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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에서 상현까지

원더풀 홍대 산책

by 이븐도





조용한 나의 집에 와서 맨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는데 좋은 냄새가 났다. 뭐지, 했는데 아마 내가 그 위치에서 맨날 향수를 뿌려대서 잔향이 밴 것 같았다. 바닥으로 절반은 다 떨어진 거구만. 동네가 조용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조용한 곳이 맞았다. 하긴, 거기보다야.


여긴 주거지구와 상업지구가 미세하게 합쳐져 있었고 거긴 아예 유흥가나 다름없었다. 아주 북적하고 시끄럽고 그것보다 더 크게 별세계였다. 밤이라서? 밤이라서 더 하지. 그런 데 살았으면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었을까?






생일펍. 열한 시까지라고 보고 갔는데.. 거울에 붙은 손동운 사진이며 포스터를 사람들이 다 떼고 있었다. 열 시 십 분. 어, 혹시 끝났나요. 아, 네. 저희 열한 시까지긴 한데 열 시에 정리하기로 해서. 그럼 결국 열 시까지라는 거잖아. 음료는 주문 가능하세요. 아, 네네. 왔으니 시켰다.


결국 갔거든. 생일 기념식.

수선생님이, 아버지 기념식이야? 하고 묻던 오프 사유. 기념식이긴 하다. 아니라고 할 이유도 없는걸?

여덟 시 반쯤 출발해 이곳저곳을 헤매다 열 시가 넘어 도착. 원래 이 정도로 걸리지는 않는데 나 같은 길치에게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가는 길에 있던 올리브영. 열 시였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영업이 오 분 남았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사실상 삼십 분도 머지 않은 거지. 그런데도 강렬했다. 홍대는 언제나 그런 곳이군.






항상 살던 곳과 상당히 멀었다.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는 덕질을 위해서 몇 번 왔다. 안 오려다가 왔다. 까만색 태블릿 파우치, 까만 민소매, 까만 청바지, 샌들, 체인백. 정말 특색이라고는 없는 옷차림. 그런데 어차피 이곳의 모든 이들이 특색으로 가득해서 나한테 없어 보이는 특색도 특색으로 보일 것 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 동네가 그렇게 무섭거나 힘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진 않는 것.


클럽 거리인가 거길 돌아서 가야 했는데 정말 엄청난 인원이 줄을 서 있었다. 멀리서, 건너편에서 봐도 대충 나보다 다 어려 보였다. 저 많은 애들이 다 클럽으로 간다고? 그것도 놀라웠고, 실상 쳐다본 건물들에 다 무슨 헌팅포차가 들어서 있는 것도 놀라웠다. 저게 저렇게나 장사가 잘 된다니.

모든 사람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중이라 개성이든 몰개성이든 무색무취든 제각각 튀어 보였다. 그래서 피곤했고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 인도와 도로 위 모든 게 시끄럽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중이라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인상을 줬다. 런 것도 자유인가?




스무 살 땐가, 스물한 살 땐가. 그 땐 어떻게든 잘나 보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부끄럽게도. 몇 번 안 와본 그 와중에도 이런 동네라는 건 알았나 봐. 재밌는 일이다. 이제 보니 여기엔 그런 동년배가 너무 많아서, 웬만해서는 어떤 인상도 주기 힘들 것 같았다. 다 똑같아 보일 것 같은데, 대체 헌팅은 어떻게들 하는 거야. 기력도 좋다.






어떤 유행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 패션이든 다 아우성이었다. 옷이 조용한가 싶으면 몸이 요란했다. 손목 위까지 다 문신이거나 티셔츠의 넥라인 위로 올라온 목에는 장미덩쿨이 그려져 있거나. 아, 나 너무 재미없게 살았잖아. 이 애기들도 이러고 있는데. 만약, 병원이 아니라 이 부근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면 나도 저런 문신쯤 몇 개쯤 아무렇지 않게 했을까. 사실은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케밥집이 많았다. 가게 내부가 다 보이는 햄버거집도 많았다. 여기는 다음에 친구한테 오자고 할까, 했던 가게가 있었는데 그새 기억이 안 난다.


강남역은 싫은데 차라리 여기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이 정신없지만 류가 좀 다르다. 말하자면, 거긴 아닌 척 관심을 요하는 게 많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괜히 불편할 때가 있다. 그냥 내 맘이 그렇다. 근데 여긴 그냥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는 놀자판이잖아.




투명한 컵에 든 보라색 칵테일을 빨며 걷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자라에서 파는 것 같은 등 파인 원피스를 입은 외국인, 후욱 하고 딸기향 전담 연기를 뱉고 휙 뒤도는 핫팬츠의 몸매 좋은 여자, 얼굴에는 여기저기 아티스틱한 문신이 자리잡은 나보다 키가 작은 남자, 이런 건 길거리 걸을 때 머리 위로 폰을 올려서 찍나? 라고 생각한 그런 사진을 정확히 그 구도로 찍으며 걷는 듯한 여자 둘, 정말 엄청난 로우 라이즈 팬츠를 입은.. 남자. 멋진 옷은 다 끌어입고서는 그게 뭐든 다 잃은 표정으로 햄버거를 먹는 남자, 구멍 난 티셔츠에 빛바랜 카고 바지, 진짜 대충 입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외국인들, 그래피티가 그려진 벽, 클럽 라이브를 하는 밴드들의 스티커가 덕지하게 붙은 신호등과 거리 구조물들. 골목 양옆으로 깊게도 있던 야장들. 그 안의 빽빽한 사람.


세상 모든 젊은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았다. 이런 험하고 힙한 곳에서 아이돌 생일 기념 행사를 연다니. 이질적이면서도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한밤중에 온 건 또 처음이자 오랜만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상 그 칵테일 값과 지하철비를 내고 삼십 분짜리 동네 구경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안 가봤지만.. 이렇게 난장판이면서 에너지가 가득하다니. 런던으로 치면 브릭 레인정도가 되려나. 안 될 게 뭐 있어. 비슷할 것 같은데? 엄청나게 퇴폐적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건전한 것만도 아니지만, 논다면 그 목적대로 제껴 버리기에 적당할 느낌.


성수처럼 트렌디하고 세련되면서 부티도 나야 하는 거, 아니면 서촌 북촌 등등 그 종로 일대 거리들처럼 조금은 감성에 가라앉야 하는 거, 가 없. 냥 대충 앉아 있어도 만고땡. 왜냐면 너무 시끄럽고 또 시끄럽고 다같이 난리통이라서. 구획마다 보이는 라이브클럽이나 시끄러운 술집, 그 도에 퍼질러져 들이키는 콜라 또는 맥주. 이상하게 안정적인 그 너저분함. 그렇다고 이태원만큼 건장한 외국인들이 많아 괜히 무서운 또 아닌. 지하철역으로 들어와 여기서 인생의 한 시기를 보냈다면 뭔가 좀 달라졌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항상 홍대는 먼 곳이니까. 언제나 멀었다. 가까워질 이유도 없었고 계기도 없었다. 밀집되고 시끄러운 만큼 피곤했다. 피곤해서 좋은 거지. 생각이 안 드니까. 하지만 역으로 또 놀기에 아주 딱은 아닐지도 몰랐다. 아무와도 같이 있지 않고 혼자 몇 분 걸어다닌 것뿐인데도 강렬했던 걸 보면.

거기 눈 뜨고 섰던 거 자체가 극이라 뭘 더 하려다가는 그대로 방전될 것 같은 곳이다. 어떻게 기서 긴장을 풀고 초면인 누군가와 떠들고 웃을 수 있는 지, 신기했다.


그렇게 용인 촌구석으로 돌아왔다. 상상의 여지는 놓지 못한 채로. 저기 살았다면 아마 문신 몇 개쯤 옷 속에 숨긴 주당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런 유흥가가 괜히 무섭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렇다. 궁금하다고.

만약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거기서 꽤 시간을 보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인생이 방향을 틀었겠지?뭐 한다고 설쳤을까?





그러니까 그냥 그 정도로 자극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곳이었단 말이다. 다 아는 얘데, 그게 게는 이제야 보였다. 얼굴에 문신은커녕 탈색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사는 이곳으로 아온 나한테는.



정말 뭘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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