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나는 웃는 모습이 비슷하다.
닮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너는 예쁜데 말도 안 된다' 하시면서도 좋아하신다. 나 역시 아이와 닮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행복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랑 나랑 닮았다고?'
가슴 안쪽이 대체로 복잡한 나와 해맑은 아이가 닮았다는 뜻이 아니겠지만 늘 기분 좋은 말이다.
엄마는 가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인생 닮지 마. 너는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
대충 알겠다고 답했지만 엄마의 말에 동감했다.
'응, 안 닮을 거야. 나는 더 잘 살 거야.'
그렇게 다짐했던 아이가 마흔이 되어간다. 어른이 되고 나서 엄마와 대화 중에 서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우린 가족이 아니었다면 친해지지 않았을 거야."
그만큼 다르다.
취향은 물론이고 싫어하는 것까지 정 반대다. 공감대라는 걸 형성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직장에서 만났다면 인사만 하는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녀로 만났다.
전에는 다짐이었던 닮지 않겠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닮기 싫다'가 되어 있었다.
'좀 어른스러울 수는 없나? 엄마가 성숙했으면 좋겠다.'
6시 내 고향이나 생생정보통에 나오는 친정엄마가 부러웠다. 자기의 고통을 토로하기보다는 자녀의 안위만 생각하는 든든한 부모처럼 보여서.
부모가 되고 보니 어떤 때는 엄마가 더 이해가 안 되지만, 넘치게 될 때도 있다. 어떻게 자식에게 그런 부담을 줬을까 싶다가도, 아이가 내 맘 같지 않을 때면 우리 엄마도 그런 날이 있었을 텐데 잘 키워주셨다 싶다.
나는 엄마랑 닮았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절대'라는 말 자체가 과하다. 닮았으니 그랬을 것이다. 찔리니까.
나는 엄마랑 닮은 구석이 있다.
사소한 일도 무서워서 주저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지만 알려주기는 싫다. 안 좋아도 좋다고 하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이제야 인정하자면 꽤 많이 닮은 것 같다.
내게도 생길까 싶던 모성애 비슷한 것은 우주를 채울 만큼 커졌다.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 확실하지 않아도 근자감으로 시작한다.
심약하지만 완벽주의자인데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까지 꼭 닮았다.
엄마와 닮은 내 약점이 드러날 때마다 괴로웠다. 그렇지만 좋기만 한 것이 없듯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덕분에 일도 하고, 도전을 꿈꾸고, 가족을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까.
엄마와 나는 여전히 다르지만,
나는 엄마를 닮은 게 맞다.
이제야 알았다.
그림.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