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이 있다. 소재에 따라, 컬러에 따라, 역할에 따라, 여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구분된다. 나무 문, 빨간 대문, 현관문, 미닫이문 등 나 역시 다양한 문들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약 1년 전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나에게 세상의 문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들어갈 수 있는 문과 없는 문이다.
철없던 총각 시절, 동네의 이런저런 카페나 식당에 방문할 때면 유아차를 끌고 온 가족들이 유난히 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게를 갈 때면 '좀 시끄러울 것 같은데. 다른 데로 가볼까?'하며 발길을 돌린 적도 종종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가게들은 유아차를 끌고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이나 계단이 없는 문을 가진 가게들이고 실내도 널찍해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들어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게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가게는 흔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그런 구조를 가진 가게가 흔치않다. (물론 동네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대체로 한두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거나 실내 공간 자체가 테이블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유아차를 끌고 들어가기 쉽지 않은 구조가 많다. 유아차를 가게 밖에 두고 들어가려고 해도 아이가 앉을 수 있는 유아의자가 비치되어 있는 곳도 많지 않다.
물론 최대한의 공간 효율로 최대한의 수익을 이루어내야 하는 자영업 종사자분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턱이 높은 문 옆에 유아차가 오를 수 있는 오르막길을 따로 설치하고, 꽤 덩치가 큰 유아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적 여유를 마련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때때로 문턱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문 앞으로 마중 나와 함께 유아차를 들어서 옮겨 주겠다고 제안해 주거나 테이블을 옆으로 밀어 유아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 해주는 적극적 배려심의 사장님들도 종종 마주한다. 참 감사한 분들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게 시간적 공간적 폐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도 사실 염치없는 일로 느껴진다.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끌어올린 획기적인 정책에 대한 화두들이 오르내린다.
'다자녀 가구에겐 파격적인 지원을 하겠다', '출산 장려 아이디어를 모으는 대대적 공모전을 열겠다', '다자녀 직원에게는 승진 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
물론 모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들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가지고 둘째를 고민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출산을 꺼려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거대하고 즉시적인 솔루션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할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오히려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될 때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를테면 핀볼효과처럼 말이다.
핀볼효과는 사소한 사건이 핀볼게임의 볼을 쏜 것처럼 여기저기 연결되고 점점 증폭되면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말하는 용어이다. 주식시장에서는 국가의 경제 성장률이나 특정 기업의 실적 같은 요인들이 연쇄적으로 작용해 주가를 예상보다 크게 높일 때 핀볼효과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문턱 낮은 가게가 많아지면 행복한 아이와 가족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행복한 기운은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전파되고, 어쩌면 '육아에 찌든 부모와 떼쓰는 아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아이가 함께 있는 행복한 내일을 상상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누군가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다른 방문자들의 쾌적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 이런 서로 간의 작은 배려들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가속도가 붙는 핀볼처럼 커다란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 더운 여름날 유아차를 끌고 갈 길을 잃은 유부남의 망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