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비 오는 문래동, 그리움이 깃든 골목
감정은 마음을 앞선다.
그날의 나는 빨간 등대 아래 가라앉는 노을을 보며,
묘하게 차분했다.
미련도, 아픔도 지나간 듯 고요했던 그 순간—
그러나 마음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쇳소리가 가득했던 문래동 골목.
굵은 철문과 용접 불꽃이 날리는 거리,
비에 젖은 철문에서 나는 냄새,
젖은 콘크리트 바닥의 질감까지—
회색빛으로 채워진 그 풍경은 지나간 내 감정을 조용히 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골목을 오래도록 걷곤 했다.
혼자일 때 더 자주, 더 천천히.
누군가와 나란히 걸었던 기억은
비 오는 날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우산을 함께 쓰던 어깨,
마주치지 않는 눈빛,
그럼에도 마음은 조용히 가까웠던 그날들.
그날은 비가 왔다.
나는 노란 우산을 들고 문래동을 걸었다.
회색 골목 위에 노란색이 덧씌워지자,
잊은 줄 알았던 그리움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미련 없이 떠났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처럼 떨어지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카페에 들어섰다.
무채색 공간 속 조용한 음악,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무심히 앉아 있는 고양이의 움직임,
그리고 따뜻한 커피 잔이 손끝을 감쌌다.
그 온기에 마음도 잠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이 아니길 바랐다.
다시 손을 잡고 걷고 싶었다.
아무 말 없이라도, 다시 그 거리 위를.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마음은 조용히 울고 있었다.
요즘 나는,
비 오는 날이면 일부러 그 길을 돈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 시간에,
그와 함께 걷던 길 위를 천천히 밟아본다.
혹시나 바람이 그의 이름을 흘려줄까,
흩뿌리는 비가 그의 온기를 데려다줄까,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그리고,
우산 끝으로 떨어지는 빗물에
그의 이름을 담아 흘려보낸다.
부슬비가 유난히 얼굴을 스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묻는다.
왜,
지금 그와 함께하지 못한 그리움만 안고 있는 걸까.
— 은빛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