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지 도파민
하지만 내가 남의 도파민이 된다면?
선생님 아직 거기 살아여? 당연하징. 넌 여기로 안 올 거야? 어쩌게? 모르겠어여. 아, 나이트 끝나고 집갈 때 전철에 사람 개많거든요? 진짜 너무너무 낑겨서 내리자마자 욕 나오는데.. 그래도. 그래도? 안 온다고? 네. 선생님도 안 올거잖아요. 당연하지, 사람 너무 많아. 여기. 그쵸? 에바야. 그리고 후배는 강남, 나는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탔다.
포토이즘에서 서프라이즈 케익 한 번 불고 연탄불 고기를 1인분씩 다 먹은 후 누가 느끼하다고 했던 말에 동기의 집으로 쳐들어가 라면까지 끝장낸 뒤. 모인 다섯 중 셋은 병원이 있는 동네에 살았다. 걸어서도 출퇴근할 수 있었고 아무리 늦어도 늦은 게 아니었다.
나이트 출근하는 동기를 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우리는 각각 헤어졌다. 로테이션을 그렇게나 보내달라고 했더니 느닷없이 신생아 중환자실로 보내진 후배와 이제 입사 일 년을 채운 키 173의 또다른 후배와 나의 입사 동기.
일주일 정도를 아예 그 근방으로는 발도 안 붙이다 식당 테이블에서 전동이 어쨌고 인계며 세이퍼가 어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선했다. 병원은 나와 그들의 직장이기도 했지만 도파민 공급처이기도 했다. 진짜로. 비단 이 멤버한테만 그런 게 아닐걸?
친구 A 왈, 본인 병동의 한 선임은 퇴근해서도 계속 휴대폰으로 전산을 본다고 했다. 그러다가 정말 끝도 없이 기록을 고치고 거짓말을 쳐대는 누군가의 덜미를 잡은 적도 있다고. 당연히 병원에서 그러라고 만들어 준 시스템은 아니겠지. 아마 신규 간호사들이 병원에 지나치게 일찍 출근하고 너무나도 집에 늦게 가서 자꾸자꾸 퇴사해 버려 병원의 위신을 떨구는 걸 막기 위한 방책이라는 추측.. 이 제일 유력하다. 물론 내 뇌피셜. 하지만 맞을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몇 년 전인가 제주도에 갔을 때 나는 그 렌트카 안에서도 애가 수술장에 제대로 갔는지 안 갔는지를 보고 있었다. 아마 함덕 앞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 땐 아직 신규 소리를 들을 때였다고. 그 날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프 데이 이브 나이트를 가리지 않았다. 아무튼 휴대폰을 바꾸거나 어플이 업데이트되면 한 번씩 병원 지하를 찾아 공문을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 출근과 업무에 대한 두려움보다 귀찮음이 더 커진 지금의 휴대폰에는 그 앱 자체가 없다.
한 동기는 장기오프 때도 며칠 내내 전산을 들락거렸다. 그걸 알 수 있던 건 정말 그 단톡의 누구도 출근해 있지 않은 시간에 자꾸 누군가의 시술이며 인계에서 빠진 점을 물어댔기 때문에. 야, 그럴 거면 출근해. 시른데? 인정. 니가 수쌤보다 환파 빡세게 했을 듯. 가서 월급 달라 해. 아 좀 지워라, 아님 니가 나 대신 내일 데이 출근할래? 응 아니야.
온 몸에 고기 냄새를 다 묻히고 집으로 오니 동기 단톡에 쇼킹한 소식이 떴다. 니네 지원팀 누구쌤 알아? 모르는데. 아 그 임신한 사람? 그 키 작고 하늘색 머리끈 쓰는 분? 응 우리보다 사번 낮던데. 야 거기 펠로우랑 결혼한대. 엥? 이미 한 거 아냐? 그 임산부 사원증 한 사람 아닌가? 맞는데. 파트너였다가 임신해서 하는 거래. 미친.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아? 아니 근데 나이차이가 그럼 좀 나는 거 아닌가. 그거 나이 보는 거 있는데. 야 앞자리 8인데? 돌았네. 야 파트너였는지 아닌지는 어케 알고?
어떻게든 알았겠지. 세상엔 믿거나 말거나가 정말 많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그 때의 내가 더 똑똑하고 현명했던 걸지도? 그러나 세상은 정말 너무 좁았고 일터는 개같이 바쁘고 숨막히는 동시에 누군가 게다리춤이라도 춰 주길 바랄 정도로 지겨웠다. 어떻게 그런 밀도의 정신없음과 지루함이 공존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별 것도 아닌 일화들은 끊임없이 돌았다.
한 때 누군가의 사수, 그 사수의 사수, 그러니까 프리셉터. 입사했을 때 기숙사를 같이 썼던 사람. 대여섯 명은 쓰도록 되어 있는 그 쪼끄만 아파트 한 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파생된 또다른 지인들. 그들의 친구. 그리고 그녀 또는 그와 사귀었던 사람. 어디 부서장의 아들 손자 며느리 등등등. 수십 개에 달하는 수술실과 검사실과 병동과 외래 진료실들. 별개의 세계여야 했으나 병원은 고인물 따위를 만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부서로 저 부서로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순환했고 친구 언니 연인 부부 할 것 없이 관계는 끊기질 않았다. 모두 상대적으로 멀쩡한 눈과 입과 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심지어 의사들은 다른 병원으로 떠났다가도 돌아왔다. 정말로, 정말로 우리는 정말 아예 모르는 사이였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몰랐다.
프리셉터는 작년 언젠가 나를 불러 피자를 앞에 두고 잡도리 아닌 잡도리를 했다. 너 처신 똑바로 해. 네? 아 저 잘해요 왜요요. 얘봐라, 너 정신 안 차리지? 외래 누구쌤이 니 이름 알던데? 거기 그 간호사 잘 있냐고 물어봤대. 저요? 너 그 사람 누군지 알아? 이 병원 생길 때부터 있던 사람이야. 원무과 직원이라고 긴장 풀면 안 돼. 너 기억도 못 하는구나? 어.. 제가요? 진짜 모르네, 야. 설마 니 안부가 궁금했겠니, 정신차려.
엄청 짜증내는 투로 얘기했나 보던데? 그 사람 병동 전체 차지샘이랑만 연락한단 말이야. 너같은 피래미랑 상종도 안 한다고. 아. 몰라. 뭐 꽤 된 일이긴 해. 나도 엄청 예전에 들은 거야, 말할 기회가 없던 거지. 무튼 항상 행동 조심해. 아무도 믿지 마. 니 동기들이랑도 우르르 다니지 말고. 어? 걍 선배들한테나 잘 해. 난 뭐 누구쌤한테 좋아서 밥 사달라고 하겠니. 알겠지? 전화 받는 사람은 니가 바쁜지 쌩신규인지 모르잖아. 사번 까보면 알기야 하겠지만.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주사를 잡는 중인지 애는 계속 울었다. 아마 그 처치실 안에 눈치 없이 들어갔겠지, 나는.
가면 도와야 한다. 온 힘을 다해 바둥대는 애 팔이든 다리든 붙잡고 꿇어앉은 채 카테터든 소독솜이든 꺼내 줘야 한다. 그게 내 환자면 당연한 건데 난 아니었다. 나도 바빠. 기록에도 못 넣는 일. 너 걔 왜 검사 늦게 내렸어? 하면 아, 누구누구 주사 잡는 거 도와드리다가. 뭐? 너 어싸인 아니잖아. 아하. 근데 누가 할 수 있냐고, 막상 그 앞에서 누군가 날 불러세웠을 때 아,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하고 꺼져 주는 거. 되면야 나도 얼마든지 하지.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고 나한테는 나중에 욕먹을 건덕지만 되는 그런 일의 거절. 근데 그게 되냐고.
아무튼 운도 나쁘고 그 정도의 눈치도 없던 나는 처치실에서 누군가 도와주세요! 하는 소리에 그 안에 십몇 분을 붙들려 있었다. 애는 간신히 수액을 달았다. 나는 돌아서자마자 인상을 썼다. 지겨워 죽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들어오던 다른 선임. 어머, 선생님! 이제 여기서 일하세요? 그녀는 이 병동으로 로테이션을 온 왕고참이었다. 그 때가 8년차였나. 그런 그녀가 극존칭을 쓰는 사람?
이어 그녀는 처치실을 나와 약간 얼빠진 표정이었을 내게 말했다. 아, 저분이 내 프리셉터였거든. 여기서 계신 줄은 또 몰랐넹? 유진아 피 뚝뚝 떨어진다아 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나두 늙었당. 흐흐.
어쨌든 간호사들은 다 똑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호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액면가나 머리 모양이나 사원증의 낡아빠지고 빛바랜 정도로 연차를 추측하기도 했지만 예상을 뒤엎는 경우는 흔했다. 아, 물론 연차에 상관없이 모두를 따뜻하고 또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게 맞지. 하지만 생각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어 열이 받는 환경에서 매번 그렇게까지, 제정신을 붙들고 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려면 해야지. 그러나 정말 쉽지는 않았다. 그 갓난쟁이의 주사를 잡아 준 그녀는 그럼 최소한 십몇 년 차라는 거였고.
슬슬 땀이 나려 했던 유니폼을 입은 등짝이 좀 식는 것 같았다. 정말이었다. 그 난리통에서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내가 언제부터 그 대왕올드를 도우며 표정이 썩어 있었던가, 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돌고 돌아 이야기를 옮기고 또 옮겼다. 모 진료과의 어떤 교수는 어떤 펠로우와 어떤 관계인데 사실 본처도 그 사실을 다 안다고 했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아들 그때 입원했잖아. 보호자 교대한다고 왔었어. 할머니에서 엄마로. 그래서 그 교수도 애 보러 왔거든? 당연히 지 애니까. 야, 와서 한 마디도 안 해. 존나 남인줄. 야. 부부인데 뭐 그럼 뭐 해야 하냐? 아니. 둘이서 계속 언제까지 그럴 거냐는 말 존나 돌려서 하길래 나 약 줘야 하는데 거기 커튼도 못 열었어. 아줌마 개무서워. 말도 못 붙이겠다니까?
근데 진짜 왜 사귀는 거야. 불륜? 몰라. 내가 어케 앎. 근데 맞긴 하대. 외래 그 시간엔 그래서 진료실 문 맨날 잠겨있다고. 미친. 구라치지마. 진짜야. 나 프셉이 알려줌. 어제의 내가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내일의 내가 퇴근길 버스에서 건너들은 이야기의 맥락. 뭐야, 똑같네? 일부러 저쪽도 주어는 떼고 이야기했지만 외양이나 부서의 위치가 너무나도 그 일화의 것들인 상황. 그리고 생각하는 거지.
아. 그들은 핫하지 않아도 그 토픽은 얼마든지 핫할 수 있겠구나. 나도 마찬가지겠구나. 안 되겠구나. 진짜 안 되겠다. 뭐가? 대충 살면. 뇌 빼고 지내면.
교수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메신저로 대화를 걸 만큼 당황스러울 때가 없었고, 사복 차림 같은 외양의 변화를 아는 척할 때도 한결같이 낯설었다. 나는 언제나 이 병원의 전체 규모를 뭉뚱그려만 생각하고 있었다. 몇천 명에 달할 간호사, 진료과 간호부 원무팀 약제부 할 거 없이 다 합치면 만 명은 나올지도 모르는 이곳에 몸담은 이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날 기억할 리가?
그러나 불가능은 없지. 몇 명일지 감히 추측도 안 되는 그들 하나하나는 몰라도, 나와 함께 기숙사를 썼던 이쪽 저쪽 병동 사람들과 그들의 학교 동기와 내가 입사한 지 1년 후 다른 곳으로 발령을 가신 그 때의 수선생님과 당시에는 소아청소년과 인턴이었으나 이제는 레지던트라는 직급 하에 나타난 사람들이 나를 기억했다.
마주친다면 모르는 사이였으나 어느 자리에서든 나를 아는 척할 수는 있는 사람들. 어떻게? 아 그 머리 노랗고 어떻던 사람? 아 그 땐 머리 노랬어? 나 땐 아니었는데. 그 사람 아닌가. 아냐. 그 맨날 선생님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노티하는 사람 있잖아. 아 그 말투? 맞아. 그 사람! 하는 식으로.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고 이 병동 사람들이 그랬고 그들이 그랬다. 진짜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았다.
병원은 정말 자극적인 세계였다. 사람이 많았고 사건은 매번 굵직해서. 뭘 잘못하면 왼쪽 다리를 잘라야 하는데 오른쪽이 되기도 했고 이 사람 피를 저 사람에게 주기도 했다. 그러다 누구는 죽기도 하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크고 작은 일의 주체들은 심심찮게 환자로 등장했다. 그런 일은 정말 강렬하면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어쩌면 누가 누구에게 쌍욕을 하며 개지랄을 떨거나 잠자리만 하는 사이라는 건 사실 별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사건도 사람도 계속 순환해서 주제는 계속 채워졌으나 크나큰 토픽들은 부피를 키우기만 했다. 그러면 그 일들의 주인공들은? 잊혀지지도 않고 남는 거지. 어디 병원 누구누구가 어땠대. 나는 연예인도 뭣도 아니었으나 정말 조심하고 살아야 했다. 아니, 그게 쉽냐고. 선임들에게 연락해서 밥 사달라고 하고 그 자리에 끼여 얼굴을 비추면서도 동기들이랑은 어울리지 말라니. 프리셉터 본인도 막상 실천하기 어려웠을 그 조언 아닌 조언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여기에 몇천 명이 어떻게 다니고 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어쨌든 다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든 튀는 존재는 길이길이 오르내리며 기억된다는 것. 언제까지? 더 큰 도파민 폭탄이 등장할 때까지.
전철역 부근에는 먹자골목이 있다. 그 골목이 아니라도 고깃집이며 호프집이 진짜 많았다. 한 번씩 그런 자리에서 실컷 이야기를 하며 '놀다' 오면 머리에서 폭죽이 번쩍거리며 튀는 기분이었다. 그 많은 가게들, 어디에든 포진해 있을 '직원들'. 그 많은 이들과 어떻게든 겹치게 되어 있는 생활 동선. 내가 투약을 똑바로 했나 퇴원은 제때 보냈나 하는 걸 확인하기 위해 들여다보던 모바일 전산이 결국은 새로운 자극의 원천이 되어간 것처럼.
정말 가끔은 아는 인간들도 익숙한 주제들도 지겹게 많아 놀이터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 동네. 아는 토픽, 와닿는 자극적임, 구라 같지만 아마 아닐 것 같은 일들의 감칠맛. 카페에서 열네 명 분의 편지를 쓰고 만난 후배와 동기들. 즐거웠고 사랑스러웠지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안돼. 나는 너네를 좋아하지만 병원은 아냐. 정말 너무 위험한 세계라니까?
그래서 나는 정말 진심으로 나의 거처를 떠날 마음이 없다. 그 후배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 나이트 때 아홉 시까지 자고 아홉 시 사십 분에 버스 타는 삶 부럽지. 그래도 안 돼. 난 안 돼. 난 정말 덜렁거리고 성질이 더럽단 말이야. 정말로. 나는 그런 동네에서, 그 연장된 세계에서 살 수 없다. 절대.
한밤중 러닝을 하다 보면 가끔 고양이들이 대뜸 저 구석에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원래도 고양이를 별로 안 좋아했다. 어릴 땐 무서웠고 지금은 재수가 없어서.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갈 길만 가던 거였는데 아무 죄 없는 나를 힘껏 째려보다가 꼬리가 없는 것처럼 도망치는 게 같잖거든. 아니면 정말 그 자리에서 나를 계속계속 영원히 노려보거나. 한결같이 어처구니 없는 그 행태. 내가 뭐 했어? 그리고 나는 요새 그런 생각을 한다. 나한테 그런 면이 좀 있나, 하고. 왜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 계속 경계하나, 싶어서.
근데, 해야 한다. 그래도 된다. 정말이야. 오랜만의 출근 전에 다시 하는 생각이다. 신규의 마음으로다가. 비록 아직은 새 병동으로 가는 게 아니지만.
늘 떠올렸던 두 가지. 튀지 말자. 투약에러 치지 말자.
진짜로, 튀지 말자. 조용히 있자. 잘 안 돼도? 노력한다.
그게 원칙이야.