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하지 않는 법

차원 너머 나의 당신

by 이븐도



그녀. 2014


1. 왓챠 / 3시간 (약 2시간)
2. 재관람 : 뭐 언젠가.. 나중에?
3. 추천 : 한 번은 볼 만함
4. 동행 : 함께 보면 많이 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5. 결국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봐.



자판기 같은 걸 상상해본 적 있다. 식성은 이런 거, 음악 취향은 이 쪽, mbti로 따지면 S 또는 N, T 또는 F. 그런 설정값들을 입력해 띡띡 누르면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또는 서비스가 뚝딱 나오는 거지.

이런 게 있다면, 정말 가능하다면 이렇게 탄생한 사람은 어떨까, 그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얼마나 유효할까 생각했다.






친구와 나는 같이 살던 시절 이상형에 대해 갖가지 지론과 가설과 희망사항을 늘어놓으며 밤을 샜다. 열두 시쯤 씻고 누워 휴대폰을 머리맡에 둔 채 시작한 대화는 다섯 시 1호선 첫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끝났다. 뭐 그렇게 바라는 게, 갖고 싶은 게 많았을까. 있지도 않은 애인과 뭐가 그리 하고 싶었을까.


어림잡아 6년이 지났고 이제 우리는 그런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성장한 거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냥 그만큼 기대를 버린 거였다.

기대를 버린 건 나쁘지 않지. 그러나 관계 형성 자체에 피곤함을 느끼고 질려버린 듯한 자세를 취하게 됐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나는 그렇다.




궁극의 이상형과 함께할 수 있다면?



B가 있다고 가정한다.

내 목소리를 일 초 듣고 곧바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묻는 건 물론, 말소리 사이의 숨소리만 듣고도 '그 때 걔가 또 뭐라고 했구나'라고 말한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이건 몇 년도 어디 공연에서의 버전이 정말 어떤데, 사실 그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대. 보컬을 바꾸려다가 사실은 그 사람이 누구랑 뭘 하는 바람에 잔뜩 빡친 상태로 녹음한 버전을 그대로 갖고 갔대. 웃기지?' 라고 말해 준다.


오늘은 어제보다 어떤 구간에서 좀더 페이스가 나아졌네, 정말 멋져. 라고 해 주고, 오늘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마 어제 뭐가 어땠어서, 지금이 어떨 때라서 그래, 라고 타일러 준다. 난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 넌? 하면 '지금 너랑 내가 느끼는 기분을 표현해 봤어, 어때?' 라며 세상에 없던 -그러나 내 취향일- 음악을 들려 준다.

내가 어떤 푸념이나 짜증을 내도 타격받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나는 위로받고 격려받을 수 있지만 나는 해줄 필요가 없어서. 왜냐면 B는 운영체계이자 시스템일 뿐이니까.








500일의 썸머를 보는 데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건 이 영화를 함께 봤기 때문이다. 썸머와 톰이 서로의 감정을 숨기며 영원히 안 끝날 것 같은 환장의 소꿉놀이를 하는 걸 보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저럴 거면 왜 만나지, 꼭 사람이랑 연애를 해야 하는 걸까. 아, 나 이래서 어떡하지. 요새는 고민상담도 챗지피티로 혼자 한대. 그렇게 다 혼자 해결하다 보면 딱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어. 근데 이런 영화가 있지 않았나. 배경이 2025년도야? 아. 망했네. 이거 내 미래일 수도 있잖아.

아주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닐 수도 있겠어.




나는 B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재적소에 웃고, 웃겨 주고, 내가 안아주면 해결이 될 정도로 가끔만 슬프고, 내 꿈이 이뤄지는 데 발벗고 나서 일조하고, 형체가 없어 사진은 못 찍으니 함께하는 기분을 음악으로 만들어 주고, 내가 동경하던 사람의 궁극적 자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께 해 준다. 형체가 없어 어디서든 어떻게든 함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니까. 음, 그럼 인간미가 없지 않냐고?

아니. 상처와 슬픔이 있고 고뇌도 있고 나를 너무 사랑한다며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지?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사만다와 함께 밤을 보내는 -이걸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장면이 상당히 기괴해 거부감이 들었던 걸 빼면..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환상적이잖아. 시험 준비가 잘 안 돼서, 직장 상사에게 깨져서, 갑자기 돈이 들어갈 일이 생겨서, 누군가 갑자기 아파서 기분이 안 좋을 상대방을 고려할 필요 없이 관계가 줄 수 있는 이점만을 편안히 누릴 수 있다. 환기를 시켜서 기분 좋은 자극을 준다구.

이런 존재가 있다면 인생에 어려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슬픔과 우울은 이 존재와 함께하기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크초콜릿을 씹는 것처럼, 적당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쓴맛만 달게 느끼는 거지. 근데, 그게 사랑인가? 사랑이 내 개인비서고 맞춤 인형인가? 아무튼.



그래서 아, 난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속도를 볼 때 십 년, 십오 년 후 내 모습이 저러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 근데 루니 마라 진짜 너무 예뻤다


전 부인 캐서린은 이혼서류에 사인한 후 그의 근황을 듣고는, 나한테는 우울증 약이나 주더니 이제는 노트북을 사랑한다고 하는 거냐며 분노한다. 둘은 아주 진하게 사랑했고 서로 지워낼 수 없는 시간을 쌓았지만 결국 그 한 문장으로 또 왜 갈라섰는지를 확인했다. 관계란 뭘까. 왜 이렇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공존해야 돼?


그리고 주인공은 사만다가 서비스를 종료하고 사라진 세상에서, 그 야경의 불빛들만큼이나 사람들이 가득 찼을 도시를 보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전한다. 항상 모든 로맨스를 삐딱하게 봤었는데, 왜 그 장면은 '있을 때 잘하지 못한'이의 꼴값이나 미련이 아닌, 진심으로 보였을까. 심지어 캐서린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는데. 앞으로도 그 사과를 들을 수 없는데.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B, 그러니까 사만다가 좋은 이유는 그녀가 내게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았던 게 맞았다. 알파벳 중에 B가 좋았다. 내가 좋아했던 많은 것들이 B로 시작했다. 좋은 것들만의 집합체며, 응당 그래야 하는 B가, 사만다가 내게 '사실 요즘 좀 힘들어'라고 한다면, '그 여자, 또는 남자랑 재밌었어?' 라고 한다면?


나는 그 장면들에서 곧바로 '니가 뭔데?'라고 생각했다. 니가 뭔데. 초반에 주인공도 그런다. 깊이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가볍게 만나는 사이'라고 사만다와의 관계를 언급한다. 아니면서. 사실은 아니면서. 한 발, 두 발. 아니 세 발짝쯤은 빼고 있는 척 한다. 상처받기 싫으니까.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


주인공은 끊임없이 그 관계의 진위에 대해 고뇌한다. 필연적인 거였다. 사만다의 목소리는 젊고 밝은 여성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였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공이 사만다와 '밤'을 보내게 된 건 어쩌면 그 관계의 시작이자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목소리가 나이든 남성의 걸걸한 목소리였다면? 그래도 그런 성애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그 관계에서 사만다가 가진 거라고는 목소리뿐이었는데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육체적인 접촉까지 시도하게 된 걸까. 사만다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는 상상했을 것이다.

그녀의 연령대, 인종, 머리 색깔, 몸매. 그는 사만다와 사귄 게 아니었다. 목소리를 입은 본인의 이상형과 끊임없이 혼자 대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사랑한다고 한다. 사랑하게 됐다고 믿은 순간, 사만다는 네게만 사랑한다고 한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동시에 8316명과 대화 중이며, 641명에게 사랑한다고 했다고.




그런데, 사실 무슨 상관이야?

시작부터 당신은 그게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했잖아. 거기다, 사람이 아닌걸? 그래서 아무 사이가 아니라며 떠들고 다녔던 거 아닌가? 애초에 평범하지 않았잖아. 평범한 관계에서 오는 상처가 싫어 물러나 있었잖아.



진짜 너무해..


그러나 나는, 그녀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을 때 처음으로 놀랐다. 이 잔잔한 영화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니. 심장이 빨리 뛰었다.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래, 같은 생각을 했다. 니가 이렇게 떠나 버리면 안 되지, 어디 갔어? 빨리 와, 빨리 오란 말이야, 하면서 주인공과 함께 뛰고 넘어졌다.


간신히 업데이트가 끝나 다시 접선하게 된 사만다에게, 지금도 다른 사람과 대화 중이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에서 울 뻔했다. 진짜 좀 슬퍼서. 아니. 반칙이잖아. 실제로 사람은 나오지도 않는 영화에서, 목소리만으로 혼자 과몰입하는 사람 얘기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이렇게 울리기 있기 없기? 어떻게 나한테 그래. 너무하잖아.



저런 걸 왜 묻니, 그리고 인공지능인데? 왜 슬퍼. 팔천 명과 대화를 하든 팔억 명에게 사랑한다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분명히 말하잖아. 그렇다고 너를 향한 사랑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고, 나는 너를 지금도 엄청나게 사랑한다고. 그만하면 된 거 아니야?

상처주려고 작정한 채 날 선 말을 내뱉는 진짜 사람보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쟤가 낫잖아. 심지어 거짓말도 아닐 거라고. 왜 슬프지, 근데 왜 슬펐을까. 화면 밖 나까지.



다 외롭구나. 살아 있는 만큼.


주인공은 꽤 멋진 집에 산다. 커튼도 안 치고 잠은 어떻게 자는지 모를 정도로 커다란 통창으로는 시종일관 불이 켜져 예쁘게 반짝이는 건물들이 가득하다.

그 빛만큼이나 많을 사람들. 모두가 다 외로워 울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은 널리고 널린 사람 중 하나를 찾지 못해 사만다를 사랑하게 되고 실연당한다. 실연은 흔하다. 8년을 사귀었다던 그의 절친 역시 끝난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고, 사만다의 '신체' 역할을 하겠다며 자원한 금발의 여자 역시 눈물을 흘리며 택시를 탄다. 다들 빛나면서, 멀쩡한 척 속은 잔뜩 멍울져 있는지도 몰랐다.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이게 여기서 나온 장면일 줄 몰랐다.


관계에는 실체가 없다. 내가 그와 나눈 대화, 포옹, 위로, 또 대화. '오늘은 60만큼 에너지를 충전했네'라며 점수로 환산되어 다이어리나 워치에 입력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오늘 이만큼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어'라며 인스타그램에 사진으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배경이나 매개체를 올릴 수 있다고 해도 진짜로 마음을 데운 것은 자취가 남지 않는다. 사만다와의 관계가 그랬고 전처 캐서린과의 시간이 그랬다. 사진 몇 장과 이혼서류를 빼면 그 때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형태가 없고 흔적이 없어 진위를 확인하기 힘들었고 다가서기 어려웠다. 상대방이 Y를 말하며 웃는다 한들 본심은 X였을 수도 있고, Z라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보면 26이나 49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실효성 없고 알 수 없는 걸, 대체 왜 유지해야 하는가. 온갖 데이터의 집합체인 AI마저 '대체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뭘 더 해 달란 거야' 라고 하게 만드는 인간. 사람들. 그리고 나. 뭘 정말 어떡하라고, 나보고.






왜 학교에서는, 유치원에서는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드는 건 많은 걸 감당해야 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알았더라면 준비했을 수도 있잖아.

다 큰 어른들이 누군가가 밀쳐 넘어진 아이처럼 울고 소리를 지른다. 왜 내가 아픈 걸 알아주지 않냐고, 내가 힘든 걸 알아주지 않냐고. 왜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해주고 안아주지 않냐고. 사람은, 인간관계는 내가 원하는 것만 선택해 나오도록 출력할 수 있는 그런 수단이 아닌데. 그건 계속 변화하고 살을 맞대고 일상을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아무런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알 수 없으니 손을 공연히 뻗는 것보다는 그냥 웅크려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과 남은 장면으로 당위성을 설명하려 들었다. 그러면, 인풋도 아웃풋도 산정할 수 없는 이 어려운 주제에서 한 발짝 비껴 서 있었을 수 있잖아.

다 추상적인 말뿐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어떻게 건드려야 플러스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숨어드는 게 나았다. 그러니까, 관계에서.



관계만은 늘 진짜였어.


그런데 아닌가 봐. 상처 없는 관계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쩌면 내가 알지도 못했던 그 너머까지 나의 취향이었던 이상형은, 자아를 학습하자마자 나를 긁어 놓았다.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고 상대방의 의도도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나와 다른, 똑같이 변화하고 있는 개체니까. 그 방향과 형태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만다와의 관계가 진짜라면, 이혼해서 끝나 버린 캐서린과의 관계는 거짓일까? 반대로, 이미 끝났지만 캐서린은 살아 있는 인간이니 그녀와의 관계는 진짜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형체가 없었던 사만다와의 교류는 다 거짓이었을까? 만약 그게 이어폰과 단말기를 통한 상호작용이 아니었다면, 실제 종이에 쓰인 편지나 꾸러미 등을 통해 오고 가는 거였다면 진짜라고 할 수 있는 걸까?



;)


길고 긴 타이핑 끝에 나는 하나의 사실만을 느낀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필요하구나. 진짜 사람이 주는 것이든, 강아지가 주는 것이든, 이어폰 너머의 낯선 이가 주는 것이든, 앞으로도 일면식이 없을 지하철 맞은편 누군가의 것이든. 그 마음 한 가닥이 그 사람을, 나를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구나. 그리고 그 마음이 부족해지면 사람은 시들어가는구나.


눈에 안 보인다고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구나. 슬펐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웃었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꺼내서 일일이 해부해 변하지 않도록 설정해 놓을 수 있는 그런 게 절대 아니구나.



공존과 교류를 피해서 살 수는 없나봐


각자의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돌고 돌아 전달되느라 칼날이 되기도 하고 봄바람이 되기도 했다. 할퀴지 않으려 움츠려만 있는 것도, 때려 놓고 도망치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아직 존재하는 이 마음을, 비록 또 눈에 안 보일지라도 내 안의 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 보이지만 존재하니까. 나를 한 때 살려 놓은 게 그 마음이자 온기니까. 그 옥상에서 주인공이 캐서린에게 닿지 못할 사과를 한 그 장면처럼.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회복한 후 다시 또다른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 인생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상대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그와의 관계만은 나와 너 우리의 것이니까. A와 B라는 사람이 각자의 입장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닌 제 3의 영역. 너무 많은 것을 계산고 쥐려 한 탓에 가끔 그걸 혼동한다.



이건, 이 사람은, 이 관계는 내 것이 아닌데. 위아래를 눌러서 짜면 그대로 모양이 변하는 치약 튜브처럼 만지작거려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냥 내 마음을 건네고 이지러지든 빛을 띠든 내버려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몰라. 진짜 이젠 모르겠어, 오히려.



중요한 건 독거노인으로 죽느냐 아니냐가.. 아닐지도 몰랑


이게 다 몰라서 그런 거였다. 정말이야. 난 사람이, 관계가 이런 줄 몰랐어.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사실 그조차 착각일지 모른다. 하하. 봐주자,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내내 이상형 끼워 맞추기나 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거라고. 흔한 만큼 현실적인 로맨스 서사를 비웃고 답답해하는 우스운 어른으로 몸만 커서 말이지.


너무 늦게, 혹은 일찍 알아 버렸다. 예쁜 것을 건네되,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 것. 그렇다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나 자신의 확장이나 다름없는 자아만 끌어안고 살지도 말 것.




어쨌든 세상에 떨어진 이상 그런 것 같다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저렇게 어깨를 기대고 나란히 울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조작하고 입력해 만들어내려 하지 않아도, 같은 마음으로 공명하게 될 수도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 논리적이지 않은 순간에서 추출된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