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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증을 유발하는 지독한 기억의 상처, 트라우마

강간 생존자와 홀로코스트 생존자, 그리고 9·11 테러의 간접 피해자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

현대 트라우마적 사건의 원형적인 사건으로 인식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샤를로트 델보(Charlotte Delbo).


나는 베트남에서 죽었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상담 치료한 조너선 셰이(Jonathan Shay)가 환자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


나는 언제나 이전의 나 자신을 그리워할 것이다

성폭력을 경험한 작가 미게일 쉐러(Migael Scherer)가 강간 생존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상실을 표현한 말.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우슈비츠를 해방시켰을 때 수용돼 있던 유태인 어린이들. 소련 군인 알렉산데르 보론코프(Alexander Voroncov)의 사진.


트라우마적 사건에서 피해자는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감지되는 폭력에 맞닥뜨려 자신이 완전히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된다.

맞서 싸울 준비를 하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빨리 도망치는 등의 일반적인 반응들은, 트라우마적 사건에 직면해서는 거의 발휘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아의 극복 능력을 넘어서는 사건 앞에서 자아는 심한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주디스 허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사건을 앞에 두고 저항도 탈출도 불가능할 때, 인간의 자기 방어 체계는 그 앞에서 압도당한 채 무너져버리고 만다. 위험이 닥칠 때 보이던 일반적인 반응들은 이런 사건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대신 눈앞의 위험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후까지 그 반응들은 변형되고 과장된 상태로 남아 있곤 한다.
_『트라우마』


특히 트라우마가 다른 사람이 의도적으로 가한 것 때문에 생겼을 때,

이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들을 무너뜨리고, 세상 속에서 피해자가 보장받아야 할 안전을 파괴할 뿐 아니라 피해자의 자아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고 있던 유대까지 끊어놓는다.


의도적으로 가한 폭력으로 외상을 입은 사람은 가해자에 의해 단지 물건처럼 취급당한다.
여기서 피해자의 주체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수잔 브라이슨은 실제 자신이 겪은 끔찍한 성폭행의 경험을 쓴 글에서 바로 이런 느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어느 날 브라이슨은 남편과 동료를 숙소에 남겨두고 혼자 평화로운 시골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브라이슨은 어두운 골짜기 아래의 흙탕물 속에 얼굴이 처박혀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고 강간당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고, 내 운명은 오직 폭력을 휘두르는 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 그 남자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었다. 어떻게든 그 남자의 인간성에 호소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목이 조여 오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동물적인 본능으로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내가 느꼈던 죽음의 공포를 여기서 전달할 수만 있다면 (……) 그때는 정말 목숨이 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이 들었고, 바로 그 순간 돌을 들고 나를 향해 미친 듯 달려오는 그 남자를 보았다. 그는 내 이마를 돌로 내려치고는 내 목을 한 번 더 졸랐다. 그러고는 그렇게 나를 죽게 내버려둔 채 도망쳤다.
_『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당한 그 끔찍한 일 때문에 브라이슨은 자기 몸이 “고통과 두려움에 얼룩진 몸으로 변했고, 더 이상 성폭력을 겪기 이전의 자기와 동일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라고 한다.

자기 몸이 원수처럼 느껴지고 수많은 결점을 가진 것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캐시 윙클러(Cathy Winkler)는 강간을 일종의 “사회적 살인(social murder)”이라고 부르며,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자아가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피해 상황에서 물건처럼 취급되고 자기가 선택한 대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있는 몸뚱이”와 비슷해진다.


피해자의 자아는 이제 외상을 입기 전의 자아와 동일할 수 없고,

피해자 눈앞에 펼쳐지는 외상 후의 세계는 샬롯 델보의 말처럼, “감히 입을 수 없는 값비싼 옷을 눈 앞에서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 동떨어진 장소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라우마적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죽음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보다 해방 이후에 고통이 더 크다고 호소해왔다.

그들이 느낀 고립감은 ‘해방 후 정상인 듯 보이지만 비정상’인 그들 자신의 달라진 자아와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누구보다도 이 같은 차이를 몸으로 절감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증언자로 꼽히는 장 아메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장 아메리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게슈타포에게 잡힌 뒤 모진 고문을 당하고 더 이상 뽑아낼 정보가 없다고 판단되자 유대인으로 '강등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던 장 아메리는 레지스탕스에 합류하여 활동하다 1943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폭력을 당했다.

이후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한 장 아메리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처음 한 대를 얻어맞는 순간부터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를 잃게 된다고 말하면서,

이 과정에서 자기 몸과 자신의 형이상학적 존재성에 대한 존중의 확실성을 상실한다고 주장한다.


내 몸이 끝나는 곳이 곧 내 자아가 끝나는 곳이다. 내가 신뢰를 가지려면 신뢰야말로 내가 느끼기 원하는 것이라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 한 대를 맞는 순간, 세상에 대한 이러한 신뢰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_『자유 죽음』


그러면서 아메리는 자신이 받은 고문을 강간과 비교한다.

고문을 하는 사람이 피해자를 단순한 몸뚱이, 순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마구 때리는 행위는 그의 모든 존재를 더럽히고 파괴하려는 것이며, 그런 모욕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얼룩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외상 후의 자아가 외상 전의 자아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아메리는 『자유 죽음』을 쓰고 2년 뒤인 1978년 10월 17일에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하였다.



트라우마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각인되기도 한다.


미국 한 병원의 소아청소년과에는 9・11 사건이 벌어진 뒤 몇 주가 지난 뒤, 서로 일면식이 없는 다섯 명의 소녀가 동일한 증상으로 방문했다고 한다.

그들 모두 음식물을 삼킬 수 없어 단기간에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졌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다섯 명 모두 세계 무역 센터 빌딩이 폭파될 때 날아온 잔해와 건물의 파편이 목에 걸려 그런 증상들을 만들어냈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곧바로 그들의 목을 검사했지만, 약간의 수축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런 증상을 일으킬 만한 어떤 요인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의 증상은 영상 속 사건의 피해자들의 자리에 그들이 있다고 동일시한 것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 장면과의 동일시가 너무 강해서 잔해와 건물의 파편들이 자신들의 몸으로 들어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9・11 사건이 벌어진 직후 TV에서는 연일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이 폭파되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소방관들의 힘겨운 구조 활동을 담은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9・11에 관한 영화에서는 구조 활동 중이던 소방관이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되기도 했다.

특히 신참 소방관이 무너진 잔해 더미를 파서 임신한 듯 보이는 한 소녀의 시신을 발굴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과 불길을 피해 무역 센터 고층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담은 영상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유난히 괴롭게 만들었다.


빌딩이 폭파된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도 반복 재생되는 생생한 영상들을 봄으로써 ‘간접적 트라우마(secondhand trauma)’를 입은 것이다.


간접적 트라우마는 대체로 직접적인 피해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거나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발생하지만, 피해자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간접적 트라우마의 증상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이 정체성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의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에 적절한 감정을 느끼는 것(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외상을 입기 전의 자아와 외상 후의 자아를 통합하는 일, 그리고 외상 전의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와 외상 후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문제는 앞서 살펴본 트라우마적 사건 피해자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사람에게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불가능성과 맞닥뜨리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엄청나게 힘든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섣부르게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외상 피해자들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이 포스트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8권 『기억,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서길완 著, 8월 28일 출간 예정)에 수록될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마이크로 인문학 Micro Humanities

일상에서 마주치는 질문들
은행나무 마이크로 인문학



01 생각, 의식의 소음 ─ 김종갑 
02 죽음, 지속의 사라짐 ─ 최은주
03 선택, 선택의 재발견 ─ 김운하
04 효율성, 문명의 편견 ─ 이근세
05 질병, 영원한 추상성 ─ 최은주
06 혐오, 감정의 정치학 ─ 김종갑
07 자아, 친숙한 이방인 ─ 김석
08 기억,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 ─ 서길완(8월 출간 예정)
09 사랑, 삶의 재발명 ─ 임지연(8월 출간 예정)

─ 이 시리즈는 몸문화연구소와 은행나무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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