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아씨오 하고 택시를 불러서
".. 택시 많이들 타세요?"
"잘 안 타죠."
그치, 1.6km면 안 타도 될 거리다.
"근데 어떻게 안 타고들 다니시지."
"놀러 오셨어요?"
"네. 너무 깜깜해요.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어요?"
(20만과 100만을 아무리 대조해도 적응이 안 됐다)
"없죠. 낮에도 없고, 밤에는 더 없고. 건물이 없잖아요."
"낮에도 없다구요?"
"그럼요, 촌구석인데. 아마 도착지까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저편에 이마트가 노랗게 보였다. 이제는 안다. 지척에 있어서가 아니라 중간에 마트를 가릴 뭔가가 없어서 훤히 보이는 거라는 걸. 마치 분당 어디메쯤에서 네이버 사옥이 보이지만 걸어도 걸어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거기나 여기나 보이는 것보다 항상 멀었다.
그리고 이동하는 내내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었다. 정말 없는 건지 안 보이는 건지는 몰랐다. 가로등도 없었으니까. 오기로 어떻게든 걸었다 해도 도중에 관뒀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러는 게 맞았다. 강릉고등학교 앞에서 괜히 택시가 내 옆을 설설 긴 게 아니었다. 나는 그 택시를 지나쳐 보냈다. 그리고 7분쯤 더 걷다 포기했다. 가도가도 지도는 허허벌판이었고 도로는 온통 깜깜했다.
"여자분이면 더 하죠, 못 가셨을 거예요. 위험해서 어째."
아저씨가 도로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걸을 곳도 없어요. 요 중간으로 뚫고 가셔야 하는데 (그 요.. 가 어딘지도 분간이 안 갔다) 길이 안 보여요. 사시는 분도 아닌데.
여덟 시 반이었다. 또 여덟 시 반. 토요일. 들어가 밤바다나 걸어야겠다 했던 생각이 접혔다. 어제의 그 강릉역 주변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었다. 더하면 더했지.
그 솔숲을 이 어둠과 함께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낮에는 햇빛이 가득해 훤했던 길이 밤이 되니 딱 그만큼 다 까맸다. 뭐가 보이질 않았다. 해변이고 뭐고 그냥 씻고 얌전히 숙소에 있기로 했다. 어제도 오늘도 못 본 밤바다지만 이런 식이라면 어차피 못 보는 게 맞았다.
얼렁뚱땅 아침이었다. 29일. 2일차. 진짜여야 하는 날.
닭 우는 소리였다. 진짜 닭. 하얀 닭들이 계속 울었다. 방음이 잘 돼서 시끄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잠을 깼다. 숙소 선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기가 막혔다. 햇빛이 2층의 넓은 바닥으로 예쁘게도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야 했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운동복을 꺼냈다. 앞주머니에 진짜로 양말을 한 켤레 넣었다.
밖에서 마주친 에어비앤비 아저씨는 안 추우시겠어요? 하고서는 길 건너서 한 시 방향으로 가시라고 알려 주었다. 한 시 방향. 솔잎과 솔방울이 옅어져 있는 길대로 뛰었다. 몇 분 뛰니 청설모들이 나왔고 저편에 아마 정말 바다인 것 같은 수평선이 보이려 했다. 그래서 기쁘게 달렸다. 야, 저기 하이라이트 있어! 라고 누가 소리친 것처럼. 우다다다다다.
그리고 진짜 바다가 나왔다. 이렇게나 쉽다니. 여기였다니. 지나온 곳도 지나갈 곳도, 끝에서 끝으로 다 바다고 해변이었다. 유난 떨지도 않았고 잔뜩 빛나지도 않았다. 약간 구름이 낀 아침의 바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떠날 후에도 이렇게 존재할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난 이걸 보러 왔구나. 보기만 할 수 있겠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좋구나. 러닝밴드에서 휴대폰을 빼 사진을 찍었다.
쪼리를 신고 색깔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뛰어 보라길래 모래밭을 뛰었고 송정 글자 옆에 앉으라길래 앉았다. 사진과 영상 속의 내가 즐거워 보였다. 바다와 나였다. 즐거워하는 나. 감탄하는 나. 그 뒤의 바다. 내가 서 있는 모래밭.
장갑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쿠션 좋은 러닝화를 신고 모래밭을 어기적거리면서 걸었다. 그 모래밭에서 물러나와도 바다였다. 앞으로, 왼쪽으로는 소나무와 바다였고 오른쪽으로는 눈이 안 녹은 훤한 산들이었다. 멋대로 자란 소나무가 그대로 보도 위로 솟아 있었다. 왜 옆통수에는 눈이 없을까. 눈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공연장에서나 하던 생각을 거기서도 했던 것 같다. 솔직히 느낌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지? 모르겠다. 여하간 나는 행복했다.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았고 어느 쪽으로 시선을 틀어도 행복했다.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바닷가에 세워진 나무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빛바랜 페인트 위에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흐릿한 2022년, 2024년, 선명한 2025년. 아, 요새 보넥도가 핫하구나. 은비와 수빈, 잘 지내세요? 장현씨 윤진씨 영원히 사랑하고 계세요? 바다를 배경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가득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 모두 이곳에서 즐거웠고 행복했을 거라는 것.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노래를 몇 곡 듣다가 이어폰을 뺐다가를 반복했다. 아홉 시도 안 된 시각이라 해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의자 발치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두고 걸었다.
흰 조가비들이 부서지다 말고 모래와 섞인 곳에 맨발을 딛고 시린 바닷물을 피해 달아났다. 많이 찼다. 아하, 이 친구. 날 별로 반기지 않는군. 아무렴 상관없어. 행복했다. 그조차도 반가웠고 기뻤다.
씻고 어제 사 놓은 빵을 집어먹으면서 외출 준비를 다시 했다. 가방을 챙겨 아까 그 해변으로 다시 떠났다. 스타벅스에는 사람이 다 차 있는 게 바깥에서도 보였다.
그곳 할리스 2층 창가 의자는 내가 이제껏 가본 카페 의자 중 가장 편안했다. 거의 누워 있을 수 있으면서 앉아서 뭘 하기에도 좋았다. 에너지 부스터 어쩌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파도와 하늘과 부서지는 물결과 고개를 다시 들 때마다 많아지는 사람들을 봤다.
엄마, 아빠, 애기, 할아버지, 할머니, 강아지, 또 엄마, 아빠, 또래 여자들, 남자들, 더 어린 것 같은 여자들, 또 개, 강아지. 군복을 입은 애들, 또 애들, 진짜 애들, 해병대 군복을 입은 애와 함께 있는 여자애, 뻥튀기 봉지를 든 사람들, 혼자 온 여자, 혼자 온 남자. 사진을 찍는 사람들, 달리는 이들, 도망치는 이들, 또 달리는 이들. 언제 무엇을 하다 고개를 들어도 넓은 유리창 가득 파란 바다였다. 시간이 안 갔다. 그러니까, 안 가는 것처럼 잘 갔다.
나는 어제의 경험으로 미루어 버스를 기다리느니 택시를 잡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르떼뮤지엄으로 도착지를 잡아 호출했다. 3분 거리의 택시가 잡혔다. 어제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강릉 특징인지 택시는 정말 빠르게 달렸다. 어어, 나 이렇게 안 급한데.
제발 빨리 가야 했던 분당에서는 장난하나 싶게 안 오고 안 잡히고 느리게 가던 택시가, 여기서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아무튼 빨랐다. 하도 빨리 도착해서 괜히 탔나 싶었는데 도로 돌아올 때 보니 절대 걸어서 올 수 없는 거리였다. 그냥.. 무지 빨랐다. 호출도 빨랐고 달리는 것도 빨랐다. 시원시원하게 넓은 하늘이 많이 보였다. 현수막도 건물도 적었다.
아쿠아리움과 아르떼는 붙어 있었다. 아쿠아리움이 좀더 폐장 시간이 일렀다. 강원도민도 연간회원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 년 내에 재방문해 티켓을 제시하시면 오십 프로를 할인해 준다고 했다. 이렇게 파격적일 데가.
입구에서부터 비린내가 났다. 고등학생 때 무슨 유치원생 대상 특별활동을 보조하는 봉사를 한 적 있었다. 그 때 거기서 나던 냄새인 것 같기도 했고. 물냄새와 애들 냄새가 섞여 있었고 어른들 목소리가 컸다.
여기 서 봐, 뛰면 안 돼. 이거 봐봐. 쟤 봐봐, 와. 이거 무슨 색깔이지? 또또 여기 서 봐. 여기 봐봐. 와, 저거 뭐지? 저기 봐 봐. 애들을 발로 걷어차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다녀야 했다.
아렌델 왕족이 친히 해양생태계를 보살피러 왔다. 긴 패딩 자락 아래로 각각 엘사와 안나 드레스 치마와 보라색과 하늘색 의 반짝이 구두가 보였다. 엘사와 안나뿐인가. 꼬리와 귀 달린 털이 포슬포슬한 테디베어도 있었고 흰 토끼도 있었다. 그리고 군인도 있었다. 이건 진짜 군인. 휴가를 나온 애들 둘이 유리벽에 고개를 박고 물고기를 열심히 구경했다.
엄청나게 큰 가오리와 적당히 큰 상어들과 또 엄청나게 많고 많은 물고기를 봤다. 언제 마지막으로 아쿠아리움에 갔더라. 제주도에서 갔는데. 거기가 더 컸는데. 그런데 여기가 더 재밌었다. 이렇게 재밌는 곳이었다니.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 특이한 개체들을 눈으로 쫓은 후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만 하면, 그들이 어떤 애들인지 설명이 나와 있었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짧았다. 생태계 실물과 나무위키의 복합이잖아? 즐거웠다.
덤덤한 표정의 또래 몇이 작업복 같은 걸 입고서 양동이에 새우젓 같은 것과 작은 물고기들을 채워 돌아다녔다. 그 큰 수조 여기저기를 살피며 먹이를 뿌렸고 버킷 가득 들어 있던 것들이 오 분도 안 되어 물에서 다 사라졌다.
아빠는 한 걸음쯤 뒤에서 뒷짐을 지고 '쟤들도 갑갑하겠다' 했다. 동물원이든 아쿠아리움이든 늘 그랬다. 그 뒷짐은 아마 장시간의 운전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칭 같은 거였을 것 같은데 하여간 항상 그런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서 비슷한 말을 했다. 아빠가 물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큰데?저 물고기 천 마리가 있어도 여길 다 못 채울걸.
근데.. 그러게, 생각보다 수조는 작았다. 제주도보다 작아서가 아니고 작았다. 원랜 바다 살던 애들이잖아. 여기서 자연발생한 애들이 아니라고. 아프리카, 대서양, 북해, 알래스카 등등 뭐 멀리서도 온 애들이었다. 잘된 걸까, 아닌 걸까.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지만 영원히 여기서 벗어날 수 없군.
마션 소설에서 와트니는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았던 동료들이 6개월간 서로를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었다. 갇혀 있으면 그렇게 된단 뜻이다. 포식자가 없다고, 먹이가 제때 공급된다고 해서 죽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는데. 피라냐도 있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 큰 줄 몰랐다. 밥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서로를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비단 피라냐뿐만 아니고 다 그렇겠지. 왜, 일할 때 마주치는 사람들과 하루종일,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들의 특성이고 나발이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잖아.
중간중간 사진을 찍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나오면 고개를 틀고 자리를 비켜 주고 펭귄들을 보고 일본에서 별미로 취급받는다는 전갱이 떼를 봤다. 엄청 많네. 너네 연애는 하니, 라고 속으로 질문했다. 안 심심한가. 이 안에서 뭘 하고 사나 궁금했다. 이어 거북이도 보고 소리를 지르는 애들과 그걸 저지시키는 부모들을 보고 나 이거 동물대백과사전에서 봤는데! 하는 똑똑이들 소리도 몇 번 들었다.
나 어릴 때도 지금 병원에도 저런 애들 있는데. 척척박사들. 발음도 어려운 생물들 이름을 말하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읊었다. 그리고 부모는 또 소리치면 안 된다고 그들을 타이른다. 어떤 것들은 참 안 변했다. 신기했다.
내 앞에서 라이브로 움직이던 생태 표본들과 오프라인 위키지식의 집합인 공간을 떠나 아르떼로 들어왔다. 어른들의 놀이터. 놀이터? 어쨌든 소리지르는 애들도 엘사와 안나도 꼬마 박사도 없고 다만 행복하고 상대적으로 조용한 가족과 다수의 커플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모인 보통의 공간. 그래도 서울의 전시장들보다 밀도가 낮았다. 신기할 정도로.
사실 기대가 없었다. 미디어아트 전시? 내가 무슨 고고한 취향을 가져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늘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달랐다. 일단 공간이 수도권의 그것들보다 압도적으로 넓었다. 꽃, 카멜리아? 이게 어디서 나던 냄새더라. 백화점 1층이긴 했는데 좀더 특정 공간을 연상시키는 냄새가 짙게 났다. 기분좋은 정도로 어두웠고 사방이 화면인 공간에 채워진 가상의 조형물과 소리와 향기가, 현실의 꿈 같은 느낌을 줬다. 아주 꿈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근접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짜증이 나는 걸 참아야 했다. 참아 왔다는 걸 알았다. 전시 관람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고 피해 주고 또 피해야 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여긴 그런 게 없었다. 폭포, 뇌우, 동굴, 계절을 담은 숲, 하늘, 바람, 눈발, 나뭇잎, 거대한 물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이 고요하고 적당히 커다란 공간으로 옮겨 와 구현해 낸 현장. 잡아먹힐 일 없이 눈발을 덮은 호랑이를 만나고, 자동차 앞유리가 박살날 일 없이 사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휴대폰에도 태블릿 속에도 그들이 있지. 그러나 그곳에서는 시선을 넘어 의식 속을 그들이 건드릴 것처럼 가까이에, 커다란 모습으로 존재했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나. 자유? 자유까지는 모르겠고 그 곳의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사진을 보내자 엄마는 무서울 것 같다고 했다. 맞아, 그거야. 무섭고 굉장한 것. 놀이터가 맞았다. 롤러코스터랑 다를 게 없잖아. 감당 가능한 전율과 감동을 줬다. 마지막 관람실에는 몇몇 사람들이 아예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왜?싶었는데 나도 그렇게 됐다.
오르세 미술관과 합작했다고 했다. 엄청나게 고차원적인 기술의 3D로 재현한 유럽 미술 사조가 펼쳐졌다. 고흐, 르누아르, 로코코, 모네, 고갱.. 어쨌든 어디서든 늘 한 번씩은 봤을 그림과 단어들이, 멋진 음악과 작품에 어우러지는 배경에 함께 커다랗게 등장하고 사라졌다. 이거 사방이 스테이지인 콘서트나 다름없잖아? 행복했다.
개별의 작품들이 그 흐름에 따라 상영되는 것을 보니 흥미로워졌다. 뒤로는 한국 문화 유산들을 무용수들과 만들어낸 영상이 나왔다. 나를, 그 공간의 모두를 둘러싼 앵글이 처마와 기와를 지나쳐 올라 밤하늘로 쑥 올라가고 가야금 소리가 울릴 때 여기 서 있길 잘했다고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한 번 더 갈까 생각했다. 아마 서울에 있었다면 갔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문화생활 하는구만. 밖에는 오후의 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햇빛이 가득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한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두 개인가.
고래 카페는 고래 카페가 아니었다. 고래 서점 또는 고래 빵집이라고 어제 검색어를 넣었어야 했다. 하나 더? 그전날 영화를 보다 탈주하고 강릉역을 찾아 쏘다녀야 했던 홈플러스에서 직선거리로 고작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런.
역시나 호출하자마자 저 멀리 공중에서 날아오는 것만큼이나 빨리 등장하는 택시를 타고 내리니 책방이었다. 열받는 골목길도 이래도 올 거냐고 묻는 것 같은 구석진 곳도 아니었다. 진작 올걸. 진작이라.. 못 왔을 거다. 그전날 나는 그 정도의 컨디션도 안 됐다.
3층짜리였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도무지 앉을 자리가 없었을 텐데 1층에 한 커플과 여자와 남자 손님 하나씩뿐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알았다. 아. 나는 교보문고에서 정말 사람 구경을 했던 게 맞았구나. 가끔 헷갈렸다. 내가 그냥 집중력이 부족해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긴 그냥 그런 환경이 맞았다.
치아바타와 커피를 시켰다. 가득한 책장을 바라봤다. 각국의 언어로 안녕, 이라고 쓰인 인삿말들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역시 세상에는 참 책이 많아.
책은 가능성이었다. 재미있어질 수 있는 가능성, 세상을 더 가까이, 또는 더 멀리서 볼 수 있는 가능성.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이 찬 공간이었다. 평안했다. 어딘가의 카페들에서 나는, 다 다른데 똑같은 것 같은 비싼 향료 냄새 말고 정말 책 냄새가 났다. 동네 도서관에서 나는 냄새. 감성적인 리콜이 아니라, 적은 인구 밀도와 철제 책장과 그 안에 꽂힌 책들이 품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예쁘려고 하는 공간도 아니었고 그 서점을 운영하는 본인을 홍보하려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 점이 편하게 느껴졌다.
아래층의 책장과 공간을 돌아보고, 1층의 책장과 공간을 돌아보고, 2층의 책장과 공간을 돌아봤다. 저편의 홈플러스가 보였다. 집에 갈 때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아씨오 하면 튀어나오는 것처럼 택시 호출이 빠른 곳이지만, 그래도 어제 한 번 난리 쳐 봤잖아. 너무 택시를 많이 탔다. 그리고 오늘 일정도 다 끝났잖아.
그리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탔다.
정류장에서 이십 분을 기다렸다. 칠 분 남아 있던 걸 눈앞에서 놓쳤다. 반성했다. 다시는 그 알량한 달리기로 출퇴근에 필요한 체력을 키웠다며 까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 망할 도시는 바람이 찼다. 너무. 남은 버스 시간이 십 분 초반대가 되니 정류장에 사람이 늘었다. 하던 대로, 206번이나 탔어야 했는데, 2분 더 늦게 오는 게 춥고 지겨워 다른 걸 탔더니 기사 아저씨가 강릉고등학교에서 정차한 후 문을 열어놓고 안 내리시냐고 물었다. 아하. 내가 그렇지 뭐.
꾸역꾸역 걸었다. 여덟 시인데 앞 뒤 좌 우 어느 곳에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찬비를 맞으며 과자를 먹고 순두부를 거부하려 했던 그 길이었다. 알고 보니 거기가 초당순두부 거리였다. 거기서 왜 순두부밖에 없냐고 생각한 나도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기껏 기다려 엉뚱한 곳에 결국 내린 지금의 나도.
똑같이, 또 손이 시리고 춥고 조금 무서웠다. 고등학교와 순두부들에서 멀어질수록 인적이 아니라 빛 자체가 적어졌다. 걷는 게 아니고 날아가야 할 것 같았다. 이 어둠을 뚫고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1.6킬로미터? 이 거리를 택시 탈 거면 대체 달리기는 왜 해온 거야.
그전날 숙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생각했다.
아, 이런 곳에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구나.
이런 곳은 숙소를 말했다. 부산과 제주도의 비수기 가격을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좁은 공간을 감성으로 덮기 위한 잡동사니 대신 큰 식탁과 침대와 진짜 2층과 그보다 더 널찍한 여유가 있었다. 당연히 오피스텔 복층 같을 줄 알았는데.
물론 그건 호스트의 취향도 있었겠지. 그 정도로 넓을 줄 몰랐다. 항상 숙소들은 사진보다 별로였다. 원래 그렇지, 뭐. 세상사 사진보다 실물이 나은 경우는 뭐든 많지 않잖아. 그런데 여백이 많으면, 그 여백의 미를 굳이 사진에 담을 필요가 없게 되면 실물이 더 낫구나.
그러니까, 넓고 해가 잘 들어서 좋았단 얘기다.
그 날 저녁 나는 그 생각에 대해 재고해보게 됐다. 집은 집이고 해가 떨어지면 십 분 거리 편의점에 가는 것도 오들거리며 용기를 내야 했다. 몸도 떨어야 했고 마음도 떨어야 했다. 몸이야 옷을 껴입으면 될 일이지만 운전도 못 하고 부주의하고 꽤 자주 많이 멍청한 내가 사는 건 적합하지 않을 듯했다.
살면서 내가 벌 돈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그 한정된 예산으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엄청난 운전 능력과 담력과 싸움 기술을 보유한 마동석쯤 되는 인물이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그런데 나한테는 다 없잖아. 난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하루종일 아씨오 아씨오 외친 것처럼 카카오택시를 부르고 타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행복하셨죠? 맞아. 행복했다. 그 정도의 돈을 써서 행복했나?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달랐다. 이래서 여행을 오나보다 생각했다. 그 정도면, 이 정도면 성공 아닌가? 어제 추위 속에 강릉 시내를 어설프게 돌아다닌 것도 혹시 알아, 다음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오늘은 뭐, 더 말할 것도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