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Feb 10. 2022

'찌질함의 골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오늘의 찌질함을 견디기 #남이 아니라 나를 보는 것 #비교하지 않기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완성된 형태의 타인을 바라본다. 그것이 롤모델을 갖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때론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대부분 어떤 새로운 일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 막막할 때 미리 해놓은 사람들을 보며 방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은 무언가를 찾고,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그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지 찾아본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포털 검색도 해보고, 블로그의 후기도 읽어보고, 책도 검색해보며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 수많은 그 언어에 '유창한 사람'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자극이 되고 동기 부여를 받기도 한다. 곧 나도 저렇게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리라 기대하면 몹시 설렌다.


그러나 진짜 배움이 시작된 후에 그것이 완전히 내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습도 하고, 실수도 하며 다시 시작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어제의 나보다 단어를 하나라도 더 습득했다면 나는 안도해야 한다. 나는 잘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목표를 향해 한 발자국씩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넘어지고 그만두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내가 아니라 남을 보는 것'. 비교점이 어제의 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나도 원어민 같지 않았는데 오늘의 나도 원어민 같지 않아 그냥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다. 하지만 너튜브 속의 저분은 같은 한국 사람인데 마치 원어민처럼 유창하고, 또 외국 한 번 나갔다 온 적 없는 저 친구 역시 나보다 월등히 나아 보인다. 나는 왜 빨리 실력이 늘지 않는가 한탄하며 내 머리를 탓하고, 나의 시간이 부족함을 탓하고, 외국에 나갈 수 없는 환경을 탓하며 새로운 언어 배우기의 열정은 서서히 식어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목표를 이렇게 고사하였던가. 이것은 비단 외국어뿐만이 아니다. 운동도,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처음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의 설렘은 나에 대한 착각에서 온다. 결심을 하고 배우기 시작하면 마치 바로 완성된 형태의 나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 말이다. 목표 지점을 바라보며 그곳까지 나아가는 나를 끝까지 바라보기로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타인을 바라보고 현재의 나와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자존감을 낮추길 반복한다. 결국 그 괴리를 채우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만다. 


그러니 목표를 세우면서 반드시 함께 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남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겠다.'는 것. 저 화려한 목표 지점에 먼저 올라가 있는 그들도 지금의 내가 지나고 있는 '찌질함의 골짜기'를 지나왔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 지겹고, 찌질하고, 더디고, 못났고, 잊어버리고, 나아지지 않고, 한심해 보이는 이 상태가 결국 그 화려하고 멋진 자리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임을 말이다. 그래서 바로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그 찌질함에서 한 뼘이라도 더 나아갔다면, 온 마음 다해 손뼉 쳐야 한다. 어제의 나의 부족함을 견뎌내고, 오늘의 나의 부족함으로 건더 왔다는 증거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는 내가 있다는 것에 행복해야 한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오늘의 찌질함'을 견디는 중이다. 찌질함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이 찌질함이 모이면 나의 흑역사가 될 거라는 것. 그리고 흑역사도 역사라는 것. 나는 나를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