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결혼한 이유

by 여지나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했지만 나는 원래 비혼주의자였다.


학교에서 결혼 안 할 사람을 물어보면 언제나 고민 없이 손을 들 정도였다. 손을 번쩍 든 학생이 나 하나뿐일 때조차 부끄럽지 않았다.


같은 성별이라도 같이 사는 건 쉽지 않을 텐데, 하물며 '남녀'가 같이 산다니. 어차피 안 될 일을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연애 한 번을 안 해보고 믿을 만한 어른도 만나보지 못한, 미성년자의 다짐일 뿐이었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니, 주변은 연애 이야기로 가득했다. 누구를 좋아한다거나 사귀고 있다 같은 이야기는 묻지 않아도 매일같이 들려왔다.


나 역시 절절하지는 않았으나 자라면서 썸이나 짝사랑 정도는 해봤다. 누군가와 사귀면 어떨까 상상해 봤지만, 무한도전이나 하이킥 보는 시간에 만나자고 하면 귀찮을 것 같았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버린 걸까.




스무 살이 되고 본 영화 중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순박한 농촌총각이 다방에서 일하던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에이즈와 죽음 앞에서도 남자가 사랑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런 사람은 없어. 있으면 결혼한다.'


그렇게 부정적인 희망을 품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던 중, 아주 특이한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됐다. 흔히 말하는 나와는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2주도 못 갈 것 같았는데 만으로 6년이 넘도록 만났다.


영화 주인공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제법 한결같았다. 내가 아는 남자 중 가장 신뢰할 만했고,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웃고 있어도 거의 치아를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김치나 치즈 같은 걸 할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한 사진 속의 내가 어느새 활짝 웃고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구나.'


결혼을 재촉하는 그의 가족들에 대해 알게 된 후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결혼이라는 게 제도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우리'를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걱정은 접어두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최근 남편과 통화를 하다 결혼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은 우리가 둘 다 '더 이상 데이트 후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결혼한 줄 알고 있었다.


"난 헤어질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 건데?

계속 결혼 안 하면 40살쯤 차일 거 같아서."


남편은 서운해했지만 사실이었다.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말에 무게가 없어 보이긴 해서 부연이 필요한 것 같다. 당시 결혼에 대한 내 최종 기준은 딱 둘이었다.


결혼 후에도 계속 나를 사랑할 것, 그리고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매달 백만 원 이상 벌 것.


다소 초라한 이유였지만 특히 첫 번째 이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내 월급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그의 성격상 두 번째 이유는 별 걱정이 없었다.


사랑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로 다녀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그동안 보아 온 모습으로 추정해야 했다. 그게 전부라면 충분했고, 이 정도로 지켜봤는데도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내 하나뿐인 안식처를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그냥 간단히 말할 수도 있다.


계속 함께 하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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