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편안한 곳
가시나, 미친나. 한여름이가.
부엌에서 고기를 굽던 엄마의 첫 마디였다.
그리고 나는 전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대체 엄마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옷차림은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뭘 입고 와야 하나. 아니면 아예 거기서 살아 버릴까, 도 덧붙여서.
꽤 더웠다. 하지만 더워서는 아니었다. 한 달 좀 넘게 이어진 스트레스와 그로 유발된 러닝 및 저탄수화물 식사로 인해 빠진 살을 기념.. 하며 짧은 상의를 입었다. 5년 전쯤, 이런 건 언제 입나, 하면서 그냥 샀던 것. 몇 년 전에도, 작년에도 입어보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편하게 맞지는 않았던 것. 인생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지속적인 날씬함의 시기. 어떻게 거국적으로 보존하지 않을 수 있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왜, 나 살 빠졌잖아. 언제 입어.
아가씨 때 입는 거지, 좋을 때잖아.
아가씨고 나발이고, 안 부끄럽냐? 누가 그래 입고 다니데?
그래, 얼굴 빼쪽해졌네.
너 밥 안 먹고 다니냐?
먹어. 잘.
먹는데 왜 빠져.
힘들어서.
언젠 안 힘들었냐?
그러니까.
아니. 누가 그렇게 입고 다니냐고.
다, 다. 나가서 봐봐. 다 입고 다녀, 다.
지랄하고 있네, 가시나. 이상해!
아빠, 이상해?
손 씻고 와서 밥 먹어. 그만 하고.
아빠는 덤덤하고 엄마는 난리였다. 아, 장단 맞추기 힘들다.
집에 왔다.
아빠는 정말로 출근을 하지 않고 수도권 변두리의 발령 생활이 끝나 세 식구가 다시 돌아온 이 곳으로. 나도 왔다. 대전. 떠나 있던 동안 정말 빵의 도시가 되어버린 곳.
원래 내 방이었던 자리는 엄마 방이 되었고 동생 방은 여전했다. 가구만 멀끔히 바뀌면 뭘 하나, 너저분하고 쓸데없는 것들이 들어찬 건 여전했다. 조리기능사, 항공정비, 몇 대의 모니터, 부품, 또 알 수 없는 박스, 키보드, 또 무슨 부품, 커피 컵, 또 커피 컵. 대체 이런 말랑한 로맨스에는 언제 그렇게 재미를 붙였는지 모르겠는 기욤 뮈소 소설들.
언젠가 내가 글을 쓴다면 얘가 읽어도 재밌다고 할 만한 것이어야 했다. 인생의 파도를 넘는 중인가, 지금? 아. 거기 있던 책 제목이다.
니 나 안 보고 싶었냐?
얼마만이지?
..너 뭐 인생의 파도를 넘고 있어?
빡치게 할래?
뭐냐 이거, 너 파도 넘는 중이야?
아, 아빠가 갖다줬다고. 나갈 거냐?
응. 산책. 너도 가자.
싫어.
아아 마시면서 걸을 건데.
이 시간에?
뭔 상관이야. 가자.
올 때 아샷추 하나만.
다리 다쳤냐?
커다란 무릎에 시커먼 딱지가 앉아 있었다.
타슈 잘못 고름.
자전거 타다 넘어졌다고?
아, 잘못 골랐어.
안 찌그러짐, 자전거?
디질래?
제로?
아, 그냥으로. 제로 설사해.
닌 좀 해도 될 것 같은데.
동생은 디질래, 하는 표정을 다시 지었다.
아, 사 와. 빽다방 삼천오백원이야.
니가 가서 사먹어.
제발. 누나아.
그리고 나는 빽다방이 아닌 메가커피에 들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아이스티 투 샷 추가와 무슨 빙수를 하나 샀다. 알룰로스 슈가를 추가했는데 맛이 없었다. 그냥 하지 말 걸. 산책을 더 하려 했으나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2년 새 상가가 많이 찼다. 애 안고 돌아다니는 부부가 생겼고 강아지가 많아졌고 학원 가방 메고 뚱한 표정으로 치킨집 안에 앉아 있는 애들이 생겼다. 원래도 있었나?
아파트 정문 쪽을 보고 있자니 왜 진작 더 빨리 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바람이 시원했고 기분이 좋았다.
말소리는 못 들었으나 그 데시벨의 등락은 알 수 있었다. 정수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그 높낮이의 변화. 대구 사투리가 섞인 그 세 글자, 느낌표까지 붙여서 네 박자가 가진 각각의 다른 톤. 2년 새에 없는 게 정체성이던 노잼도시 출입구에서 빵의 나라 입국 게이트로 승격해 버린 것 같은 대전역 바깥 주차장, 이어폰의 비트 사이로 들린 그 소리에 뒤를 도니 아빠가 서 있었다. 힘들었지, 오래 안 걸렸지?
응. 오래 기다렸어? 아니. 인제 왔지. 야간 하고 좀 잤냐? 응. 엄마는? 돈까스 하고 고기 하지. 해달라고 했다매. 성준이는? 집에 있지. 얼른 가자.
동대문구 모 병원을 다닐 때 나는 늘 그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돌잔치때 줬다던 직사각형 펜던트가 달린 안 예쁜 목걸이. 그걸 세 살땐가 삼킨 적이 있었다. 내가 꿀떡, 하는 소리를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들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동생은 돌잔치를 하지 못했다. 내가 돌잔치때 받은 목걸이를 먹어 버리는 바람에.
가끔 가족이 좋다. 가족이 좋다? 가족? 그건 너무 거창하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좋은 기분이다. 굳이 엄마나 아빠나 동생의 숨 막히는 옆이 아니더라도, 다른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건 마음이 기분 좋게 가라앉는 느낌을 준다. 내 몸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세상 바깥으로 멀쩡히 나온 그 목걸이를 보면, 돌아올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그만두자, 갈 곳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하면서 그 못생긴 목걸이를 내내 했었다. 지금은 서순라길에서 친구와 산 목걸이를 한다. 한다기보단 빼기 귀찮아서. 그리고 회색이야. 다크 그레이. 하이라이트 팬클럽 색깔이기까지 하다고.
자주 이사를 다녔다. 거주지는 늘 대전 부근 또는 강원도였다. 아주 어려서 기억이 안 날 때를 빼면 그렇다.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사실 전부잖아? 중간중간 1-2년을 인제나 화천에 있었던 걸 빼면 늘 대전과 대전에 있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취직을 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에 간다는 건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유성터미널로 가는 표를 끊거나, 서울역 또는 수서역에서 대전역으로 가는 자리를 예매하는 거였다. 집에 왔구나.
아빠, 누구 뽑았어? 아직 안 했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너무 힘들어. 오늘도 빡쳐서 달리기 하고 왔어. 이제 더워. 애들 너무 지랄같아, 부모들도. 여기 원래 아파트 없었는데? 이 길 원래 가던 길이야? 이제 잔뜩 초록색이 가득한 다 아는, 달라진 길들을 지나치면서 나는 차 안의 내비게이션과 함께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너 성준이랑 여기 쪼끄만할 때 놀러왔던 거 기억나냐. 많이 생겼지. 여기는 아주 구도심이라 어쩔 수 없어. 왜, 다리는 안 아프냐? 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하면 어떡하냐, 또 수선생이 뭐라 그래? 니가 몇 년 했지? 그래. 부모들 등쌀이 있지. 애 있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야 니 나이 또래 애들 안쓰러워서라도 냅두는데, 그리고 노인들인데, 뭐. 그렇게 예민하게 할 게 있냐. 어차피 다 가실 분들.
부서 옮겨 달라고 할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 거기는 엄마아빠들은 없을 거 아니야. 에이. 다 있긴 있지. 거긴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똑같은 얘기 또 하고 또 해야 돼. 못 알아들으니까. 아하하하. 그러냐. 그렇겠지. 아, 개같아. 개같냐? 응. 아빠 요즘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나이 들면 그래. 눈이 떠져. 아빠 이제 출근도 안 하잖아. 뭐 다르냐, 그 때 일어나서 커피 마시고 책 보면 좋아. 그래.
여전하구나. 그러고 보니 아빠는 십 년, 아니 이십 년 전에도 그랬다. 항상 먼저 일어나서 신문을 읽던가 엄마는 맨날 '쓸데없는 거'라고 하는 책들을 열심히도 펴놓고 영어 공부를 하거나 한자를 노트에 쓰거나 해외 뉴스를 듣거나 그랬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 아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그래봐야 그냥 군인이잖아. 아빠의 군인으로서의 성과 등등을 비하하는 게 아니었다. 신기했다. 단지 심심해서라고는.. 하지만. 아깝기도 했고.
여기 왔었다고? 언제? 다섯 살 때쯤인가, 그 때도 왔고, 너 그 때 피아노 대회도 여기 아니냐? 아하. 응. 기억 안 나. 사실 2년 전에 그 전남자친구랑 산책 엄청 왔던 기억밖에 없어, 라는 말까지, 안 아깝냐는 질문과 함께 입안에 문 채로 다시 신나게 병원 욕 아닌 욕을 했다.
가시나, 돈이 썩어나냐. 뭘 또 사 왔어! 이거 안 비싸. 사천 원이야. 먹어보자. 어휴, 진짜. 잘 밤에 살찌게! 안 먹을 거야? 그럼 엄마는 먹지 마. 한 입도.
그리고 엄마는 찬장에서 커다란 유리그릇을 꺼냈다. 싫어, 가시나야, 하면서. 음, 그러게. 이 긴 컵에 담긴 걸 부리 길쭉한 두루미도 아니고 어떻게들 돌아다니면서 먹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컵 하나짜리 빙수를 샐러드볼에 쏟아서 다같이 퍼먹었다. 빙수 먹고 싶으면 이거 두 개 사오면 되겠는데? 뭘 사 와. 이런 데 돈 쓰지 마. 맛있잖아. 맛없어? 맛은 있네. 달달하니. 이건 또 뭐야, 커피? 쟤가 사와 달라고 했어. 아, 누나! 야, 너는 살이 그렇게 쪄가지고 이 밤에 이런 걸 먹고 싶냐? 아이스티지?
아, 누나가 사 준다고.. 안 했는데. 니가 사오랬잖아. 어휴. 언제 정신차릴래. 너무 뭐라 그러지 마. 뭐라 안 그러게 생겼어? 넌 또 그걸 그렇게 사 와? 에이. 야! 미안.
그리고 좀 궁금해지긴 했다. 나 스물여덟 살인데. 서른 다 채워서도 동생이랑 이러고 있을까. 정말 놀라운 나이라고 생각했다. 만으로 따지면 스물여섯이니까 그래도 되나? 근데 언제 안 그럴 수 있지? 안 그럴 필요가 있나? 하나도 안 미안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인데..
어디냐? 메가?
응. 니 혼자 또 사먹게? 방에 꼬불쳐두고?
아니라고. 빽다방 닫음?
아니. 귀찮아서.
바로 옆인데. 바보냐?
니겠지, 그건. 니 무릎 족발 사러 가다 까진 거라매?
..자꾸 킹받게 할래?
엄마, 쟤 진짜 그거 사러 가다 넘어졌어?
내가 쟤 때문에 환장하겠어, 진짜.
남들에게는 말해 봤자 웃기지도 않고 주목받을 만한 건덕지도 없을 일들. 아니, 누나. 세일하는데 사러 가는 게 이상해? 뭐 얼마 줬는데, 이만 육천원. 요새 족발 얼마 하지? 원래 삼만팔천원인 거 오픈 기념이라고 한 달 동안 이만육천원 하는 거였다고. 그리고 엄마도 먹었잖아. 그럼, 사 왔는데 안 먹냐? 먹어야지, 먹기는. 그리고, 이만육천원이든 삼만육천원이든 돈 아니냐? 안 써도 되는 걸 왜 써. 집에서 엄마가 고기 안 해주냐? 맨날 해 주잖아. 그만 좀 찾아봐라, 그런 거. 아, 찾아본 거 아니라고. 하씨. 누나 말 좀 해 봐. 어?
뭐 어쩌라고. 맛있었냐? 나 빼고? 남은 것도 없네. 양 많았어? 많기야 하지. 근데 족발 다 뼈잖아. 그리고 엄마랑 아빠 다 맛있게 먹었다고. 으휴. 다음부턴 남겨놓고 말해라. 족발 식으면 냄새 나고 맛없거든? 내가 너냐? 넌 그렇게 가려 먹는데 어떻게 살은 그렇게 찌니.
아니, 근데 그 족발 가지고 오다가 넘어진 거야 가다가 넘어진 거야. 개웃겼겠는데. 사람들 안 웃었어? 디질래. 누가 웃어. 아, 민망해서 피했겠구나. 그렇지.
족발 토크, 한여름 원피스며 짧은 바지를 다 챙겨가라고 꺼내놓은 탓에 아닌 밤에 하게 된 패션쇼. 이상해, 이상하다고? 이거 예전에 제니가 공항에 입고 나온 스타일인데. 니가 제니냐. 제니 발끝도 못 가는 게. 엄마 제니 싫다며. 그거랑 별개지. 이게 이상해, 아빠? 모르겠는데.
아예 민소매기만 한 펄렁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나가자 또 눈을 가늘게 뜬 엄마. 결점 찾지 마, 라고 말하자 터지는 바람 빠진 것 같은 웃음. 뭐, 가시나야. 그만 사고 잘 좀 입고 댕겨라. 안다고. 이제 안 사. 안 사기는.
작가 또는 감독이 박보검을 데리고 정말 이것저것을 다 해보고 싶었음이 분명한 드라마 첫 회를 커다란 화면으로 봤다. 이런 걸로 하이라이트 컴백 뮤비 보면 기분이 어떨까. 와, 박보검도 진짜 안 늙는다. 쟤가 늙을 나이는 아니지. 왜 아냐. 군대도 갔다 왔고 응팔 택이 한 게 십 년 전인데. 애가 착해서 그래. 뭐? 엄마가 어떻게 알아. 모르지, 근데 알아. 착한 것 같더라. 그래.
김소현이 진짜 멋진 스타일로 나왔다. 첫화라서 정을 줄 만한 구석은 안 보였으나 간단한 옷에 엄청난 액션을 소화하는 게 멋있었다. 집에 오면 그렇게 앉아서 나는솔로나 내용도 모르는 드라마를 보며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했다.
왜, 오십 먹은 이정재도 아직 오징어게임 한다 안 하냐. 오십이든 육십이든 이정재 별로야. 니가 뭔데 별론데. 내 맘이야.
아직은 진짜 여름이 오지 않아서, 나의 오피스텔 같은 돼먹지 못한 구조의 주거 공간이 아니라 바람이 들어 시원했다. 안전할 만큼 복작하고 시원하지만 또 혼자 잘 살기엔 시끄러운 이 집. 이 가족. 엄마와 아빠와 동생.
나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기도 했다. 집에 올 때마다 느꼈다. 혼자 독야청청 사는 줄 알았는데 이 별것 아닌 대화와 에피소드에서, 주인공과 각본가 모두가 우리 넷뿐인 이 옴니버스에 속해 있다는 걸 느낄 때. 이 도시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자 무대였고, 오리지널이었다.
그래서 그냥, 한결같이 생각한다. 떠나는 날 아침이 되면 나를 줄 반찬이며 과일이며 밥과 생필품을 어떻게든 짐가방에 쑤셔넣는 엄마를 말리고, 충전기랑 이어폰 같은 거 다 챙겼나 봐라, 하는 아빠의 말을 듣고 선 똑같은 풍경 속에서 메아리처럼 생각한다.
그게 3년 전이든 2년 전이든, 진짜 취직을 해서 타지에 자리잡게 된 4년 전이든, 그냥 나중엔 대전 와서 살까, 하고. 단지 감상적인 이유를 떠나서, 항상 적당히 비어 있는 도로와, 맨날 똑같은 전시만 하는 것 같은 이응노 미술관과 실상 별 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그만한 데가 없는 것 같은 한밭수목원과 충남대와 카이스트 주변을 지날 때, 예전에 살던 노은 지족 반석 지하철역 이름을 볼 때 늘 똑같이 생각했다.
엄마아빠의 이 집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도 들이밀지도 않는 것 같은 이 곳으로 다시 오는 건 어떨까. 완전히 어른이 되어서 여기서 사는 삶은 또 어떨까, 하고 매번 궁금했기 때문이다.
써놓고 보니 그냥 감상적인 이유 맞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안 되겠어. 노선은 하나뿐이고 좌석 간격도 당황스러울 만큼 좁으며, 그 개찰구를 통과하면 새소리가 나는 웃긴 지하철이 있는, 아무리 길을 잃을 것처럼 돌아다녀도 내 손바닥만큼 만만한 이곳을 지나면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안 하겠냐고.
물론, 그 상상은 같은 돈으로 수도권에서 살림을 꾸리는 것보다 훨씬 널찍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성적 판단을 딛고 앉은 거기도 해. 근데 그게 그거다. 여유, 공간, 널널함.
결국 그게 다 그 얘기잖아.
내 느낌이 그렇게 말하고 자라온 시절의 시간이 잠시 보증했고 이따금씩 마주친 이 도시의 서울과 다른 면면이 보여준 게 그거다. 그래서, 수서역에서 내려 그 낡아빠진 수인분당선 역사에 서서 그 생각을 또 했다. 언젠가는 그렇게 살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