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의 환갑이었다.
어떻게 준비해야 기뻐하시고 나도 지치지 않을지 오래 고민했다. 너무 무리하면 '진심인 관계'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최근 작은 화해가 있었기에 더욱 신중했다.
평소보다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용돈과 떡케이크를 준비했다. 생신 전날은 여름휴가 겸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예약했다.
수십 개의 후기를 확인하며 계획했지만, 마음에 들어 하실지 걱정이 앞섰다. 전시를 보고, 물놀이까지 즐기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다행히 엄마도 아이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쉬실 동안 좋아하시는 음식을 포장해 왔다. 같이 먹으려는데 계속 뭔가를 요구하셔서 음식이 다 식도록 한술 뜨기도 어려웠다. 중요한 날이지만 계속되는 심부름에 지쳐 갔다.
'엄마니까, 약하시니까' 하며 지나가면, 전처럼 마음만 조용히 멀어질 것 같았다. 참는 것은 내가 잘하는 일이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 날씨도 덥고 무거운 거 들고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 나도 힘들어. 나는 먹지도 못했는데 계속 그러니까 좀 그래. 이런 이야기 안 할 수도 있는데, 말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그냥 참을 걸 그랬나?"
말하고 나서도 환갑인데 너무했나 싶으면서도 긴장이 되었다.
"아니야, 참기만 하면 너도 힘들잖아. 짜증 날 수도 있지."
전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가볍게 사과하고 식사를 함께했다.
다음날은 리조트 내에 있는 레저시설을 제안했는데, 평소 겁이 많으신 엄마가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빠르게 내려오는 기구를 타면서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에 뿌듯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엄마는 자신이 딸 같고, 오히려 딸이 엄마 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좋아하셨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자신을 늘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지칭하실 때마다 기댈 곳이 없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런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환갑이라고 미리 말해두었더니 준비를 잘해주셨고, 남편도 신경 써서 챙겨드리는 모습을 보니 많이 고마웠다. 식당에서 찍어준 사진을 보며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내가 걱정한 것보다 훨씬 좋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늘 말씀하신다. 외로울 때도 있겠지만 전보다 '자유'가 있는 삶. 몸도 약해지고 힘드실 텐데도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제는 이 모습이 '진짜'라는 걸.
딸을 위해 애써 웃고, 뒤에서 울던 엄마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행복하지 않았으나, 사실 학교에 가면 곧 잊고 잘 지냈다. 엄마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엄마와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배우고 있다. 오래도록 서로에게 하나뿐인 가족이었기에,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적응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요즘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키워주셔서,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아직도 어색한 게 사실이고,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겉으로만 평화로웠던 그때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10년 만에 트인 미세한 물꼬가 시간이 흐르며 더 큰 줄기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