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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Dec 10. 2022

역화효과라는 함정과 니체의 조언

 '인구통계학적으로 보면 아직 기성세대보다는 신세대 쪽에 속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하지만 사실 이제는 아무래도 기성세대 쪽에 속하는 나이가 되었다.

한때 '막내'라는 이름으로 선배들이 시킨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나름 귀여움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호랑이 노담 클럽 가입 전의 이야기다. 이제는 사무실을 구성하는 인원 중 열에 여섯일곱은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들로 채워져 있다.

막내는 막내대로의 고충이 있었고 대리 때에는 대리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것과 같이 이제 장년의 선배가 되어보고 나니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침침해지는 시력과 시들해지는 체력은 기본 옵션,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고충은 자기 확신에 관한 부분이다.


어떤 확신이냐면,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험에 기인하여 '이건 당연히 이런 것 아닐까?'라고 내린 결론이 진짜 요즘 세상에도 맞을까 하는 확신이다. 쉽게 말해 잘못 의견을 말했다가 꼰대로 비치는 것에 대해 걱정된다는 이야기다.

이건 아무래도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이렇게 생각하셨죠?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답니다. 후훗', '이렇게 말하는 당신의 꼰대력 100% 군요!'라고 아주 친절하게 꼰대 가능성을 경고해 주는 컨텐츠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아유. 나는 절대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하며 열심히 자기점검을 해보지만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당연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게 된다.


너무 과도한 자기 점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세상이라고 생각도 한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상은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시스템이 변화하고 사람들이 다루는 도구가 변화하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믿고 있었던 진실이나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효과적인 방법론이 무용해지는 시기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무슨 일을 하든 벽에 부딪히면 '비슷한 상황에서 예전엔 어떻게 했었지?'를 우선 떠올리기 마련인데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지금은 두어서는 안되는 악수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선배로서 최악의 모습은 역화 효과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화 효과는 자신이 가진 신념에 반하는 의견과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 신념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발하여 기존의 신념을 더 공고히 하는 심리를 말한다.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회의 시간, 팀장님의 의견에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이 조리 있게 반대 의견을 말하면 버럭 하며 '내 말이 맞아!'라고 발끈하는 독선적인 팀장의 모습. 사무실의 모습을 다루는 드라마에 늘 등장하는 클리쉐이고 사실 현실에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자신 있게 나의 아이디어를 풀어 놓았는데 객관적인 논리를 통해 내 의견을 누군가 반박하면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반사적으로 억지 논리를 만들어 내어 내 아이디어를 방어하는데 급급하게 된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생각하곤 한다. 상대방의 말이 맞을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열정으로부터 견해가 생기고 정신적 태만이 이를 신념으로 굳어지게 한다' 니체의 말이다.

과거의 열정 넘치는 경험들이 쌓여 단단한 견해가 만들어지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자아 비판하지 않아 굳어진 신념은 자칫 독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자기 생각에 갇혀있는 꼰대에게 전하는 따끔한 일침으로 읽히지만 한 번 더 곱씹어 보면 무심하게 힌트를 주고 있다. 열정적으로 자기만의 견해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생각이 굳어지는 것을 더 경계하라고. 단단하게 쌓아올린 사상보다 생각의 유연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조언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생각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가장 좋겠다. 허나 타인과의 대화를 노동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극 I 성향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방법이다. 이러한 경우 문학은 유효한 도움 중 하나가 된다. 문학 속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나와 다른 누군가의 견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기회가 된다. 현실에서라면 절대 대화해 볼일 없을 것 같은 사람의 삶을 통째로 훑어보고,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의 속마음을 글이라는 형태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그래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있겠지'

'어쩌면 저 사람의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반박하려는 속마음을 꾹 누르고 타인의 의견을 한 번 더 곱씹을 때마다 글을 읽는 것을 취미로 두 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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