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뭐. 너의 걱정도 십분 이해해.
우리가 만나고 난 후 내가 병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긴 했지. 자잘한 병치레도 많았고.
한창 날다람쥐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데이트하던 시절에도 너의 왕성한 활동량을 못 따라가서 먼저 지치곤 했었지. 그 다음부턴 데이트 시작하기 전에 피로회복제를 먼저 건네주던 모습이 생각나네.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네.
신혼여행으로 갔던 니스에서도 혼자 물배탈이 나서 이틀 동안 끙끙 앓았었지.
쿠바로 여행 갔을 때도 혼자 입바늘이 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약을 구하려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
구체적으로 기록해두진 않았지만 결혼 후에 감기나 몸살로 끙끙 앓았던 횟수도 내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아.
깔끔하게 인정할게. 우리 집의 병약 1순위는 나야.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어. 건강에도 스티그마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야.
스티그마 효과는 주로 범죄자들에게 많이 쓰이는 심리학 용어이긴 해. 한번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면 그 사람이 '난 진짜 나쁜 사람인 건가'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점점 더 나쁜 행동에 더 빠져들게 되는 현상을 말할 때 주로 쓰이지.
그런데 난 건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한번 '저 사람은 병약해'라고 낙인이 찍혀 버리면 괜히 이겨낼 수 있는 잔병도 심하게 끙끙 앓게 되는 거지.
'그래. 내가 원래 병약한 놈이라 또 아프기 시작했군'하고 뇌가 포기해 버리는 거야.
뭐.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난 이게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자. 그렇다면 병약한 자라는 스티그마 효과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잔병에 늘 잘 걸린다는 인식을 행동으로 극복해 내야겠지.
예를 들면 요즘 감기가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결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보는 거야. 요즘 운동도 꾸준히 다니고 건강하게 먹어왔으니까 면역력이 충분히 높아졌을 거야. 올겨울이야말로 증명해 낼 적기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독감 접종을 하지 않아 보겠어!"
"좋은 말로 할 때 맞고 와.."
"응"
협상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