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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른의 삶일걸?

*공주님이 도망친 그 봄날

by 이븐도




엑소의 나비소녀를 닮은 공주님은 보이넥스트도어의 '그날 이후로 난 이렇게 살고-' 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차가운 궁을 떠나 도망쳤다. 그 공주의 행방이 궁금해지는 날이다. 행복하겠지? 행복하시죠?


꽃이 많았다. 밤에 뛸 때는 덜 보이던 색깔이, 바람에 조금씩 날리는 여린 꽃잎들이 반가웠고 아까웠다. 비가 오면, 세찬 바람이 불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일주일 후면 시들거나 오늘보다 흐린 빛깔을 띠고 있을 그들이 가득했다. 알록달록하고 약한 상태로 햇빛을 잔뜩 받고 있었다.


알러지 시즌이 돌아오려고 한다. 꽃가루가 날려 걸음을 뗄 때마다 훌쩍거리는 것과 미친 졸음에 감길 눈과 몽롱함을 감수하고 알러지 약을 먹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오늘의 달리기가 그랬고 어제의 출근길이 그랬다.




봄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공주를 떠올려 낯선 남자와 엮은 뒤, 나는 그들을 쫓는 기사가 되어 한밤중의 대열에서조차 이탈해 버리고 싶다. 편안하고 빛난다.






직장인들이 곱창집 등에 모여 소주를 마시며 뭣 같은 하루를 정리하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는 대체 왜 엄마를 깨워 매일매일 부엌 식탁에 앉혀 놓고 오늘의 어떤 점이 어떻게 힘들었는지, 세상이 나에게 얼마나 매몰차고 짜치고 못되게 굴었는지를 털어놓지 않았는지 신기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한 번씩 '내가 그렇게 뺑이칠 동안 뭘 했어?' 같은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어떻게 담배 한 대, '아, 사는 게 그렇지. 뭐' 한 마디로 정말 다 접어 두고 잊은 채 내일로 가서 웃고 떠들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고난은 그렇게 취한 채 대충 떠들거나 잠깐의 위로로 잊히기에는 너무 깊고 소중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기 싫었고 잔뜩 토해내거나 아예 꽁하니 응축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이, 부모님의 어떤 모습들이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그렇게만 넘어갈 수 있었지. 이렇게 몇 십년을 살면서. 어쩌면 나와 같은 지금의 나이에도, 동반자를 앉혀 두고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고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던 걸까. 왜?





힘들었다. 퇴근 후에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슬픈 것, 그리고 '아 X바 졸라 힘드네' 로 정리될 수 있는 것. 전자는 보통 비가역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이들을 볼 때 느꼈다. 후자는 가역적인 과정이나 고통을 지나는 이들을 겪은 후였다. 세 시간 내내 에버랜드에서 엄마아빠를 잃어버린 애처럼 우는 여자애, 생후 32일 된 애를 보는 엄마도 혼자 있는데 나가시라고 골백번을 말해도 안 나가던 열 살 짜리 여자애 부모. '옆자리 애 기침을 너무 많이 하는데, 질환이 뭐예요' 라고 묻는 보호자.





기침, 기침이라.

내일은 아마 흉수천자를 해서 가슴에 찬 물을 뺄 건데 그전에 늑막염이 너무 심했던 애라 지금 기침을 많이 해요, 할 때마다 머리까지 흔들리는 것처럼 아프대요. 근데 그거 아세요? 그 맞은편에는 두 달짜리 애기도 있어요. 그 옆에는 어제까지 면역력 수치가 700을 간신히 넘겼던 애도 있어요. 걘 삼성병원 가서 중입자 치료까지 했는데도 지금 다른 문제가 생겨서 그걸 이겨내는 중이랍니다. 따님은 내일 내시경 하죠? 아까 피 좀 뽑는다고 기절하려 하던데, 어머니한테 말씀 좀 해 주세요. 괜찮으니까 딸 앞에서 처신 잘 하시라고. 애가 그런다고 엄마까지 그러면 어떡해요? 그리고 제발 나가시라구요. 저 쪼끄만 애기도 아빠가 혼자 보고 계시는 거 안 보이세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나는 나이가 나보다 많을 그 보호자의 얼굴을 보고서 속으로 말했다. 바빠서 면전으로는 못 했고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했다. 말들은 초록색이 가득한 봄 밤 밖으로 사라졌다. 질환이 뭔지 아시면 뭐 어쩌시게요, 진료과에 항의라도 하시게요? 내 애 아파서 왔는데 왜 기침하는 애랑 같이 배정하냐고?






나는 이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아픈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 채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 없이 기다리는 그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약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 어떤 비난의 의미도 없이 정말 그들은 그랬다. 무조건적이고 속수무책인 그 무력한 상태. 부모들은 애들을 그렇게 사랑했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도 왔다. 이기적인 것도 아니었다. 왜 그렇게 멍청하신 거예요. 조용히 와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병실 한가운데서 그렇게 묻는 건 그냥 그 사람에게 입 좀 닥치라는 거잖아. 허세와 이기심이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당당하게 튀어나왔다. 피곤한 눈과 주름진 거뭇한 얼굴을 보면 분명 나이를 먹은 게 맞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후에도 전혀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유치했다. 내 애가 이만큼 아파요. 아, 그렇죠. 똑같이 유치하게 응대하고 싶었다. 그럼 1인실 가세요. 5인실을 쓴다고 다 가난한 게 아니었고 1인실을 쓴다고 다 부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딱 그 정도의 설명이 맞을 것 같았다. 많이 아프시군요. 유약한 당신의 따님이. 그렇죠.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했는데, 그쵸?


진료과에서는 침 방울, 공기 등 단위를 나눠서 감염과 전파의 여지가 있는 환자분들은 처음부터 다른 곳으로 배정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기침한다고 해서 다 감염되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정말 어머니나 아버지 두 분 중 한 분만 계셔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귀로만 내 말을 들은 표정을 짓고 꼴에 사람 좋은 척하는 미소를 지었다. 나이트번이 그 병실로 들어갈 때까지 딸과 그 딸만큼이나 약해 빠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배고팠다. 머리가 아팠다. 애가 너무 울어서? 바빠서? 아님 나도 어디가 진짜 아픈가. 됐고, 하이라이트 컴백일인데. 노래 공개됐는데. 뮤비도 공개됐는데.


들어가던 주사약이 화장실에서 빠져서 바닥에 떨어져 그걸 도로 다시 꽂았다는 말을, 소년은 나를 호출해 병상에 빠진 것을 내가 새 바늘로 교체한 후에야 했다. 정맥염이 심하게 왔던 애였다. 아빠는 어떡하냐고 했다.


주사 지금이라도 빼고 다시 잡을까요, 하고 세네 번을 물었으나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했다. 그럼 뭐 어쩌라구요. 지금 열도 안 나고 애는 괜찮은데. 애엄마랑 저는 그 때 정말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철렁했거든요.

나는 그가 주절주절 떠드는 것을 눈을 맞추며 듣고 가슴에 열 마디 말을 품은 채 웃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뭔데요. 제발. 저도 알아요. 1인실 쓰시던 시절에 얼마나 불안에 떨고 짜증을 내셨는지 안다구요. 지금 뭐 그 화장실 바닥에 닿았던 그거, 아드님이 알콜솜으로 닦지도 않고 도로 꽂아넣었을 그거. 당연히 위험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 중환자실로 올려서 온 몸 피를 다 투석할 것도 아니고. '제가.. 찾아보니까 그게 되게 무서운 거던데..'




네. 찾아보셨군요. 그렇죠. 나는 많이 웃고 돌려 돌려 같은 말들을 했다. 지금은 증상이 없고, 불안하시니 내일 주치의 선생님께 직접 전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 저희도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인계를 드리겠습니다. 혹시 애기가 다른 증상 보이면 저희 불러 주세요. 주사는 빼고 다시 찌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아빠는 절대 간단히 답하지 않았다. 나는 바빴다. 골수검사와 흉수천자 준비를 더 해야 했고 약을 주입하기 시작했더니 애가 지금껏 없던 경련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고, 손톱만큼 아파도 죽을 것처럼 우는 애들과 달리 열여섯 살짜리 남자애는 열이 사십 도가 되도록 울지도 않고 열이 난다는 말도 안 했다. 안 힘드니, 했더니 모르겠는데용, 했다.


보호자분, 애는 잘못이 없어요. 대신 좀 덜 윽박지르면서 키우시지 그랬어요. 그러니까 혼자 저래놓고 이제서야 말하잖아요. 아무 능력도 없는 간호사 앞에서 그 때 얼마나 불안했고 집사람이랑 뭐가 어땠고 하는 걸 털어놓는 거 말고요. 그냥 아빠한테 혼날까 봐 불안해 하는 애나 좀 봐 주세요.



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정말 그 긴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그 병실로 돌아가 통보했다. 새벽에 항생제 맞기 전에 다시 찔러서 주사 잡을게요. 그냥 지금 빼자, 알겠지? 아빠는 알겠다고 했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신곡이고 뭐고 머리가 다 굳은 기분이라 뭘 들어도 시끄럽기만 했다. 이 기분으로는 무엇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컴백에 잔뜩 난리가 난 언니의 카톡을 나중에 보기로 하고 집으로 들어와 남은 김치볶음밥을 먹고 누웠다.


콧수염이 난 핑크 셔츠의 호아킨 피닉스가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보고 쓴 감상을 좀 고쳐야 했는데 도대체 하고 싶지가 않았다. 머리가 안 돌아갔다. 어쩌라구요. 내가 쓴 그 글과 중간중간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진짜 어쩌라고요,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가역적인 아픔들에, 미숙함과 부족함이 사랑 또는 이기심과 부딪혀 만들어낸 온갖 양상들이 좀 힘들었다. 그게 다였다. 이게 어른의 삶인가 생각했다. 누구에게 전화를 해서 잔뜩 쏟아내고 싶지도, 카톡으로 뭐가 어떻게 개같았는지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상대방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대로 지나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내가 다 큰 것 같았다. 욕이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정말로.


아하. 이게 그 술자리 장면이구나. 또는 아빠나, 아빠가 부대에서 이리저리 갈릴 동안 혼자 애 둘을 키운 엄마의 심리 같은 거? 다 두고 도망치고 싶은 것도 울분이 가득찬 것도 아니고, 그냥 남은 밥이나 퍼먹고 내일을 얌전히 기다리는 거.




늦게 잠든 것 같은데 일찍 깼다. 엄청나게 큰 레고블럭을 끊임없이 거대한 바스켓에서 달달달달 쏟아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일곱 시 반. 어떤 경우 없는 놈들이 일곱 시 반부터 공사를 해요, 이씨.

짜증을 내고 있기에는 날이 너무 좋았고 딱히 짜증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의 가 준비한 오늘의 검사와 시술과 아직 급성기인 애들과 보호자들이 그 자식들의 병세에 따라 파도같이 일렁이는 곳으로 여섯 시간쯤 후면 돌아가야 했다.






나가서 달렸다. 그러게, 누워서 뭔가를 저주하거나 웅크려 있기에는 세상이 아름다웠다. 밤에는 뉴이스트였고 지금은 오전의 보넥도였다. 밝고 가벼웠다.

밤의 도시는 내 것 같았는데 아침의 도시는 그냥 그 세상 같았다. 내 소유로 잡아채고 싶을 만큼 작고 날카롭게 빛나지는 않되 감히 갖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 만큼 부드럽게 존재했다. 초록으로, 바람으로, 햇빛으로, 바쁜 자동차들로. 말끔한 화장과 평상복의 사람들로.


주로 밤에 뛰던 나는 내가 기사인 것처럼 달렸다.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그 기사가 쫓아야 했던 공주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는데, 오늘 그 전개를 생각할 수 있었다. 공주는 작은 소풍을 떠났을 것이다.

마침 나무들의 이파리가 잔뜩이라 세상이 다 밝지만 숨기에도 안성맞춤일지도 몰랐다. 세상이 다 쓸데없는 동화의 배경이었다. 대책 없이 밝은 아이돌 노래들처럼.




간밤의 김치볶음밥이 소화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출발 때 대리점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스무 명쯤으로 늘어 있었다.

병원과 나 자신에만 매몰되기 싫어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고 감상을 주기적으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디지도록 매력이 없거든.

그런데 오늘은 쉰다. 실패라고 썼다가 다시 썼다. 쉰다. 어차피 글쓰기도 내 인생도 멈추지 않는다. 흠. 그리고 봄이 이렇게 이쁜데? 이게 드라마고 내 인생이 시트콤이다. 마음을 좀 정돈하고 싶었다. 그래야 컴백 영상들 보지. 아직도 노래를 안 들어 봤다. 기다려, 간다.


그리고.. 기다리세요. 간다. 좀 엉킨 마음과 정신, 정리했으니, 어제의 오후보다 어떻게든 좀더 나을 제가 갑니다. 병원이여, 죄 없는 애들과 죄 많은 부모들이여. 그래요, 무슨 죄겠습니까. 사랑한 게 죄죠. 봐드릴게요. 그걸 봐드리고 못 본 척 하는 게 제가 하는 일 아닙니까. 하하.




그렇게 다시 한다. 출근. 잔뜩 괜찮아져서.





귀여웠다. 개시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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