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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말이야

그냥 그렇다고.

by 이븐도





노는 거야. 하릴없이 노는 거. 시간 낭비.

나는 계속 이렇게, 그렇게 놀고 싶어.



그게 다야.







바람이 부드러웠다.

그는 플리즈, 라고 몇 번나 반복하며 휴대폰을 내려놓고 손을 위로 흔들라고 했다. 절정으로 넘어가기 딱 일 초 전.

A sky full of stars의 가장 신나는 부분을 앞두고 한참을 말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거듭해서 말해 주어서 좋았다. 노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딱 지금처럼, 그 1분, 2분이던가. 그 순간들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유? 그걸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여기에, 당장 지금의 것만 바라보면서. 눈앞의 불빛들과 하늘과 공기를 내려다보고, 그 안에 안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자유롭게.




잘 읽지도 못하는 원서들을 펴 들었을 때 나는 재생지 뭉치의 냄새,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창밖에서 들어오던 공기의 냄새, 하늘의 색깔, 딱 2년쯤 더 지나 낯선 대학교 캠퍼스의 잔디밭에 앉아 느끼던 질투 또는 시기, 그 지하철역에서 내려 기숙사로 돌아올 때의 이상하게 방황하는 듯한 기분,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려 할 때, 나는 어떤 걸 쓰고 싶나, 뭘 하고 싶은 건가 생각하며 이어폰을 꽂고 몽상 속을 걷던 시간, 영화 속 장면의 대사와 음악 조각들 모두가 큰 울림을 주고 눈가를 떨리게 하고 머리를 흔들어 놓는 것 같았던 기분.


야자를 째고 섰던 동네 도서관 서가에서 나중에 뭘 하게 될까 같은 질문을 끝도 없이 만들어댔던 시간, 가본 적도 없는 곳을 묘사한 글에서 그 지역의 향기를 맡고 그곳의 웃음소리와 파도소리를 듣고 더운 햇빛을 쬐는 듯했던 기분. 책 속의 작지만 컸던 그 경외, 출퇴근길을 책임진 문장들.




사람들은 다 열심히 살았다. 어떤 직장, 자산, 자산을 굴리는 법, 이름난 학교, 공부, 또 공부. 나를 빼고 모두가 멋지게, 열심히 살았다. 나는 언제나 딴생각을 했다. 좀 더 안정적으로 딴생각을 하고 싶어서 직업을 선택해 일했다. 그렇게 들어온 곳에서도, 바깥에서도 세상은 똑같았다. 다들 또다시 열심히 살았다. 더 올라가고, 나아가고, 멀리, 높이 가기 위해.


타고나길 운동신경이 안 좋았고 승부욕도 없었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엄마, 나는 이렇게 노는 게 좋아. 원래 그랬어. 이십만 원이나 주고 간 공연장에서 그걸 느꼈다. 엄마는 뭐라고 할까. 펀드나 좀 알아보고 그때 말한 주식 좀 봐라,라고 할까.






나는 노는 게 좋아. 어떡하지.

이렇게 하늘이 예쁘고 바람이 어떻고 오늘의 햇빛이 어떻고 여기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이 어떻고 하는 생각이나 하면서 살고 싶어. 그냥 그렇다고. 내가 그만두거나 그러겠다는 건 아니야.




나는 어떤 줄서기에서도 늘 실패했다. 그래서 대열에서 스스로 나오기를 선택했다. 늘. 한국 국경만 넘으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죽을 때까지 유의미할 그 순위에 드는 대학들에 가지 못했고,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닌 척했지만 명문대나 그에 준하는 대학을 다니는 서울 사방의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나 자신이 딱 그만큼 싫었다. 하라는 건 다 하기 싫었고, 최소한으로만 하고 싶었다.

다 같이, 점수가 매겨지는 건 더 하기 싫었다. 안 할 수 있다면 가능한 안 하고 싶었다. 경쟁이 두렵고 무서웠다. 나와 얼굴을 맞댄 그들과 차등을 겨뤄야 하는 건 너무 끔찍하고 힘들었다. 언제나. 지금도.


그때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반에서의 등수, 학교의 순위, 그 안에서의 학점. 그런데 스무 살을 훨씬 더 넘겨 나와본 사회에는 그런 최소한의 선도 없었다.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잔고, 어학 능력, 부모님의 재력, 출신지, 사는 지역. 선이 없는 것 같았지만 발 딛고 선 모든 곳이 비교의 장이었다. 왜 다들 이렇게나 열심히 살지,라는 푸념 같은 생각이, 내가 너무 게으르게 산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때 알았다. 내가 나오려고 했던 경쟁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모르겠어. 힘 빠지는 답이지? 모르겠어. 이게 진짜 경쟁인 건지,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지.

내가 무시한다고 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계정을 정리하고, 단톡방을 안 보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 우글우글한 것들은 언제나 실존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좀 모자랐고, 못났으며, 좀 많이 부족했다. 잘났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중요한 건 그냥 그 모든 게 나로 하여금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든다는 거였다.


그러게, 나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럼 좀 더 잘 알아보고 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경각심이 없나 보다. 미래의 나야, 쓴소리 좀 해 줄래. 정신 차리고 살라고. 남들은 다 열심히 산다고 말이야. 나는 항상 대열에서 나오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나마 니가 말하면 듣지 않을까.






몇 만 명이 휴대폰을 다 손에서 뗐을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살고 싶다고.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던 몇 가지 순간들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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