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방문하여 현관문을 열면 풀내음과 흙내음이 먼저 반겨준다. 고향집엔 마당 뿐만아니라 거실까지 식물들로 가득하다. 어머니는 오리지널 식물집사이신 것이다.
처음은 거실 창문 쪽에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한 어머니의 식물들은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해갔다. 거실 창문 앞 전체를 장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관문, 마당을 점령하더니 언제부턴가 뒷마당에 작은 비닐하우스 온실이 세워지고 그 안에 다양한 생김새의 다육이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질리지도 않으신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식물들을 꾸준히 들여놓으시고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고 통풍을 시켜 주셨다. 어느 날 문득 꼭 닫혀있던 봉우리가 열리며 꽃이 피어나면 의기양양하게 사진을 찍어 자랑하시고 카카오톡의 프로필로 삼기도 하셨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반려식물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아오며 자라온 나는 사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열심히 챙겨줘도 꼬리 한번 흔들지 않는 저 식물들에게 왜 저렇게 애정을 쏟으시는 건지. 내가 보기엔 모두 똑같이 생긴 초록색 이파리들인데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건지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러다 나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를 닮아 식물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하게 될 때면
"에이. 내가 설마"
하고 웃어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집 근처 산책로에 있는 가드닝 샵을 지날 때면 점점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잉 목록은 점점 인기 플렌테리어 계정으로 채워졌고 나의 검색 패턴을 파악한 타겟팅 배너광고들은 가드닝 관련 제품 광고를 노골적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슨 식물이람. 잘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머리는 애써 외면했지만 두 눈과 손은 점점 구체적인 정보를 탐색하며 예쁜 식물 위시리스트와 집 근처 가드닝 샵 목록을 완성시켜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찜해둔 가드닝 샵 근처를 지나가다가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가게를 가득 채운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보자 잠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땐 양손 가득 식물 친구들이 주렁주렁 들려있었다.
'그래. 얘들아. 이제 나랑 같이 살자!'
처음엔 키우는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홍콩야자, 피쉬본 등을 시작으로 행잉 식물인 수염 필란드시아, 디시디아 멜론을 들여놓았다. 그다음 주말엔 옆 동네 가드닝 샵까지 원정을 떠나 백화등과 골풀을 데려왔고 점점 손이 커지더니 꽤 큰 덩치의 몬스테라까지 들여놓게 되었다.
식물들이 어느 정도 채워지자 이제 식물들과 어울리는 장비들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디드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디드로 효과는 어떤 물건을 산 이후 그 물건과 어울리는 다른 물건들을 계속 구매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자켓을 사게되면 그 다음은 그 자켓과 어울리는 바지, 셔츠를 구매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코디에 어울리는 액세서리까지 구매하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디드로 효과에 빠져버린 나는 식물들과 어울리는 다양한 물건들을 거침없이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니까 가드닝용 가위가 필요하겠어. 색깔은 역시 초록색이 좋겠지. 분무기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좀 안 어울리네. 초록색으로 통일해야겠다. 날씨가 추울 때는 거실 안으로 들여놔야 하니까 원목 스툴 같은게 필요하겠고...'
그렇게 용돈은 탕진되어 갔지만 식물들과 함께 한 나날들은 꽤 괜찮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초록 잎을 보고 있으면 고요한 숲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회사에서 있었던 사소한 문제들이야 뭐 어떠냐 싶어졌다. 가끔씩 어린잎이 단단한 이파리들 사이를 뚫고 얼굴을 보이면 내가 틔워낸 생명처럼 대견한 마음이 든다.
식물과 교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감정이입이 되며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미용실에서 펌을 한 장발머리처럼 생긴 필란드시아는 '치렁이', 옆으로 가로지르듯 자라는 백화등은 '비스듬이', 꼬불꼬불하게 자라는 피쉬본은 '헤롱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헤롱아 답답하지. 바람 좀 쐴까?" 하며 식물들을 베란다로 데리고 나가는 나를 보면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러다 종국에는 나도 어머니처럼 자랑스러운 식물 친구들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 해놓을지도 모르겠다.
식물들을 직접 키우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식물을 키우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처음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을 땐 자칫 식물들이 죽어버릴까 잔뜩 겁을 먹었었다. 그래서 가드닝샵에서 메모해 준 가이드를 정확히 따라 물을 주고 빛을 조절해 주는 방식을 취했다. 몬스테라는 화분의 흙을 나무젓가락으로 찔러보았을 때 반 절 이상이 마르면 듬뿍 관수해 줄 것. 골풀은 물이 마르면 잎이 말라버리니 늘 촉촉하게 유지해 주고 겉흙이 마르게 전에 관수해줄 것. 수염 필라드시아는 일주일에 한 번은 반나절 정도 물에 푹 담가둘 것. 백화등은 일주일에 한두 번 종이컵 한 컵 정도 물을 줄 것 등등 각 식물의 특성에 맞춘 가이드에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식물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각자의 특성을 외워 관리해 주는 것은 나의 뇌 용량으로는 한계가 있는 방식이었다. 물을 주는 타이밍을 놓치거나 물을 주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또 줘서 과습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식물이 시들시들해지면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다시 파릇한 잎으로 돌아올 때까지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것은 식물을 잘 키운다는 것은 결국, 관심을 많이 쏟는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식물의 특성에 맞는 공식도 중요하지만 자주 들여다보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지금 물을 줄 타이밍인지 아닌지. 지난주보다 잘 자라고 있는지 아닌지 보인다. 관심을 쏟으면 쏟을수록 식물들은 무탈하게 잘 자라나고,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 무관심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시들해진다. 관심만 있다면 특별히 각 식물에 대한 공식 같은 것은 몰라도 잘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것이 식물이든 사람이든 능력이든. 관심은 건강한 성장의 거름이다. 그리고 성장한 그것을 바라보며 관심을 쏟은 사람의 마음도 한 뼘 자란다. 오늘도 건강히 자라나고 있는 나의 식물 친구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의 여유도 한 뼘 자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