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추억으로

이제, 그를 놓아도 될 것 같았다.

by 은빛루하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탄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몇 년 만의 강추위다”라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흘러나왔다.


그래서일까?


겹겹이 옷을 껴입어도 추웠다.


누구를 만나도,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다.


공덕역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랐다.


내 친구는 공덕동 꼭대기 아파트에 산다.


연신 총총걸음을 옮기며


나는 자꾸만 춥다는 생각을 반복했다.


‘이렇게 걷는데, 몸에서 열이 나서


추위가 사라질 법도 한데 왜 이리 춥지?’


‘어깨까지 떨리도록 춥다니...


어린 나이에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걸까?’


혼자 중얼거리다, 훗— 하고 웃음이 나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가는 걸 미처 몰랐다.


나는 내내 걷고,


바쁘게 움직이며 계절을 흘려보냈다.


걷는 내내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계절 특유의 냄새도 느끼지 못했다.


생각을 멈추지 못한 채


그리움만 껴안고, 겨울을 맞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이런 만남은,


침묵 속에 머물던 내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툭—하고 바꿔놓는다.


꼭대기 아파트에 노을이 걸려 있고,


멀리서 친구가 손을 흔든다.


“삼겹살도 있고, 맥주도 있어.


우리 간만에 달려볼까?”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크게 웃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어느새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리움의 끝에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흐르고,


바람은 길 따라 분다.


내 마음도 그 바람을 타고


흐릿한 의식의 끝에 머물던 그를


이제는 조용히 놓아준다.


그리고, 그만—


맥주를 마셔야겠다.


--


은빛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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