025

지난 2월 말, 영화를 찍던 날이다.


그날, 겨울이 발악을 떨며 보내주지 않을 셈인지, 위 아래 치아가 부딪힐 정도로 추웠다. 독일 건물이란 게 난방을 하지 않으면 천장이 높아 온기 하나 느낄 수가 다.


말 그대로 대사 한두 개 치는 배역이지만, 비중은 꽤 컸다. 그래서 추워도 이가 떨려도 이를 악물기로 했다. 표정연기가 중요했다. 고개를 돌리거나,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이거나 상대 배우를 바라보는 눈빛이랄지...

대사를 굳이 외울 필요도 없었다. 문장이 짧은 이유도 있었지만, 몇 번이나 NG를 내는 통에 자연스럽게 외워질 수 밖에 없는 웃픈 현실이었다.


애초에 영화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화를 받고는 덜컥 승낙을 하고 말았으니.


역사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인가, 내가 희곡을 쓴 연극 공연을 한국에서 올린 적 있다. 무대 뒤에서 너덜대는 대본을 들고 배우들을 챙기며 설쳐댔던 나는, 말 그대로 시장통이나 노동판의 십장처럼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문득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숨죽인 관객들과 몰입된 배우들. 사뭇 그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졌다. 순간 나도 배우를 해보고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워낙 찐 내향이라 무대 서는 건 질색팔색인 내가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아주 요상한 일 중 하나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느낌과 감정이 오래 남았는데 한 번도 배우를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토지> 작가 박경리 선생님이 가라사대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스멀스멀 무의식에 꾼 꿈이 이뤄진 건 최근의 일이다.

그간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싫어 커튼콜 할 때도 주춤주춤 무대 앞에 섰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 내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대중의 시선에 유혹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나온 생의 반 세기를 지나오며 닳고 닳아서 관종화되고 대중화된 탓이리라.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는 익히 내가 아는 지인이었다. 이전에 그들이 나의 연극작품 관련 도와준 터라 품앗이 겸 덜컥 '내가 도울 일 있냐'선심성 비슷하게 물었다. 며칠 후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우 중 한 명으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누군가는 감독찬스인가 하겠지만, 나로선 또다른 덫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반신반의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무턱대고 하겠다고 했던 나의 무분별한(?) 결정에 대한 후회는, 독일어로 큐 사인인 'und~~~ Bitte'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시작했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유명세를 떨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몇 초 광고로 몇 억의 개런티를 받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돈 쉽게 번다'고 비아냥 떤 내 주둥이를 몽둥이로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의 친조카 중 한 명도 연예계에 몸담고 있기에, 그들의 노동강도를 모르는 일도 아니었다. 정말 극한직업이 바로 배우나 연예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출연한 영화는 짧은 독립영화이고 감독과 스텝들 모두 젊은 친구들이었다. 독립영화니 그리 품이 안 가고 금방 끝나리라 생각했건만 고난이도의 활동이었다.


영화 제작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치열하고 힘들었고 고된 시간이었다. 내 배역분에 할당된 단 몇 분, 아니 몇 초의 영상을 건지기 위해 장장 이틀의 시간을 꼬박 할애했다.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제작진들은 거의 점심을 전폐하며 일에 매달리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야 기다리는 시간도 있어서 그때그때 따끈한 차를 마시긴 했는데 그들은 손을 호호 불며 시종일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체크하고 다시 찍었다.


나는 제작진이 요구한 의상을 입었다. 추운 날씨였는데 스커트와 자켓 등 정장차림이었다. 기다리는 중간중간 파카를 걸치긴 했지만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중년의 나이를 실감케 했다. 쉬이 지치고 쉬이 열감에 좌우되는 중년의 처절한 환경을 말이다.

얼마나 현장에서 얼었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기증이 일었다. 눈꺼풀이 감기고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가족에게는 대단한 영화라도 찍으며 전사처럼 집에 돌아올 거라 기세등등 했었다.


결과는 그랬다. 가족들은 초췌한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훎어보며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쳐다보았다.

"나, 괜히 한다고 했나봐. 영화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네. 난 배우는 못하겠다"


 주연으로 열연한 십대 소녀는 감기몸살이 났는데도 아스피린을 먹어가며 찍고 있었다. 영화 기획사에 소속된 정식 배우라는데 책임감과 직업적 소명이 남달랐다. 한참이나 나이 많은 나는, 그녀가 작품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자조적으로 늙음을 한탄했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찍으면서, 함부로 타인의 영역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경험하기 전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 된 점, 그 기회를 준 감독에게도 고마워졌다. 물론 이 감사는 내 피곤함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여유가 생겼을 때에야 가능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신선한 경험의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재미는
또다른 모험이다.


 늘 먹는 밥과  입는 옷의 관성에 젖은 나에게 다른 시선, 다른 스펙트럼으로 본 세상은 또다른 가능성을 시사했고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내용도 의미있었다. 미리 스포를 날리지 않기 위해 줄거리는 아껴둔다.

찍는 그 순간에는 표피성 기대감이었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더 깊숙한 소망을 품는다.


영화의 선전을 기원한다. 나에게 어리둥절한 자부심을 갖게 해준, 내 중년의 화끈한 경험에 다시 한 번 화이팅을 외친다.


 열정의 중년!  

영화는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닌 건 확실하네. 



p.s

지금쯤 편집을 하고 있겠군요.

제 얼굴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한데 못 생긴 얼굴은 편집 할 것 같아요!


분량이 많지 않아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구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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